억울한 이유
나를 포함 교사 5인은 오랜만에 마음잡고 여행을 갔다. 하동의 한여름 밤 운치를 느끼기 위해 막걸리 한 잔씩을 들고 작은 테이블에 앉았다. 평소 술을 거의 못하는 까닭에 한 잔 술이 내 앞에 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취했다.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좋은 글귀가 적힌 글을 읽고 독서 토론을 하기로 했다. 옆에서 구경하시던 숙소 주인은 같이 글 읽고 토론하자며 조르는 우리에게 여행 와서 이 무슨 짓이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답답한 샌님들은 웃으며 작은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술 한 잔 하듯 글을 읽었다.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진정한 이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글귀가 있었다. 크게 특별할 것 없는 부분이었지만 '진정한'이란 단어에 꽂혔다. 지난 학기 내가 일하며 느낀 부분이 떠올랐다. 진정한 이타심은 무엇일까. 질문을 나에게 적용해서 말을 시작했다.
나는 평소에 일을 할 때 이타적으로 행동한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신경 쓰는 편이다. 하지만 나의 이타심에는 억울함이 따라온다. 열심히 일하고 집에 돌아온 뒤는 너무 피곤해서 다른 것을 할 수가 없다. 퇴근 후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피로감에 하지 못하면 억울해진다. 억울함을 호소할 대상도 없어 나는 허공에 대고 홀로 억울해한다.
억울한 마음이 싫어 남을 배려하지 않고 일을 해봤다. 그 순간만 편할 뿐 더 불편한 상황이 몰려왔다. 불편한 마음이 감당이 안 됐다. 다시 나는 '배려'하는 사람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런 나도 이타적인 사람인가. '진정한'이란 단어를 앞에 붙여도 되는가. 진정한 이타심은 무엇인가.
내 궁금함에 소리는 일상의 균형을 잘 잡는 것이 이타심과 관련이 있을 거라 했다. 열심히 일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듯이 퇴근 후에는 혼자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 했다. 그 시간이 확보되지 못하면 정리하지 못한 삶이 얽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우자는 이타심은 지금, 여기에 내가 있어야 가능한 마음이라 했다. 하기 싫은데 뒷감당이 안 돼서 마음에도 없는 행동을 하는 것은 남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은 내가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의 말을 들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나에게 있어 적절한 이타심이란 내 체력의 정도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건 아닐까.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는 행위는 이타심이 아니다. 이는 결국 억울함으로 변하는 이기심인지도 모른다.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이기심이 나를 이타적으로 보이게 행동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나의 이타심은 '진정한'이란 단어를 앞에 붙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나는 이타적으로 살고 싶은 이기적인 사람이었고 그 증거가 억울함이었다.
토론은 4시간이나 이어졌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하던 나는 막걸리 한 잔에 취기가 올랐다. 속의 억울함이 조금 풀었다. 억울하지 않고 진정하게 이타적으로 사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솔직히 지금은 자신이 없다. 내가 그리 현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알고 있으면 조금씩은 바뀌지 않을까. 이타적으로 살 수는 없어도 억울하게는 살지 말자고 다짐했다.
한여름 밤에 꿈을 꾸듯 우리의 하동 여행은 답답한 듯 보이지만 실은 시원하게 흘러갔다. 여행 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토론은 막걸리를 마시는데 최고의 안주였다. 다음에는 숙소 주인도 꼭 끼워서 다시 토론해야겠다. 사람들과 함께 사람 냄새 서로 풍기며 편안했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