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에도 사랑을 찾는 이유.
박완서의 소설 <<나목(裸木)>>을 읽자마자 인터넷에서 박수근 화가의 <나무와 여인>을 찾았다. 두 개의 그림이 나왔다. 소설이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내용도 사람 내면의 외로움을 그렸기 때문에 1956년 그림이 소설 속에 나오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1964년에 그린 작품 속에는 나뭇가지에 잎이 무성하다. 그림을 보는 순간 안심이 되어 목이 멨다. 박수근 화가도 돌아가시기 전에 조금은 덜 외로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싶었다.
나목(裸木)의 사전적 의미는 잎이 지고 가지만 앙상히 남은 나무이다. 나목은 죽은 고목(枯木)과 겉은 비슷해 보이지만 속은 다르다. 봄이 올 거라는 믿음 하나로 추운 겨울을 버틴다. 6.25 전쟁으로 원하는 삶을 살 수 없었던 사람들은 때론 고목처럼 때론 나목처럼 현실을 살아내고 있었다. 박수근 화가도 박완서 작가도 그 시대를 나목처럼 버텨낸 사람들이었다. 1964년 나뭇가지에 붙은 나뭇잎을 그리며 박수근 화가는 봄의 향을 느꼈을까.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경과 옥희도 씨는 실제 박완서 작가와 박수근 화가를 연상시킨다. 소설이므로 그들의 관계는 실제와는 다르겠지만 함께 일했던 미군부대 초상화부나 박수근 화가의 그림을 보면 박완서 자신의 삶 중 일부가 이야기 속에 들어가 있음을 쉽게 추론할 수 있다.
나목이지만 고목이라 말해도 크게 의심받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전쟁은 모두의 삶을 흔들었고 추운 겨울은 이경과 옥희도 씨의 마음을 더 시리게 했다. 이경은 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죽고 싶다. 살고 싶다. 죽고 싶다. 살고 싶다. 사는 것이 힘들어 전쟁이 모두를 없애버렸으면 좋겠다가도 자신보다 어린 동료의 발그레한 볼을 비비며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계집애만 남겨놓으셨노' 어머니는 두 아들을 모두 여의고 초점 없는 눈으로 이경을 보며 말했다. 칼날 같은 그 말을 이경은 혼자서 소화시켜야 했다. 어머니를 계속 미워할 것인가 연민할 것인가. 두 오빠의 죽음이 진정 나 때문이었을까.
5남매의 아버지인 옥희도 씨는 화가로서의 삶을 살지 못하고 초상화부에서 싸구려 천에 미군의 얼굴만 그리며 살고 있었다. 현실에서 진정한 화가의 삶을 살지 못하고 메말라가는 자신을 어찌할 수 없어 먼 산을 쳐다보며 마음을 삭혔다. 그런 옥희도 씨를 이경은 알아보았다. 옥희도 씨도 마찬가지였다. 서로를 보며 각자가 가진 마음속 외로움을 느꼈다. 그리고 서로를 통해 그것을 사랑하고 연민했다.
고목 같지만 결국에는 나목이었다. 언젠가 봄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시간이 한참 지났다. 고인이 된 옥희도 씨의 미술전시회에서 이경은 <나무와 여인>을 고목이 아니라 나목으로 바라보았다. 고인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다 간 흔적을 보며 이경도 잊고 살았던 자신을 느꼈다. 옆에 있는 남편 때문에 그 시간이 비록 찰나였을지라도 자신이 여전히 존재함을 마음속에 되새겼다.
나는 박완서 작가의 솔직함을 사랑한다.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정석처럼 보여주는 작가이다. 나를 포장하고 싶은 마음을 늘 경계하게 해 준다. 작가의 등단작품이라는 말에 풋풋함을 기대했지만 다 읽고 난 후 남은 것은 희망의 까칠함이었다. 봄은 겨울 뒤에 온다는 당연한 진리를 이제야 깨달은 듯하다. 전쟁은 무섭다. 모든 사람을 뒤흔든다. 하지만 희망은 다시 날카롭게 자기 길을 찾는다. 사회적 상황과 주어진 역할을 떠나 날것의 자신을 잊지 않는 사람만이 나목처럼 봄을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