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이유

건강과 철학 : 관절이 있어서

by 마나

매주 금요일 오후 교사 4명과 학생 8명은 학교 뒷산으로 출발한다. 산은 하나인데 길은 여러 갈래라 그날의 날씨와 학생들의 컨디션에 따라 길을 선택한다. 산행 시간이 다가오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최선을 다해 마음속으로 기우제를 올린다. 비가 와도 우산을 쓰고 걷는 우리지만 학생들은 '혹시'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나는 학생들의 모습이 귀여워 곁눈으로 슬쩍 쳐다보지만 산행을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다.


걷기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학기 초에 우리가 왜 걷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학생들은 당장의 힘듦 때문에 기우제를 지내긴 하지만 걸으며 얻는 기쁨과 성취감을 알고 있었다. 우자가 걷는 이유를 이야기했다. "몸에 관절이 있으니까요." 농담인 듯한 그 말에 모두 웃었지만 관절이란 단어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걷는 이유에 그것보다 더 명확한 답이 있을까. 우리 몸의 각 기관은 모두 제 역할을 가지고 있다. 관절이 몸에 붙어 있는 이유는 잘 움직이기 위해서가 맞았다.


참새는 무릎 관절이 없다. 그래서 걷지 않고 총총 뛴다. 참새에게 걷기를 시키는 것은 폭력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람의 다리에는 관절이 있다. 나는 있는 것은 써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맹장과 같이 도태된 장기는 떼어내면 그만이지만 관절은 그러지 않는 걸 보면 아직 쓸모가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는 걷는다. 얼마나 다행인가. 만약 우리 다리에 관절이 없었다면 큰 산을 총총 뛰어 올라갈 뻔했다. 하루 대부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수업을 듣고 친구를 만나며 심지어 밥까지 먹는 요즘 학생들은 관절이 자신의 몸에 왜 붙어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까. 그 궁금증을 해결해주고 싶어 나는 고집을 부린다.


생각은 있으나 실천이 잘 되지 않을 때 처방전은 단 하나, 여지를 두지 않는 것이다. 출발이 어려웠지 시작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끝까지 갔다. 당연하다. 학생들은 나보다 훨씬 튼튼한 관절을 가졌으니까. 학생들은 살면서 알지 못했던 몸에 잠재된 가능성을 산행을 통해 확인한다. 의미 있는 시간임은 확실하다. 그래도 매주 금요일 오전에 궁시렁거리는 기우제 소리는 여전하다. 나는 살짝 귀를 막아 버린다. 그리고 오늘 날씨를 확인하고 어느 길을 가야 할지 정하며 속으로 '사랑해'를 외친다.


어릴 적 나는 집과 많이 떨어진 중학교를 다니며 걷기를 시작했다. 대학생 때는 다이어트를 위해 걸었고 지금은 그냥 걷기가 좋아 걷는다. 고백하자면 나는 왜 다리에 관절이 붙어 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관절이 있어 고맙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지금도 붙어 있는 관절을 굳이 다시 끄집어내어 왜 붙어 있냐고 묻고 싶진 않다. 그저 잘 사용하면 그뿐이다.


이런 내가 왜 고집을 부리고 있는가. 학교에서 굳이 걷기를 수업으로 하는 이유가 뭘까. 학생들은 걸을 이유가 없으면 걷지 않아도 되는 환경 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의자에 앉아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면 세상에 못 갈 곳이 없다. 아직은 농담처럼 하는 이야기지만 시간이 지나면 정말로 관절이 맹장과 같은 신세로 전략하고 말지도 모를 일이다. 컴퓨터로 바라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기에 나는 관절의 사회적 위치를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산행을 마치고 커피 선생님이 운영하시는 카페에 가서 하루닫기를 한다. 동그랗게 둘러앉아 서로의 땀냄새를 공유하며 시원한 플레인 요거트를 마시면 기분이 최고다. 학생들도 2시간 전 기우제를 올릴 때와는 다르다. 사춘기 특유의 건강함이 발그레한 볼에 붙어 반짝거린다. 학생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여느 때보다 더 크다. 교사들도 함께 떠들거나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웃는다. 참 행복하다.


지금은 방학이라 잠시 쉬고 있지만 2학기가 되면 또다시 산행은 시작될 것이다. 방학 직후는 학생들의 기우제가 가장 성대하게 진행되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걸을 것이다. 관절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그리고 컴퓨터 밖의 세상에 재미있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아가기 위해 걷고 또 걷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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