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근무하는 학교의 책이 완성됐다. 책 제목은 '학교 주제에 자유라니'였다. 한 학생이 입학 전 학교 설명회를 듣고 느낀 것이었다. 그대로 표지에 실었다. 그 학생은 '어디 두고 보자'는 마음으로 입학을 했지만 다행히 기분 좋게 수료했다. 두고 보니 자유가 무엇인지 알겠더라고 말하는 학생의 웃는 얼굴을 나는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다.
요즘 글을 쓰며 그 학생과 비슷하게 주제에 대한 고민을 한다. 교사 주제에 '학생'이라고 말해도 될까. 내 꿈은 만년 학생이다. 배우는 것을 좋아해서 하나를 배우기 시작하면 앞뒤 재지 않고 배운다. 평생 배우고 살고 싶다. 그래서 브런치에서도 다양한 '배움'에 대한 글을 적고 싶은 것이다. 그 꼭지 중 하나로 대안학교 안에서의 배움을 글로 쓴다. 내 수업을 제외하고는 나도 학생으로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우리 학교의 삶이 참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왜 내 주제가 고민이 될까.
글을 쓰는 것은 아주 세심한 작업이다. 내가 무슨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거나 가지고 있는 마음을 다르게 표현하려고 하면 글은 금방 어색해진다. 그런 글은 쓰지 않는 것이 더 낫다. 글을 쓰고 싶은 나는 더 솔직해지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최근에 브런치에 글을 올리면서 문득 어색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었다. 이게 뭘까 싶다가도 당장 글 쓰는 것이 재미있어 고민하는 것을 멈추곤 했지만 찝찝함은 잔상을 남겼다.
며칠이 더 지나자 어색한 느낌이 확실히 들었다. 어색함을 찾아 거꾸로 올라가니 내가 글 속에서 나의 위치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학교 이야기를 적고는 있으나 교사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로 글을 쓰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학생으로서 내가 배운 경험들을 소재로 삼고 싶은데 글 속에 나는 교사로서 학생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있었다. 직업병이었다.젠장!
'교사, '고등학생'이 되다'라는 내 매거진의 이름과 그 속에 담긴 글이 어울리지 않았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어색함을 느꼈다. 매거진의 이름을 '만년 학생'으로 고쳤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 이상 고치지 않고 그냥 뒀다. 그리고 다시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적고 싶은 걸까. 학교에서의 삶을 적고 싶었다. 흔히 직장은 일을 하는 곳이라 생각하지만 지금 근무하는 학교가 나에게는 일터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읽고 쓰고 듣고 말하고 걸으며 생활하는 곳, 학생과 교사의 경계가 불분명한 곳, 배우며 일하는 곳이 내가 있는 학교이다. 교과목을 배우고 사람을 배우고 세상을 배운다. 이곳에서 나는 행복하다. 그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
가끔 이런 생각도 한다. 학창 시절에 국영수사과 등이 이렇게 재미있는 것인 줄 알았더라면 공부를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뒤늦게 배우는 것에 맛을 들여 신나게 배우고 사는 나는 나이 40이 넘어도 배우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 내가 있는 학교가 특별한 곳이 아니다. 그것보다는 배우는 삶이 그런 행복을 준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이런 마음을 교사의 틀 안에서 제대로 알릴 수 있을까. 사람들이 읽기도 전에 교사 잔소리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리고 나는 교사이기 때문에 배움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배움을 좋아하는 교사일 뿐이다. 그래서 내 글 속에서 나는 철저히 학생이고 싶다.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교사의 틀을 어떻게 벗어버릴 수 있을까. 아직은 답을 몰라 답답하다.
내가 느끼는 어색함과 답답함을 '만년 학생'이라는 어정쩡한 매거진 제목에 그대로 달아놓는다. 그리고 찰싹 달라붙는 제목이 떠오를 때까지 그냥 만년 학생으로 지내야겠다. 일단 글을 적어보자. 길을 모를 때는 가다 보면 알지 않을까.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아닌지 눈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다.길 잃은 교사가 학생에게 묻고 싶다. 교사 주제에 학생이라고 말해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