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을 글로 적고 싶은데 적어도 돼요?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규모가 작아서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같이 모든 수업을 듣는다. 모두가 학생이다. 어제는 국어 시간이었다. 모둠으로 앉아 우리는 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 중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그때 조원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는데 대화가 너무 잘 됐다. 그 순간이 좋았다. 함께 이야기한 학생도 뭉클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이 말이 튀어나왔다. "이 순간을 글로 적고 싶은데 적어도 돼요?" 학생은 정확하게 "네!"라고 했고 나는 다 적고 보여준다는 말과 함께 대화를 끝냈다.
퇴근하면서 수업 시간의 대화를 되짚어봤다. 대화가 잘 정리가 안 됐다. 마음이 찝찝했기 때문이다. 내가 한 질문이 계속 떠올랐다. 준비하고 내뱉은 말이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말이다. 하지만 그 한 마디에 내가 요즘 어디에 정신을 두고 있는지 알아챌 수 있었다. 삶을 돌아보기 위해 글을 적는 걸까, 글을 적기 위해 삶을 돌아보는 걸까. 개학을 했고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나는 아직 방학 때 쓰던 글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간단한 학생의 대답, "네!"라는 한 마디가 더욱 나를 미안하게 한다. 나도 그 순간 그 대화가 좋았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말할 자격이 없는 듯하다. 내가 한 질문이 다시 봐도 욕심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혼자 방학인가. 학교생활을 적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학생들에 대한 내 생각보다는 나의 학교생활을 적고 싶은 것이다. 일과 중 대부분을 학생, 동료 교사와 함께 보낸다. 그 속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나 혼자만의 일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오늘 같이 욕심이 생겨 선을 넘을 때가 있다.
다시 생각해 본다. 삶을 돌아보기 위해 글을 적는 걸까, 글을 적기 위해 삶을 돌아보는 걸까. 지금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 맞는 듯하다. 글감을 찾는 하이에나 같다. 미안한 마음에 정신이 번쩍 든다. 학생과의 대화는 적지 않기로 했다. 대신 퇴근 후 나를 적는 것으로 마음을 다잡아 본다. 이 글을 학생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미안한 만큼 두려운 마음이 크다. 우선 방에서 나와 학교로 돌아가야겠다. 학교에도 글쓰기만큼 다양한 일들이 있을 것이다. 오늘은 찝찝하지 않게 살고 싶다. 정신 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