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프롤로그
내 별칭은 '고마 나다'를 줄여 '마나'이다. '그냥 나'라는 뜻인데 부산 사투리를 조금 넣어 '그냥'을 '고마'라고 바꿨다. 별칭을 설명할 때마다 부산 사투리를 섞어 맛깔나게 소개를 해야 하는데 부끄러움 때문에 맛있게 소개한 적은 없다. 사투리를 듣고 싶어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미안하기도 하지만 아직은 역량 부족임을 인정해야 한다. 좀 더 맛스러운 내 별칭을 위해 다시 노력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부끄럽게 소개되는 밋밋한 맛의 '마나'가 진짜 고마 나인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서는 각자가 만든 별칭을 이름 대신 사용한다. 학생과 교사가 격식을 따지지 않고 모두가 똑같은 사람으로 한 사회를 구성한다는 취지이다. 나도 학생과 동료 교사에게 '선생님'이 아니라 '마나'로 불린다. 온전한 나로 살기를 원하는 불가능한 꿈을 별칭에 담았다. 크게 의미를 두고 만든 별칭은 아니었는데 5년간 마나로 불리면서 서서히 내가 누구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졌다. 꽤 많은 질문을 하고 산다. 그리고 스스로 답을 찾을 때도 있고 그냥 넘어갈 때도 있다. 끊임없는 질문 속에 사는 것 자체가 호기심 많은 내 모습 그대로이다.
혼자 있어도 함께 있어도 고마 나로 살 수 있을까. 현실의 나는 사람이 좋지만 또 사람이 두렵다. 그나마 학생들과 있을 때 두려움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 것은 조물주가 그래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냐는 의미로 주신 특혜일 것이다. 왜 사람이 두려운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아직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냥 나'를 보지 못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아닐까. 완벽한 마나를 마음에 그려 놓고 지금의 나를 닦달한다. 사람들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다. 나를 숨기고 싶은 마음에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는 괜찮은데, 괜찮다는 것을 아는데, 머릿속에 있는 '괜찮다'가 아직 가슴으로 전달되지 않아 '안 괜찮은 순간'을 계속 만들어 낸다. 별칭에 기대어 좀 더 가벼워질 필요가 있을 듯하다. 지금은 상태를 아는 정도다.
부모님이 주신 본명도 의미가 있지만 스스로 만든 별칭도 그만큼의 위치가 있다. 나로부터 출발하는 나의 인생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나인데 아직 나는 그걸 잘 모른다. 몰라서 별칭에 희망을 담는다. 위인전에 나오는 '어릴 적부터 남들보다 탁월하여~'라는 문구를 내 자서전에 쓰진 못하겠지만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이라고는 쓰고 싶다. 올해 쓸 자서전에는 더도 덜도 말고 딱 지금의 내가 글로 복사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