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워지는 방법
책을 읽다보면 가끔씩 끊지 않고 계속 보고 싶은 책이 있다. 최근에는 <<불편한 편의점>>이 그러했다. 이 책 특유의 가벼운 편안함이 나를 웃게 했다. 뭐든 괜찮다고 토닥여주는 책이었다. 오랜만에 할머니 품 속에서 기분 좋게 자고 일어난 느낌이었다.
요즘 머리가 계속 무거웠다. 여러 가지 일이 있긴 했지만 내 몸의 가장 윗부분이 묵직해지니 움직이기 영 성가셨다. 약간의 어지럼증도 있어 방학 때 검사를 해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교사에게 방학은 늘 다음 학기 전쟁을 위한 장비 점검 시간이다. 이번 방학은 내 몸 제일 윗쪽 부분을 정비하며 병원 투어를 했다.
무거운 내 머리가 가벼운 책을 만나 무게를 덜어냈다. 독자와 책 사이에도 인연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 시와 때에 따라 똑같은 책이라도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책도 혹시 유기체가 아닐까. 머리와 책의 무게 차이 때문에 계속 헛소리가 나온다. 그냥 둔다. 어쩌면 헛소리가 아니라 어릴 적 가지고 있었지만 거의 잃어버린 상상력의 남은 조각일 수도 있으니까.
<<불편한 편의점>>2편이 있다 했다. 당장 사서 읽겠다고 나섰다. 서점을 가는 길은 늘 설렌다. 약간은 시원해진 날씨와 더 이상 읽지 않을 것 같은 책 몇 권을 팔아 사고 싶은 책을 살 것을 생각하니 자동적으로 몸에 힘이 주어졌다. 잠깐이긴 하지만 머리의 무게가 온 몸에 분산된 것 같았다. 거래하기 딱 좋은 컨디션이었다.
서점에 가니 <<불편한 편의점>>이 있었다. 내가 가지고 간 책들을 판 가격보다 두 배는 돈을 더 줘야 살 수 있는 책이지만 망설이지 않고 사서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너무 가벼웠다. 내 머리조차 가벼워 허공에 살짝 떠서 걷는 느낌이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머리의 무게도 혹시 잃어버렸던 상상력의 일부분이 아니었을까.
집에 돌아오자 마자 설레는 마음과 함께 책장을 '쫙!' 펼쳤다. 하늘에 둥둥 떠있던 내 마음이 바닥으로 순식간에 '쿵!'하고 떨어졌다. 첫 장에는 아주 낯익은 문장과 '산해진미' 도시락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표지만 다를 뿐 내가 읽었던 것과 똑같은 책이었다. 이럴수가. 책 안을 보지도 않고 책을 샀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불편한 편의점'이란 제목에 눈씻고 다시 봐도 2라는 숫자는 없었다. 왜 이것이 보이지 않았던 걸까. 마음이 붕 떠 있어 눈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일까. 책상에 앉아 표지에 있는 야간 알바 독고 씨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재방송을 보는 것 같아 내가 널 좀 안다고 씩씩거리고 싶어졌다. 혼자 웃었다.
오늘 병원에서 장비 점검 결과가 나왔다. 다행히 별 이상은 없다. 어지럼증은 귀를 많이 만져 그런 걸 수도 있다고 해서 이비인후과 가서 다시 점검하고 약을 받아왔다. 머리의 무거움은 여전하나 시간이 지나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 괜찮아질 거라 하셨다. 괜찮다는 말이 <<불편한 편의점>>의 느낌과 비슷했다. 나는 고마워 연신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래, 괜찮다. 실수를 해도 덤벙거려도 괜찮다. 그냥 놔둬도 진짜 괜찮다. 책도 생각이 있어 나를 따라왔을 것이다. 2편은 다시 사면 되고 머리는 쓸데없는 잡생각을 줄이면 된다. 바람 가는 대로 계절 가는 대로 조금은 힘 빼고 그렇게 있자. 가벼운 기분을 몸이 따라갈 때까지.
'괜찮아'로 가득 채워진 하루는 꽤 괜찮았다. 내일도 오늘처럼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내 상상력을 재미있어 하고 당황스러운 실수에 괜찮다고 말하며 괜찮은 하루를 만들고 싶다. 너무 가볍게 살면 안 되니 머리가 무게를 잡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