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착하지 않다. 순하지도 이타적이지도 않다.
그렇지 않은 인간이 살아오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착하다', '순하다', '배려를 잘한다'. 얼마나 바보같이 살아온 걸까. 더군다나 직업까지 교사다. 나는 학교라는 틀에 갇혀 타인의 인정에 때론 만족하고 때론 목말라하며 서서히 나를 없애는 바보였다. 실제로 내가 착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버려서일까. 착한 척하며 애쓴 삶이 억울해서일까.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한 채 나는 화가 났다.
글쓰기를 하며 내가 가진 틀과 마주쳐야 했다. 처음에는 글쓰기 자체에 푹 빠져 약간의 찝찝함은 무시가 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 그 무엇이 나뿐만 아니라 글도 답답하게 만들었다. 나에 대해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도덕적인 나에 대해 쓰고 있었다. 무슨 틀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내야만 했다. 찾아서 하나의 미련도 없이 다 버리고 싶었다. 바보같이 살아온 내 삶이 답답하고 또 답답했다.
며칠 전 나를 위하는 충고를 들었다. 내용이 무엇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순간 속에서 끓어 나오는 화를 느껴야만 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알고 저 말을 하고 있을까. 나도 찾지 못하는 내 틀을 알 것 같다며 아는 체를 하고 있는 건가. '마음은 진심이니 받아줘야 하지 않을까'라고 습관적으로 생각하는 나 자신이 짜증스러웠다. 내가 냈던 화는 그대로 나에게 다시 돌아왔다. 다른 사람이 아닌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는 증거였다. 혼자서 며칠을 앓았다. 이 화를 어떻게 해야 하나.
글쓰기를 꾸준히 계속하면 삶이 변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것이 궁금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직은 꾸준히 글쓰기를 했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라 삶의 무엇이 변했는지 알지 못한다. 혹시 지금 느끼는 화가 사람들이 말하는 변화 중 하나일까. 백 번 양보해서 글을 쓰는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화가 나는 것이 필수적인 과정이라면 지금 제대로 화를 내고 있기는 한 것인가.
왜 화가 날까. 그 속에 무슨 욕구가 들어 있는 걸까.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의 모습을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글쓰기를 통해 봐야 했다. 마음이 편할 줄 알았는데 편치 않다. 생각보다 저질인 내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그것을 포장하려는 마음도 보인다. 나는 나를 그대로 바라볼 준비가 아직 덜 된 걸까. 그래서 화가 나는 걸까. 그렇다면 글쓰기는 내게 독일까, 약일까.
나도 모른다. 글만 썼을 뿐인데 틀이 느껴졌다. 틀이 답답해 그것을 없애고 싶었다. 그렇게 시작되어 꼬리질문이 계속 이어진다. 힘이 든다. 그래도 글쓰기는 계속할 것이다. 답답한 삶은 그만 살고 싶기 때문이다. 더 이상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기존에 만들어진 틀에 갇혀 사는 것은 그만하고 싶다. 이 마음이 아집이 되진 않을까 두렵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있는 나를 본다. 그리고 그것을 그대로 적는다. 뭐든 해야 할 것 같아 글을 적는다. 글쓰기는 어렵다. 그리고 쉽다.
마나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