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이 제법 길었다. 며칠 전부터 깎아야지 하던 것을 미루다가 오늘 마음먹고 잘랐다. 여행 갔을 때 여섯 개 만원이라며 싼 맛으로 샀던 손톱깎이는 처음 기대보다는 훨씬 유용해서 몇 년째 잘 사용 중이다. 몽땅 자르고 나니 손이 깨끗하고 단정해 보인다. 매니큐어를 바르지 않아 화려하진 않지만 그래도 내 손이니 그냥 합격점을 준다.
내 손가락은 끝이 뭉툭하다. 끝이 가늘어지는 예쁜 손가락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 있게 뻗어 있다. 어릴 적 친구들은 내 손을 보고 끝이 잘렸다며 나머지가 어디 있냐고 놀려대곤 했다. 혼자 있을 때 손가락 끝을 잡고 꾹꾹 눌러도 보지만 두툼한 살은 얍삽하게 자리 잡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사실 나도 크게 개의치는 않는다.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손을 가지고 그래도 나름 잘 살고 있지 않는가. 그것이 고마워 뭉툭한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어 본다. 자세히 보면 나름 귀여운 맛도 있다.
그래도 예쁜 손을 보면 눈길이 간다.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내 눈이 움직인다. 분명 주인 얼굴을 봐야 하는데 손가락만 보고 이야기를 하다가 정신을 차리기도 한다. 특히 은행에 가서 업무를 볼 때 더 그렇다. 앞에서 내 업무를 도와주시는 은행원을 볼 때 손가락의 움직임을 본다. 어떻게 저렇게 예쁘게 생겼을까. 손가락 열 개가 참 단아해 보인다. 한참을 쳐다보다가 내 손을 본다. 괜히 미안해서 손을 쓰다듬는다. 다른 사람 손이 예쁘더라도 은행 문을 열고 내가 같이 나가야 하는 손가락은 뭉툭한 내 손가락이다. 홀대해선 안 된다.
오늘 아빠와 함께 먹을 저녁을 차렸다. 여행 가신 엄마를 대신해서 저녁을 만드는 내 손가락들이 영 어설펐다. 혼자 먹는 식사는 부담이 없는데 아빠가 계시니 손가락들이 긴장을 했다. 생선을 굽고 미역국을 데우고 두부를 잘랐다. 영양 듬뿍 밥을 만들기 위해 콩을 많이 넣었는데 밥에 콩이 들어간 콩밥이 아니라 콩에 밥이 들어가 있는 밥콩이 되었다. 콩을 좋아하는 나는 좋은데 아빤 어떠실까 걱정이 됐다. 아빠 손가락들의 움직임을 곁눈으로 봤다.
나름 잘 움직이는 듯했다. 생선 세 마리를 아빠에게 드렸는데 두 마리만 드셨다! 내 손가락들이 안절부절못해 입이 대신 물어봤다. "맛이 없어요?" 아빠는 맛있다며 가끔 두 마리만 드실 때도 있다 하셨다. 그리고 약간 덜 익은 생선 부위를 피해 다 익은 부분만 잘 골라 드셨다. 고마웠다. 나는 탄 부분을 골라내고 잘 익은 부분을 골라 먹으며 손가락들이 주눅 들지 않도록 "맛있다" 소리를 연신 내뱉었다. 체면에 걸려 그랬던 건지 진짜 맛있게 느껴졌다.
무사히 저녁 시간이 끝났다. 방으로 돌아와 내 손가락을 보고 있자니 엄마의 손가락이 떠올랐다. 40년 넘게 부엌에 계신 엄마의 시간이 느껴졌다. 내 손가락에 수고했다는 말을 붙이기가 민망해 말없이 조용히 손톱을 잘랐다. 고맙고 또 고마운 마음을 미안함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아 무거운 마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꿔 본다. 다음에는 내가 더 잘할 수 있도록 혼자 있을 때 요리 연습을 좀 해야겠다. 철딱서니 없는 딸이 하루만큼의 철이 든 날이었다.
마나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