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기 위한 여행 1
바다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 학생 6명과 교사 4명이 여행을 왔다. 콘셉트는 삼시세끼. 출발 전에 3박 4일 동안 먹을거리를 사고 최대한 지루하게 여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학교를 떠났다. 가을여행은 방학 동안 열심히 뒹굴었던 찌뿌둥한 몸을 풀며 2학기를 제대로 시작하기 위한 우리만의 준비운동이다. 부담이라고는 1도 없는 여행을 떠나오며 방학 때의 나를 멀리 떠나보냈다.
첫 끼는 비가 오는 날 크림 스파게티였다. 마지막 날을 제외하고 모든 끼니를 학생들이 책임져야 하는 여행이다. 학생들은 낯선 곳에 적응할 틈도 없이 가져온 프라이팬을 꺼내고 식재료를 자르고 다듬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나와 우자는 인근에 있는 카약 타는 곳이 아직 운영을 하는지 살피러 갔다. 날씨가 변덕스러워 내일 잔잔한 바다를 장담할 수는 없는 것은 점심의 크림 스파게티 맛을 장담할 수 없는 것과 같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카약을 타지 않아도 스파게티가 맛이 없어도 장대비가 쏟아져도 괜찮았다. 여행은 모든 것을 용서했다.
한 달 만에 보는 학생들과 교사들은 밥 한 끼에 벌써 식구가 되었다. 언제 어색했냐는 듯 서로를 보며 놀리기 시작했다. 스파게티가 맛이 없다는 학생에게는 눈치가 없다고 타박을 주며 내 그릇 속에 있는 스파게티까지 슬쩍 더 넣어주었다. 음식을 만든 팀에게는 맛있다며 눈에 잘 띄는 곳에 앉아 열심히 먹어주었다. 그것이 얻어먹는 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음식의 질을 따지면 안 된다. 음식 속에 학생들의 마음을 먹어야 한다. 그렇게 마음을 굳게 먹고 식사를 한다. 실제로 제법 맛이 있을 때도 있으므로 한두 끼에 희망을 버리진 않는다.
이번 여행의 약속 중 하나는 하루에 글 한 편을 쓰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자서전 쓰기를 시작하는 것이라 보면 된다. 저녁을 먹고 하루닫기를 하면서 각자의 글을 소리 내어 읽었다. 오늘 나의 글 제목은 '크림 스파게티의 비밀'이었다.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의 글을 들으며 살포시 오던 잠이 깼다. 내가 글 나눔을 참 재미있어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음식을 먹는다. 음식이 맛있다고 응원도 해주고 기회가 될 때 진짜로는 맛없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도 실실 웃을 수 있는 사이. 그런 사람들과의 여행이 어찌 좋지 않을 수 있을까.
여행 내내 숨죽여 진행될 마니또 게임도 마지막 날까지 한몫할 것이다. 물 밑에서 일어나는 소리 없는 아우성들이 매일 진행되겠지. 그리고 마지막 날 그것들은 소리를 내며 다시 우리를 웃게 할 것이다. 밥 먹는 것 빼고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콘셉트의 여행이다. 사람들 사이에 잔잔한 대화가 오고 간다. 끼니와 끼니 사이에 조용한 시간이 흘러간다. 고요하고도 평화로운 시간이 스파게티를 먹고 난 후 먹는 귤 맛과 같다. 스파게티는 맛있었다면 귤은 진짜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