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약 타러 가는 길

지루하기 위한 여행2

by 마나
<비 오는 아침>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은 새벽의 어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새벽 5시, 바닷가는 비가 쏟아지고 파도가 쳤다. 야외 천막 아래 벤치에 앉아 까만 바다를 봤다. 바다인지 허공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까만 빛이 무섭지 않았다. 새벽의 어둠을 혼자 먹빛이라고 이름 붙였다. 고요한 어둠과 나 사이에 빗소리가 톡톡 거리고 파도가 철썩거렸다. 어둠이 빗소리와 함께 매력적으로 빛났다.


여행 이틀째다. 카약을 타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일어나면 빗소리에 실망할 텐데. 마음이 쓰였다. 일기예보에는 오전에만 비가 온다고 했다. 기다릴 수밖에 다른 길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어둠이 옅어지더니 숨어 있던 파란색이 하늘에 올라왔다. 학생들이 아침밥을 하기 위해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를 보면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 슬쩍 방으로 다시 올라왔다. 새벽에 혼자만의 데이트는 괜찮았다.


<쨍쨍한 오전>

점심을 먹고 나니 하늘은 세상 누구보다 순진했다. 어이없어하는 나를 보고 슬쩍 눈짓하더니 학생들에게 고개를 돌려 카약 타러 가라고 웃음을 짓는 듯했다. 아침에 나한테 성질부린 것에 만족하는 모양이었다. 날씨가 흐렸다가 좋아졌을 뿐인데 마음속으로 상상하며 놀고 있는 내가 싱거워 혼자 웃었다.


카약을 타기 위해서는 고개 하나를 넘어야 한다. 40분 정도 걸어야 하는 거리다. 길을 보니 4년 전 여행이 떠올랐다. 낯선 곳이라 학생들을 무사히 데리고 가야 한다는 책임감에 불타올랐던 때였다. 학생들이 길을 가다가 혹시나 사고가 날까 봐 나는 연신 "옆으로 붙어라", "차 온다", "왼쪽으로 가라" 소리를 해댔다. 학생과 나란히 걷게 되면 혹여나 학생이 어색할까 봐 질문을 하고 쓸데없는 말도 지껄였다. 학생들이 장난으로 히치하이킹을 시도했을 때 트럭이 멈추는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길을 오고 가며 나는 조심 또 조심이었다. 안전했으나 즐겁진 않았다.


오늘은 같은 길에 다른 나를 넣었다. 가는 길에 가끔씩 똑같은 잔소리를 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그냥 재잘거리며 이야기를 했다. 길가에 먹을 수 있는 것이 지천이었다. 하나씩 확인하며 걷는 길이 재미가 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혼자서 걸었다. 카약을 타며 느꼈던 기분과 학생들의 웃음소리를 되새김질했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피로가 풀렸다. 이런 것이 혼자 또 함께 한다는 말이구나. 학생들은 여전히 안전했고 나도 즐거웠다. 그리고 편안했다.

<시원한 밤>


여행은 계속된다. 숙소에 돌아오니 펜션 주인이 구워주신 전 냄새가 솔솔 났다. 학생들은 바닷물 많이 마셔서 건강이 걱정된다며 엄살을 부리고 나는 죽으면 안 된다며 되받아쳤다. 같은 길을 함께 오고 간 사람들 사이에는 끈끈한 뭔가가 생긴다. 크게 뭔가를 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게 된다. 지루한 시간이라 작은 마음도 선명하게 보이는가 보다.


<바나나 보트 하이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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