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과 남해로 여행온 지 3일째였다. 여행의 콘셉트인 지루함에 지루함을 더하기 위해 우리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노도로 향했다. 아침에 학생들이 싼 네모 김밥 두 개씩 챙겨 들고 손님은 우리밖에 없는 배를 탔다. 노도는 <<구운몽>>을 쓴 서포 김만중이 귀양살이를 하다 돌아가신 곳으로 유명하다. 우리도 김만중이 지났던 뱃길을 그대로 따라 들어갔다.
노도에서 내가 인상 깊게 본 것은 아직 다 크지 않아 작고 푸르스름한 감과 귤나무였다. 노란색 귤만 본 지라 귤의 처음색이 나뭇잎과 같은 녹색인 것이 생소했다. 작은 나무에 달려 있는 열매는 아기 같았다. 노랗고 달달해질 때까지 과일은 충분히 익어야 하고 사람은 열심히 나이를 먹어야 한다. 아기가 어른이 되고 풋과일이 달달한 과일이 되는 것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먹는 법을 모르는 아이를 위해 부모가 옆에서 수저 사용법을 가르치고 귤은 귤색으로 감은 감색으로 변할 때까지 뿌리가 영양분을 운반한다. 푸른 귤을 보며 어린 김만중의 모습을 상상해봤다. <<구운몽>> 밑에는 어머니가 김만중을 위해 직접 필사하셨던 수많은 책이 있었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독서광이셨다. 어머니가 나이가 들어 책을 읽을 수 없게 되자 김만중이 지어낸 이야기를 듣는 것을 낙으로 삼으셨다. 나이 50세가 넘어서도 어머니를 위해 동물 소리를 내고 아기 흉내를 내었다는 일화는 김만중의 마음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는 귀양살이로 나이 많은 어머니 곁에 있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소설 <<구운몽>>을 적으며 전했다. 김만중의 마음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구운몽>>을 어머니가 읽으셨을 때 어떠셨을까. 옆에 있지 않은 자식이지만 잘 익어가고 있음을 느끼고 위로를 받았길 바란다.
김만중은 소설을 쓰며 무슨 마음이었을까.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은 뭘까. 자식이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은 뭘까. 익어가는 과일처럼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다 익은 소설만 읽을 수 있을 뿐 글을 적으며 느꼈던 김만중의 마음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마음이 익어간다는 것은 때론 그리움으로 때론 웃음으로 표현될 것이다. 익어가는 삶을 사신 김만중의 삶을 <<구운몽>> 이야기를 다시 생각하며 상상해본다.
수백 년이 지난 후 우리는 한글로 지어진 역사적 의의가 있는 소설로 <<구운몽>>을 읽어야 한다. 시험에 나오기 때문이다. 김만중이 어떤 이유로 <<구운몽>>을 썼는지 알았더라면 학창 시절 소설을 공부할 때 좀 더 애틋했을 텐데. 안타깝게도 나는 글 속에 들어 있는 유불도 세 종교의 의의만을 외워야 했다. 작가의 깊은 마음을 헤아리기에는 교과서 속 <<구운몽>>은 너무 딱딱했고 나는 덜 익어 떫었다.
'나이를 먹는다'고 말한다. 먹는 행위는 턱을 움직여 이를 이용해 잘게 음식물을 잘라야 하는 능동적인 행위이다.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나이를 먹기도 하고 나이가 들기도 한다. 나이를 먹는 것은 과일이 익는 것과 같고 나이가 드는 것은 과일이 썩는 것과 같다. 익은 과일은 먹을 수 있지만 썩은 과일은 먹을 수 없다. 나는 익어가고 있는 걸까. 썩어가고 있는 걸까. <<구운몽>>을 쓴 김만중의 마음을 다시 읽어본다. 잘 익은 과일의 맛이 난다. 그리고 내 부모님을 생각한다. 나는 나이를 먹고 있는 걸까, 나이가 들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