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매일 반성문을 쓴다

지루하기 위한 여행3

by 마나

여행 3일째, 노도에서 각자 지루하기 위한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도 섬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작은 카페에 앉아 자서전을 쓰고 있었다. 그때 오비완이 카톡이 왔다. 조금 있다가 영어를 좀 봐달라고 했다. 아무 생각 없이 그러겠다고 답한 후 다시 글을 적었다. 고양이가 밖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고 카페 안은 조용했다.

2시가 조금 못 되어 선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태풍 대비를 위해 배를 일찍 삼천포로 이동시켜야 해서 지금 바로 가야 한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10명이 함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섬 곳곳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연락을 해야 했는데 여행 시작 전부터 학생 휴대폰은 걷은 상태라 학생들과는 연락 방법이 없었다. 근처에 있던 5명은 밑으로 내려보냈다. 4명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있었으므로 다시 걸어 올라가던 중 갑자기 카톡 생각이 났다. 연락을 했더니 오비완이 바로 읽고 내려오겠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선착장에 학생 4명이 뛰어왔다. 나는 반가워서 오비완에게 카톡으로 연락이 되어 너무 다행이라 했다. 바다는 잔잔했고 날씨도 괜찮았다. 어촌은 이렇게 일찍부터 태풍을 대비해야 하는구나. 계획보다 조금 일찍 나오게 되어 선장님께서 미안해하셨지만 우리는 배가 빨리 출발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우리 눈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태풍의 기운을 이 사람들은 느끼는구나 싶어 신기하기도 했다.

<노도를 나오며 배에서 찍은 사진>

노도에서 숙소까지는 배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학생들은 다시 숙소로 들어가 각자 시간을 보냈고 교사들은 숙소 밖 큰 나무 아래에 모여 회의를 했다. 핵심은 여행 전에 학생으로부터 핸드폰을 걷은 것이었다. 친구들끼리 몸으로 부대끼며 지내는 시간을 주기 위함이었는데 노트북이 있으니 온라인으로 들어갈 수 있어 각자 따로 지내고 있었다. 학생들이 유튜브를 사용한다는 사실도 공유했다. 그때 우자가 내가 카톡으로 학생들을 불러낸 것을 말씀하셨다.


"급했는데 카톡으로 연락되어 다행이야. 고마워."


내가 오비완에게 선착장에서 했던 말이었다. 급해서 한 말이었지만 여행 규칙과 맞물려 이야기가 나오니 놓친 부분이 보였다. 억울했다. 급한 상황이었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우자의 말이 틀린 것이 없어 반박할 수 없었다. 잠시 생각을 한 후 내 억울함은 묻어두기로 했다. 지금은 내 말을 할 때가 아니었다. 언젠가 또 다른 급한 상황이 왔을 때 내 억울함을 풀어 우자를 놀릴 수 있을 때가 올 거라 믿었다. 마음이 눈에 보이지 않는 건 가끔 편리하다. 속으로 구시렁거리고 나니 다시 차분해졌다.


교사로서 놓친 부분을 챙겨봤다. "급한데 카톡으로 연락이 돼서 다행이야. 그런데 지루함을 느껴보자고 온 여행에 노트북으로 유튜브를 보고 카톡을 사용한 것은 또 다른 문제인 것 같아. 그 부분은 어떻게 생각해?" 내가 오비완에게 말했어야 할 대사였다. 영화 촬영이라면 "컷!"하고 다시 대사를 치면 될 텐데 학교는 실전이라 되돌아갈 수 없었다.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 노트북 사용을 허락하면서 유튜브는 보지 마라고 하는 것은 학생 자제력의 문제인지 교사들이 세심하지 못했던 문제인지도 따져봐야 했다. 이 부분을 학생들과 같이 의논하기로 했다. 회의가 끝나고 나는 조금 의기소침해져서 숙소로 돌아갔다.


하루닫기가 시작됐다. 우자가 학생들에게 노트북 사용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학생들은 바로 알아 들었다. 각자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기 시작했다. 나도 오늘 카톡을 보낸 이야기를 했다. 비록 하루밖에 남지 않았지만 지금부터라도 노트북은 자서전을 적는 데만 사용하자고 결론을 냈다. 이야기를 하고 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이 날 밤은 학생들이 각자 흩어지지 않고 6명이 모두 모여 밤늦게까지 게임을 했다고 했다. 마음이 찡했다. 다음 여행에서 내가 놓치지 않아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정리했다.


교사는 매일 반성문을 쓰는 사람인 것 같다. 자신을 성찰하고 변하는 과정을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조금 먼저 배운 학생이다. 부끄러움도 억울함도 모두 적는다. 반성문을 적기 제일 좋을 때는 학생들과 헤어진 직후이다. 그래서 지금 적는다. 오늘의 반성문이 내일의 지침서가 되기를 바라며 여행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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