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드레스 입고 화장실 가는 법

결혼식 D+1

by 고니크

내가 어제 결혼식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질 않는다.


아침에 일어나 몸무게를 재보니 1kg가 빠져있다. 어지럽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엄청나게 난다. 가만 가만... 어제 무슨 일이 벌어졌었더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타투를 가리는 특수분장 업체에 갔다. 비몽사몽간에 타투 커버를 했고, 그걸 마치고 나오니 새벽 5시였다. 어두운 하늘에서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큰일이다. 눈이라니. 샵까지 가는 도로가 막히면 어쩌지. 지각하면 안 된다! 나는 느릿느릿 몸을 흐느적대는 정기를 재촉했다. 생각해보니까 맘에 안 드네, 홍정기. 이사 준비도 나 혼자, 결혼 준비도 나 혼자, 신혼여행 준비도 다 나 혼자. 결혼식에서도 내가 널 다그쳐야겠어?


내가 어제 분명히 필요한 준비물을 다 챙겨놓으라고 했건만 정기는 결혼식에서 입을 정장을 여전히 옷장 안에 걸어둔 채로 당당한 표정으로 준비 다 했다며 나가자고 말한다. 이마 탁. 눈 질끈. 정기의 정장을 챙겨나오면서 내 마음은 다시 침대로 들어가고 싶었다.


샵에 가서 헤어와 화장을 받았다. 인턴인 듯한 담당자 분이 드라이기로 내 두피를 익혀버릴 기세였다. 이왕 익히실 거면 미듐웰던으로 해주세요... 하, 긴장돼. 미치겠어. 너무나 긴장된다. 신부 입장 어떻게 하지? 연습한대로 아빠랑 왈츠 잘 출 수 있을까? 혼인서약서 읽는데 염소소리 나면 어떻게 해? 표정관리 잘 할 수 있을까? 나 못생긴 것 같아... 나는 메이크업 선생님께 계속 "저 너무 떨려요.", "긴장돼요", "미치겠어요"라고 말했다. 메이크업 선생님은 내 말에 대꾸도 없이 계속 웃으시기만 했다. 왜지?


<메이크업 선생님 시선>

신부님이 긴장된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너무 웃기다. 왜냐면,

"저 너무 긴장돼요. (1초 후) 드르렁 쿨 (번쩍) 아... 미치겠어요. 진짜 너무 떨려요. (1초 후) 드르렁~"

신부님은 긴장을 하신 걸까 긴장을 안 하신 걸까. 나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하하하...

나는 긴장했다가 잠들었다가를 단시간 내에 굉장히 많이 반복해댔고 그래서인지 아무도 내가 긴장했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 헬퍼이모님이 오셔서 드레스로 갈아입고, 플래너님이 오셔서 악세서리를 골라주고, 나는 어엿한 신부가 되었다. 젠장! 너무 떨리잖아! 목말라! 물! 물을 다오! 물! 계속 조갈이 났다. 예식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생수병 한 통을 비웠고 그것도 모자라 창밖으로 보이는 한강물도 다 마셔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평생 후회할 순간을 만들고 있었다. 손수.


식장에 도착했다. 미치겠다. 화장실에 가고 싶다. 오줌이 마렵다. 어쩌지. 네이버로 검색해봤다. [웨딩드레스 입고 화장실 간 사람 후기], [웨딩드레스 화장실], [결혼식날 화장실], [드레스 입고 화장실]... 없다. 아무도 없다. 신부는 식 아침부터 모든 액체류를 먹지 않는단다. 드레스를 입으면 화장실에 갈 수 없으니까. 어... 안 되는데... 안 되는데요... 자칫하다간 하얀 드레스가 노란 드레스가 될 수도 있겠는데요...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헬퍼 이모님. 헬퍼 이모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자기가 있지 않냐면서 웨딩드레스를 입어도 화장실에 갈 수 있다고 했다. 아주, 아주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나를 안심시켜주셨다. ... 안심시켜주시지 말지. 만약 이모님이 이때 화장실 못 갑니다했으면 나는 죽을 힘을 다해서 참았을 것이고 내 몸에는 수분의 재분배가 이루어져 요의가 저절로 해결됐을 것이었다.


이모님은 나를 데리고 화장실로 데려갔다. 손씻는 사람 두 사람, 줄을 서 있는 사람 한 사람, 칸 안에 세 사람 그리고 나와 이모님. 도합 여덟 명이 그 공간에 있었고 이모님은 자기만 믿으라는 표정으로 내 드레스를 거의 배꼽까지 들어올렸다. ...이모님 여기 사람있는데요... 많은데요 사람...


이모님은 여전히 든든한 표정으로 여기서 벗으라고 했다. 뭘요? 다요. 다... 뭘요. 그러니까 뭐요. 팬티요!


아...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나. 여기 사복 입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혼자만 휘황찬란 드레스 입고 있는 내가, 누군가(이모님)가 치마를 들어주고 있는 상태에서, 칸 안도 아니고 밖에서, 내 아랫도리를 공개해야 하는 거구나? ... 이모님 이제 저 안 마려운 것 같아요.


더 수치스러운 건 뭐였는지 아시는가. 드레스때문에 문 열고 볼 일을 봐야 했던 거? 아니. 치마를 들춘 채로 속옷을 올려야 했던 거? 아니. 제일 수치스러웠던 건 변기의 물을 이모님이 내려줬다는 거다. 이전 글을 본 사람은 아시겠지만 나는 생리 중이었다... 아... 글로 쓰는데도 미치겠네. 이게 어제 나한테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는 거지. 나 34살인데, 내가 그랬다는 거지. 아무도 잘못 없고 내가 나 스스로 이런 일을 초래했다는 거잖아. 와... 화장실을 나서며 생각했다. 다신 물 안 마셔. 다신. 절대.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 다음부터는 기억이 없다. 내가 어느 순간 신부대기실에 앉아서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고, 눈을 떠보니 입장 문 앞에 서 있었으며, 다시 한번 깜빡였더니 신랑 홍정기 군과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키스를 하고 있었다. 위에서 떨어지는 꽃가루를 맞으며 이거... 꿈인가... 나 아까 화장실에서 수치사한 건가... 하는 생각을 했다.


새벽 4시에 기상해 집에 들어오니 저녁 8시. 카톡 400개가 와있었다. 친구들이 보내준 사진과 영상을 보면서 우와 이 결혼식 진짜 귀엽고 웃기다고 생각했고, 그게 내 결혼식이었다는 체감은 들지 않았다. 기억을 잃은 것 같다. 어렴풋하게 세은이가 내 축사를 하면서 염소처럼 목소리를 떨었던 것 같기도 한데... 아빠가 울었었나? 내가 울었었나? 아니, 아무도 울지 않았었나? 식사하는 친구들 앞에서 윙크를 찡긋하며 너스레를 떨었던 기억이 전생체험하듯 불확실하게 떠오른다.


결국 내가 해냈다. 내가 해냈어. 내가 해내다니. 몸으로 겪은 것과 마음으로 체감하는 그 둘 사이에는 아직 5cm정도 거리감이 있지만 머리로 안다. 내가 해냈다는 사실을. 우와! 우와! 우와! 내가 결혼식을 했어요, 여러분.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행사를 내가 해냈다고요. 결혼식이 끝나고서야 나는 기쁘다. 작가님이 내게 그러셨는데 이제 울지 말고 행복만 하라고. 네! 행복해요. 이제 나는 정말로 행복하다.


결혼식에 와줘서 정말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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