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D-1

by 고니크

내장이 찢어지는 고통과 함께 잠에서 깼다.

생리가 시작된 것이다.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생리가 터지다니. 나는 배를 움켜잡고 데구루루 구르며 생각했다. '나의 결혼 액땜은 끝나지를 않는구나 ㅜㅜ'


지난 일 년 동안의 결혼 준비 기간 중 그 어떤 것 하나도 내 맘대로 흘러간 게 없었다. "행복한 결혼식을 해야지!"로 시작했던 마음은 "그냥저냥 얼른 끝내고 말자"로 이어졌다가 종국에는 "TV에 나오는 일만 없길..."이 되었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러니까 왜 그런 남편을 골라서 만났어~ 지팔지꼰'이라고 반응했었는데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자, 저한테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고 해보세요. 얼른.


"결혼은 미친 짓이다"

- 그러니까 왜 그런 지인, 아는 사람, 지나가던 사람, 말 몇 번 섞은 사람, 건너 건너 아는 사람, 과거에 알던 사람, 주변사람, 이웃, 말로만 들은 사람, 일면식이 있는 사이, 운동하다 만난 사람, 일로 만난 사람, 동료, 친구, 선배, 스승, 친척, 가족, 남편을 골라서 만났어~ 지팔지꼰~


... 결혼은 아주 많은 의미에서 미친 짓이다. 나는 그것을 일 년이라는 시간을 겪으며 알게 되었다.


내가 알게 된 것은 또 하나가 더 있다. "내 얼굴에 침 뱉기"라는 말. 솔로일 때는 내게 벌어진 일, 내가 들은 말, 내가 겪은 사건, 나에게 영향을 미쳤던 일, 나의 과오, 미숙함에 대한 결과들에 대해서 친구들에게 이러쿵 저러쿵 털어놓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주먹 끝으로 정수리 쪽을 가볍게 툭 치곤 "에헷"이라는 말만 뱉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었지만, 이젠 아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나에게 벌어진 일들을 입 밖으로 꺼내면 그건 이제 그거 대로 결국 다시 나의 얼룩이 되는 것이다.


고민을 털어놓으면 그 고민이 결국 나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고, 그 다음 고민을 말함에 있어 장애를 만들고, 그걸 해결하겠다고 중언부언 설명을 하다보면, 그것이 또 다른 나에 대한 선입견이 되었다. 결혼에 있어서는 내 개인의 문제와 오랜 역사가 만들어온 사회적 맥락을 떨어뜨려 놓을 수 없었고 "에헷"으로 끝내지 못 하는 고민들이 점점 늘어났다.


답답해서 속이 터질 것 같고, 머리가 돌아버려 제정신이 안 차려지는 순간들이 나를 휘감았다. 내가 더 미치겠는 건 이걸 어디에다가 풀어 말할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남편에게도. 두 사람이 행복하기 위해 결혼을 하는 것인데, 시간이 지날 수록 나는 점점 더 외로워졌다.


여러 문제들이 있었지만 그 중 압권은 집안 문제였다. 고씨 집안과 홍 씨 집안의 환상의 콜라보. 각 집안의 무사들이 각개전투로 총칼을 휘둘렀고 나와 정기는 속절없이 얻어터졌다. 이 전장을 어떻게 빠져나가야 한단 말인가. 저 고지만 지나면 안전지대가 나올 것 같은데 가는 길엔 지뢰가 너무 많다. 이게 공포영화라면 나는 패닉에 빠져 소리 지르는 역할이었고 정기는 <추격자>에 슈퍼마켓 아줌마 역할이었다. 화가 치솟다가 우울에 풍덩 빠졌다가 더운물, 찬 물을 오가며 나는 점점 쫄깃해졌다.


그놈의 '내 얼굴에 침뱉기'... 내 입은 닫혔고 속은 곪았으며 그때부터 살이 쪽쪽 빠지기 시작했다. 머리카락도 함께 빠졌다. 그래서 나는 지금 골룸이다.


결혼 6일을 앞뒀을 때까지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눈물로 밤을 지새우던 나. 나는 결혼하기 싫다고 악쓰고 발을 구르며 이마트 바닥에 누워있는 어린아이의 심정이었다. 이쯤 떼를 썼으면 누가 나 좀 둘러업고 갈 법한데... 싶은 그때, 다행이도 내 속을 끓이고 있던 문제들이 조금씩 해결되기 시작했다. 이제야? 아니아니 이제라도. 한국인들은 마감의 압박을 받아야만 숙제를 한다는데, 그게 결혼에서도 적용되다니... 절레절레. J 98%인 저는 매우 괴롭습니다.


그렇게 눈 떠보니 오늘이다. 결혼식 하루 전. 이제라도 좋게 좋게 흘러갈 일만 남았다며 가슴을 쓸어내린 지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생리라니. 도대체 언제 좋게 좋게 흘러갈 건데? 어? 왜! 왜!!! 도대체 내 결혼식 왜 이렇게 쉽지 않은 건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나는 안심을 할 수가 없다. 부디 내일 결혼식장에서 나를 놀라게 할 일이 벌어지지 않길 바라며...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청해 본다. 이제 진짜, 진짜 내일이다. 설렘보단 두려움이 나를 압도한다.


나, 잘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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