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치겠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다가 또 죽은 듯이 고요해지는 것을 반복한다.
내가 결혼이라니. 허, 참나. 내가? 어? 내가? 이 고재연이? 내가 유부녀가 된다고? 거짓말. 아니 이게 말이 되지가 않잖아.
내가 어떻게 300명 넘는 사람들 앞에서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휘황찬란한 옷을 입고 걸어갈 수 있겠어? 내가 어떻게 그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목소리를 내고, 정기와 손을 잡고, 정기와 키스할 수 있겠냐고. 심지어 그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직장 동료, 친구, 지인, 가족, 친척들이잖아. 나를 모르면 철면피를 깔겠지만 다 나를 아는 사람인데 어떻게 내가 광대가 될 수 있는 거냐고.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아니 나는 못할 것 같다. 안 돼. 말로라도 부정적으로 말하면 안 되는데... 초등학교 시절 '프리랜서'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저는 커서 프리랜서가 될 거예요!"라는 발표를 했었다. 친구들은 모르는 단어를 내가 알고 있으니 나는 그냥 그걸 뽐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나는 진짜로 프리랜서가 됐다. 젠장.
고3 수능날, 나는 내가 떨고 있다는 것을 허세로 감추기 위해 "내년에도 또 와야겠다~" 여유를 부렸고, 나는 진짜로 내년에 또 갔다. 아빠의 등골을 다 빨아먹고 재수를 했단 말이다. 말은 씨가 돼. 나는 잘생기고 몸 좋고 주관이 없는 남자를 만나서 결혼할 거라고 동네방네 소리치고 다녔다. 그리고 그렇게 정기를 만난 거다.
정기와 사귄 지 얼마 안 됐을 때 우리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난 정기랑 결혼할 거라고 말했다. 심지어 인스타에도 정기와의 결혼을 암시하는 글을 길게도 썼음. 미친 나. 20살 만우절 때나 하는 짓을 서른 넘어서하다니. 근데 진짜 그게 현실이 됐다. 그 현실이 5일 남았다고요. 나 어떡해.
사실 내가 지금 뭘 불안해하고 뭘 두려워하는지도 모르겠다. 마음을 다스리고 하나씩 짚어보면 담배연기 손에 쥐듯 아무것도 잡히지 않아. 하지만 은근한 이 불쾌의 냄새.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어떡해'를 연발하게 만드는 이 교묘한 냄새. 그것이 나를 잡고, 쥐고, 누르고, 터트리고 있다.
결혼식날 생리가 터지면 어떡하지. 하얀 드레스가 피로 물들면? 난 얼마를 물어줘야 할까. 얼마나 수치스러울까? 대응할 또 다른 드레스를 제시간에 구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혹시 모르니 지금이라도 예비 드레스를 하나 마련해놔야 하나.
축의금 사기 행각도 많다는데 그런 사기를 당하면 어떡하지. 누군가가 축의함을 훔쳐서 달아난다면? 축의대를 맡은 사람들이 실수로 봉투를 잃어버린다면? 식이 끝나고 정산을 할 때 돈이 모자라면 어떡하지?
사람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이 와서 뷔페 음식이 모자라면 어떡하지? 음식 기다리느라 줄을 서다가 싸움이 나면? 요리사님이 오늘따라 컨디션이 안 좋아서 맛이 없으면 어떡해?
사람들이 내 드레스 이상하다고 하면 어떡하지. 얼마 전 나는 인스타에 본식 드레스 후보 사진을 3개 올렸었다. 사실 나는 3번 드레스를 선택했지만 댓글을 단 거의 모든 사람들은 2번이 제일 예쁘다고, 무조건 2번 입으라며 한 마음 한 뜻으로 입을 모았다. 그래서... 아... 저 3번 입는데요...라고 말하지 못했어. 사람들이 와서 '엥? 왜 예쁜 2번 안 입고 이런 3번을 입은 거야?'라고 한다면?
2부 드레스도 걱정이다. 나는 기괴하고 괴랄한 디자인을 좋아하기 때문에 무난한 느낌으로 골랐던 본식 드레스와는 다르게 2부 드레스는 내 취향으로 단박에 선택했다. 나는 정말 그게 예쁘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하지만... 100% 사람들이 '그걸... 자발적으로 고른 거야...?' 할 거라는 걸 안다. 고를 때는 머어땨용의 마음이었지만 막상 오늘이 되니 후회된다. 그냥 플래너님이 골라준 거 입을걸.
버진로드를 걷다가 넘어지면 어떡하지. 나는 한 달 전 작은 키를 가리기 위해 13센티 통굽을 샀다. 나는 한평생 저런 높이의 신발을 신어본 적이 없다. 차라리 풍선 불어서 강아지 만들어주는 피에로 아저씨 신발을 빌려올걸. 그게 더 걷기에는 안정적이지 않을까.
나는 내가 기절할까 봐도 걱정이다. 다이어트 막판 스퍼트를 올리고 있는 나, 앉았다가 일어나면 어지럽다. 몸을 갑자기 휙 돌려도 어지럽고, 고개를 숙였다 들어도 어지럽다. 아니, 공교롭게도 인스타 릴스에 결혼식에서 기절한 신부 영상이 뜨더라고. 그거 버전 2의 주인공이 내가 되는 거 아니냔 말이야.
어떡해. 어떡하냐고! 결혼을 앞두고 다른 신부들은 어떤 기분을 느낄까? 마냥 설레고 행복할까? 나는 그 정반대의 기분을 느끼고 있다. 사회자를 해주기로 했던 친구는 컨디션 난조를 호소하고, 축사 담당자는 2주 전 급하게 바뀌었다. 축가 할 애들 중 한 명은 아직 가사를 외우지도 못했대. 축가 못 하겠다고 결혼식 안 하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는 걸 정기를 통해 들었다. 장난이었겠지만 나는 웃지 못했다.
웨딩홀에 최종 점검을 갔는데 왜 이렇게 홀이 작고 좁아 보이는지... 시장 바닥처럼 북새통을 이루지 않을까? 누가 누군가의 발을 밟아서 시비가 걸리진 않을까? 내가 초대하지 않은 사람이 불쑥 나타나면 어떡하지? 미치광이 또라이 전 남친이 찾아온다면? 예식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사진 찍을 시간이 모자라면 어떻게 되는 걸까. 몰라. 모른다고. 나도 몰라. 아아아아악!
결혼을 처음 준비하던 1월, 나는 그때도 결혼에 대한 기대나 부푼 마음같은 건 없었다. 준비를 하다 보면 어련히 생길 거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이게 뭔가. 5일 남았는데 나는 여전히 무섭다. 내가 결혼이라니.
제가 비밀을 하나 말해줄까요? 저 사실은... 응애입니다. 자기 모에화 죄송한데요. 솔직히 제가 저를 봤을 때 진짜... 솔직히 귀엽고 작고 올망졸망하고 깜찍한 응애거든요. 저 진짜 아직 어른 아니거든요. 저 아직도 집에 들어오면 옷도 안 갈아입은 채로 거실에 누워서 폰 한 시간 정도 하고요. 정기한테 삐지면 삐진 티 팍팍 내면서 인스타 차단했다 풀었다 난리부르스 피우고요. 기분 좋으면 개다리춤도 춰요; 아, 나이가 34살인 건 맞는데요. 이제 왼쪽으로 자면 왼쪽에 팔자주름 생겼다가 오후쯤에나 풀리기도 하고요. 정수리도 조금 휑 비기도 했는데요. 난소 나이도 많... 아니, 그런 거 모르겠고요! 그냥 나는 아직... 아직... 내 생각에 나는 아직 이런 성대한 어른의 파티를 주최할 그릇이 못 되는 것 같다고요ㅠㅠ!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어? 아, 말이 씨가 된댔지. 서술어 형태를 바꿔야겠다. 할 수 있어. 내가 할 수 있어. 혼자 하기 너무 무서워서 합동 결혼식하고 싶단 생각 같은 거 안 했어. 코로나 시국에 결혼할 걸이라는 생각도 안 했어, 난. 할 수 있어. 내가 할 수 있어. 나는 할 수 있다. 그래, 할래. 해보는 거야. 가, 가는 거야 그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