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몰라서, 알고 싶어서 쓰는 글이라 뭔가를 기대하고 들어오신 극내향 여러분들껜 심심한 사과의 말씀 올립니다. 앞으로 쓰여질 글은 약간 변태같을 수 있다는 점 미리 유의해주세요.
내가 다니는 요가원에 어쩐지 며칠째 계속 눈길이 가는 사람이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분은 회원 중 유일하게 요가매트를 가지고 다닌다. 그러니 눈에 띌 수밖에. 내가 다니는 요가원은 고인물 요가원이라 이름하야 초록장판이 깔린 곳이거든. 초록장판이 몸에 쩍쩍 붙으며 마찰력을 주기 때문에 요가매트는 사실상 필요가 없단 말이야.
글을 쓰다 말고 주저하게 된다. 그 분이 혹시나, 혹시나,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 글을 어떻게 보게 되면 어떡하지. 이거 윤리적인 글 맞긴한가. 모르는 사람에 대한 나의 감상을 이렇게 막 써도 되는 걸까. 모르겠다. 정말로 모르겠어.
요가매트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 정도로 작게 인식됐던 사람한테 확 관심을 가게 됐던 건 그 분의 발을 봤을 때였다. 하. 봐봐! 벌써 변태같잖아! 이거 문장이 좀 이상하잖아! 스토커냐고! 계속 써도 되는 거 맞아?
아니, 발이 어떻다 저떻다는 내용이 아니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발가락인데, 아놔. 더 변태같잖아! 누가 날 말려! 누가 이걸 제일 먼저 읽으시는 분은 댓글이든 디엠이든 메시지든 연락 좀 줘요. 문제 될 것 같으니까 지우라고. 네? 제가 판단이 잘 안 서서 그래요. 여튼 좀 더 단백하게 말하자면 그 분은 발가락 반지를 하고 있었다. 발가락 반지라니. 나는 발가락에도 반지를 끼는 건 처음 봤다. 너무 새롭고 신기하고 또 그게 정말 잘 어울려서 요가하는 내내 흘깃흘깃 훔쳐봤다. 아니. 잠깐만. 남의 발을 너무 몰래 너무 오랫동안 지켜봤다는 뉘앙스로 읽힐 수 있다는 거 아는데. 아니아니. 오해에요. 저는 이상한 흑심같은 거 없어요. 진짜에요.
나한테 발은 양말로 덮거나 또는 신발로 가리는 부위다. 발을 꾸며야 한다면 꼼꼼히 잘 씻는 정도가 내 최선이라고. 물론 패디큐어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지만 그건 여름에나 잠깐 하는 거 아닌가요. 나는 발가락까지 악세사리로 꾸밀 수 있는 마음이 뭔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저 사람은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거야. 어떤 주관이랄까 미감같은 거 말이야.
그러고 며칠 뒤 어쩐지 잠이 오지 않는 밤. 여느 때와 같이 온갖 망상을 하며 잠이 오길 기다리던 나는 그 사람에 대해서 생각했다. 오해하시 마세요. 그 분을 떠올리다가 잠을 못 잔 게 아니라요. 처음에는 아 다이어트 다시 해야 되는데 자신이 없네같은 생각을 하다가 그 다음에는 만약에 내가 순간이동 초능력이 생긴다면? 근데 초능력을 쓸 때마다 칼로리 소모가 되는 거야. 능력을 많이 쓸 수록 살이 빠지는 거지. 이런 생각을 하다가요. 순간이동하면 1인 배달 회사 세워야겠다. 돈 쓸어 모아야지. 그러면 부자돼서 이사가야겠다까지 생각을 하다가 아, 나 이사가면 안 되는데. 지금 다니는 요가원이 좋은데. 아차차! 어차피 나 순간이동할 수 있지. 그럼 이사 가도 되겠네까지 간 거예요. 그러다가 떠오른 거라고요. 오해 금지입니다.
그런 발가락 반지는 어디서 사는 거냐고 물어볼까. 뭐라고 물어보지. 발가락도 손가락처럼 호수같은 걸 재고 반지를 맞추나. 온라인에선 못 사겠네. 그럼 매장에 가서 양말을 벗고 발을 보여줘야 하나? 발가락 호수 재다가 발냄새 나면 어떡하지? 그러다 번뜩! 나에게도 발가락 반지로 쓸만한 악세사리가 있다는 게 생각났다. 살 빠지기 전에 끼던 애끼반지. 3호짜리. 그거 내 검지 발가락에 들어갈 것 같다. 새벽 4시. 나에게도 발가락 반지가 생겼다.
어쩐지 나도 발가락 반지가 생겼음을 자랑하고 싶었다. 요가원에 가서 그 분을 찾았다. 오늘 말 한 번 걸어봐야지. "발가락 반지 그거 너무 예뻐요. 그래서 저도 꼈어요!" 해봐야지. 나는 마음만 굳게 먹었고 정작 말을 걸진 못했다. 나는 I 89% 인간이다. 낯설고 어쩔 줄을 모르겠다. 내가 친구를 어떻게 사귀어왔더라? 보통 나와 친해지고 싶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가 친구를 고르는 편이었다. 나는 한 번도 내가 먼저 누구랑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고.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그 분은 나에게 전혀 관심이 없고, 나만 그 분에게 관심이 있다. 발가락 반지를 끼니까 더 관심이 생겼다. 우린 공통점이 생겼다고요. ... 젠장. 너무나 스토커 같잖아.
그분은 목걸이도 예쁜 걸 낀다. 빨간색 비즈가 얽힌 짧은 목걸이다. 팔뚝에도 팔찌가 여러 개다. 각자 색도 재질도 다른 팔찌지만 겹쳐끼니 서로 잘 어울린다. 반지도 마찬가지야. 나는 얼마 전까지 명품반지에 눈이 돌아있었는데 이 분이 낀 은반지들을 보니 나도 갑자기 빈티지 은반지가 갖고 싶어졌다. 어쩌지. 나 이렇게 손민수가 되는 걸까. 저 분은 알까. 자기한테 손민수가 생겼다는 것을. 비밀로 해야겠다. 알면 진짜 싫을 것 같으니까.
그분은 짧은 손톱에 큐티클이 하나도 없다. 죄송해요. 진짜 변태같죠. 아니 근데 나도 짧은 손톱을 좋아해서 그냥 그런 게 눈에 들어오는 겁니다. 근데 진짜 멋지지 않아요? 매니큐어가 안 발려있는 손톱인데 큐티클 정리가 되어 있다니. 이거 보통 사람이 아닌 거잖아. 주관이 너무 확실하잖아.
나는 주관이 확실한 사람이 좋다. 내가 되고 싶은 이상향은 주관이 확실한 사람이다. 예를 들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 말이다. "음~ 저는 코트는 막스마라만 입고요. 양말은 삭스어필이 귀여운 것 같더라고. 원피스는 플로움이 잘 하죠. 호호호. 아 소파요? 소파는 알로쏘 꺼 아니면 안 앉아요~ 향수는 무조건 베라왕이죠."
하지만 지금의 나는 "태무 짱! 뭘 살 때는 최저가격순으로! 샴푸요? 어제는 이마트에서 오늘은 코스트코에서 내일은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받은 걸로! 뭐라고? 속옷은 6개월 마다 새 걸로 바꿔줘야 한다고? 쉬익! 이건 속옷 회사의 술수다!!!!!" ... 나는 되고 싶은 나와 이미 되어 버린 나 사이에서 자주 괴롭다.
주관이 있는 사람은 멋있다. 어쩌다가 그런 주관이 생긴 건지 하루종일 물어보고 싶다. 어떤 유년 시절을 보냈는지, 언제 제일 행복했고 언제 제일 슬펐는지. 어떤 것에 화가 나고 뭘 하면서 푸는지. 그런 것들도 궁금하다. 이런 기분은 오랜만이야. 전에 다니던 운동센터의 선생님한테도 이런 기분을 느꼈었는데. 소심하게 인스타만 따고 말았지. 그 다음은 방법을 모른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으면 마이쮸라도 건네주며 말을 걸었겠지만 나는 30대야. 다들 어떻게 친해지나요. 나는 머리만 긁적인다. 친해지고 싶지만 친해져서 뭘 하고 싶은지는 아직 생각 안 해봤기 때문에. 차라리 남자를 꼬시는 게 훨씬 쉬운 것 같아. 정기를 꼬실 때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명확했다고. 그런데 친구는... 후. 친구한테 대뜸 뽀뽀를 갈길 순 없는 일이잖아요. 친해지는 건 어려운 일이다. 특히 사회에 나와서는 더더욱. 나는 여러분들의 꿀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