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집에서 알바를 하던 한 소녀가 있었다.
손님 없는 대낮, 사장님이랑 단 둘이 일하는 중인데 웬 청년이 들어왔다. 훈훈해서 눈길이 간다. 후라이드 한 마리를 시킨다. 먹고 가겠단다. 맥주는 안 마시고 콜라로. 참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그런데 다음 날, 그 남자가 또 왔다. 역시나 대낮, 혼자, 치콜. 사장님이 소녀에게 말했다.
"저 사람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데 이 시간에 혼자 여기 와서 치킨을 먹지? 양념도 안 묻히고 잘 먹네".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먹다 말고 허둥지둥 뛰쳐나가버린 남자. 그렇게 끝이었다. 소녀는 그 인상 깊은 남자가 기억에 남아 페이스북을 뒤졌다. 그러던 중 용마어쩌구 클라이밍 대회 사진이 떴지만 상관 없는 자료다 생각하고 그냥 넘겼다. 소녀는 결국 그를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렇게 어른이 됐다.
한 남자가 있다.
2019년, 제39회 스포츠클라이밍국가대표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다. 대회는 이틀 연속으로 진행된다. 힘을 너무 썼나보다. 고기가 먹고 싶다. 주변에 고기를 파는 곳이라곤 웬 허름한 치킨집 뿐. 선수니까 술은 안 된다. 퍽퍽한 치킨을 목구멍에 억지로 욱여넣는 와중 전화가 온다.
"야! 너 지금 어디야! 너 2등했대! 빨리 시상하러 와!"
내가 2등이라고? 기대도 안 했다. 먹다 말고 열심히 뛰어갔지만 이미 시상식은 끝났다. 제39회 스포츠클라이밍 국가대표 선수권 대회 시상식 사진은 2등이 공석인 채로 찍혔다. 그에겐 황당한 추억으로 남았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자신이 어린 애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내가 있다.
얼마 전 우연찮게 한 프로그램에서 일하게 됐다. 사람들도 다 너무 좋다. 일 잘하는 막내, 배울 점 많은 언니들... 어랍쇼, 근데 갑자기 종영이란다. 첫 월급이 들어오기도 전에 프로그램이 종영됐다. 황당하다. 난 일할 팔자가 아닌가 보군. 운동이나 해야지. 클라이밍을 하러 갔는데 남자친구의 친한 동생이 있다. 맘껏 괴롭힌다. 즐겁다. 괴롭히다 찍은 영상을 인스타 스토리에 올렸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사람한테서 DM이 왔다.
[언니... 저 이 사람 알아요!]
치킨 집에서 알바를 하던 소녀는 페이스북을 뒤지던 실력을 그대로 살려 방송작가가 되었다. 아주 아주 일을 잘하는 막내작가다. 한참을 '세상 참 좁다'는 말을 반복하고 'ㅋㅋㅋ'를 연발하며 대화했다. 서로 '착하게 살자'고 다짐도 했다.
그 치킨 집은 결국 망했다고 한다. 여찬이는 그럴 줄 알았단다. 너무 뻑뻑했다고. 인생은 참 일부로 쓸래야 쓸 수도 없는 드라마다. 이래서 사는 게 재밌는 거지. 이 재밌음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어서 썼다.
여러분, 우리 최대한 열심히 착하게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