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 플래너는 과연 내 편일까 1

by 고니크

본격적인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순서인 웨딩홀 계약은 속전속결이었다. 그냥 지금 사는 집에서 제일 가까운 곳으로 해버림! 하하핳! 바보 같은 나^^! 집이랑 웨딩홀이 가까우면 늦잠 잘 수 있어 좋겠거니 생각했던 나^^! 계약을 한 후에나 알게 됐다. 신랑신부는 결혼 당일, 청담 샵에 갔다가 다시 웨딩홀로 와야한다는 걸. 청담이랑 우리 집이랑 지구 반대편에 있는데 ㅎㅎㅎ 제길... 늦잠은 커녕 선잠도 못 자게 생겼다.


헤메 실장님을 웨딩홀 출장 부르면 안되냐고? 추가금이 얼마나 붙을지 아시는가. 나도 모른다. 내가 아는 건 그게 얼마든 나랑 정기의 고생값이 더 쌀 거라는 사실 뿐. 여튼, 웨딩홀을 해결했으니 이제 웨딩플래너 계약을 해야 한다.


웨딩홀 계약한 꼬라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난 웨딩플래너를 고르는 일에도 크게 에너지를 들일 생각이 없었다. 그냥 친구가 했던 웨딩플래너 소개 받아 연락함! 그리고 만나기도 전에, 무슨 대화를 나누기도 전에 '저 그냥 플래너님이랑 계약할 게여' 못 박아버렸다. 하핳 나는 쇼핑을 가서도 들어가자마자 눈에 바로 보이는 것을 고르는 사람이다. DP된 상품을 줘도 새 상품으로 다시 달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 새 폰을 사고 케이스를 끼지 않는 사람. 잘못된 메뉴가 나와도 그냥 먹는 사람. 서브웨이를 가면 섭픽을 먹는 사람, 그게 나임. 뭔가를 고르고 재고 따지는 행위... 나랑 안 맞아. 누가 차려주면 나는 그냥 받아 먹고 싶다고.


난 또 간과했다.

웨딩플래너를 소개시켜준 친구는 나와는 다르게 야무져서 웨딩홀 빼고는 모든 것을 본인이 알아서 진행한 아이고, 나는 웨딩홀 빼고는 모든 것을 남에게 맡길 아이라는 걸. 이제 내 결혼식의 질은 대화도 나눠보지 않은 웨딩플래너에게 달렸다.


웨딩플래너 계약을 하러 가는 날.

얕보이면 안 돼. 얕보이면....! 얕보이면....! 우리한테...! 엄청난 결혼식을 시킬 거야(?) 이상한 생각을 하면서 정기를 꾸몄다. 비싼 옷 꺼내 입어! 나도 나대로 트위트 원피스를 꺼내고 평소 하지 않는 경극 화장을 했다. 우리 좀 멋진가? 엘리베이터 거울 속의 우리는 꽤나 잘 어울리는 커플처럼 보였다.


하지만... 왜일까? 청담에 도착하고 나서 거울을 보니, 정기는 물에 빠졌다가 대충 말린 생쥐꼴이었고 나는... 6년 사귄 남친에게 사실 1년 된 어린 여자가 있었고 그 여자에게 모욕을 당해 이를 악 물고 눈물을 참다가 지하철 화장실에서 세수하며 몰래 울다 들킨 여성의 꼴이었다... 지구 반대편을 이동하면서 생기를 쪽쪽 빨린 우리. 결혼실날도 설마 이런 꼴일까... 얕보이면 안 된다고 그렇게 맘 먹었는데 그 누구도다 얕보이기 쉬운 몰골을 하고 플래너를 만났다.


분명히 초반에는, 얕보이지 않겠다는 맘으로 또렷한 눈과 옹 다문 입술로 플래너를 대했는데... 알아들을 수 없는, 사실 알아듣기싫은 어쩌구 저쩌구 설명들을 들으며 나는 점점 몽롱해졌다. 어... 음... 모르겠다... 모르겠고요... 그냥... 알아서 해주세요... > 진짜 이렇게 말했음...


플래너가 스튜디오 리스트를 여러 개 보여줬는데, 우리는 그냥 맨 처음 보여준 곳에서 하기로 했다^^! 핳하하 본식 스냅은 두 번째 보여준 곳에서 하기로 함. 플래너님 저희에게 선택지를 세 개 이상 주지 마세요. 소용없으니까...


어찌저찌 결정해야할 것들을 대충 골랐다. 상담을 끝내고 계단을 올라오는데, 그제야 이래도 되는 거 맞나?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결혼식에 돈 몇 천이 들 건데... 우리 아빠가 살면서 만나온 모든 사람과 내가 살면서 만나온 모든 사람이 다 올 텐데! 잠만!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따져봐야 하는 거 아니야?


그때 플래너의 시선이 내 발목 쪽으로 향하는 게 느껴졌다. 오늘 아침 나는 스타킹 신기 귀찮아서 히트택을 스타킹인 척 입고 왔다. 머어따용 같은 까만색인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 히트택이 중력에 의해 쭈굴쭈굴 내려와서 발목에 흐므덩 쌓여있는 모습, 지금 플래너가 보고있다. 왜인지 조금 수치스러워졌다. 어른의 상징인 흰 트위드 원피스를 입었는데, 비록 배신 당한 늙은 여자의 화장을 했지만 그래도 새초롬하게 '뭐가 있는 척'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ㅠ 꾸질꾸질한,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나의 사적인 어떤 영역을 다 들켜버린 기분이다.


줌 회의 하다가 수면바지 입은 걸 들킨 사람보다 내가 더 창피해. 으악! 몰라! 몰라! 결혼 준비 마음 다시 먹을래. 나도 야무지게 진행해봐야겠어! 그래, 웨딩드레스부터 다시 골라봐야겠다.


2탄에서 계속 됩니다. 3탄까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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