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의 별명은 '애기 금환'이다.
나만 아빠를 애기금환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 내 친구들도 모두 아빠를 애기 금환이라고 부른다. 그 별명의 유래를 따라가자면... 어언 6년 전 한창 스냅쳇 어플이 유행할 때가 있었다. 셀카를 찍으면 자동 필터로 내 얼굴을 아기 얼굴로 바꿔주는 어플. 많은 사람들이 아기 얼굴로 바뀐 자신의 셀카를 sns에 올리고, 카톡 프사도 하며 즐거워했다. 우리 아빠도 그 유행에 동참하고 싶었나 보다. 어느 날 아빠에게서 톡이 왔다.
... 우리 아빠는 스냅쳇 어플이 없다. 그냥 금환 사진을 보내놓곤 왜 스스로를 애기 금환이라고 칭한 걸까? 6년이 지났는데도 아빠의 마음을 헤아리기 너무 어렵다. 나는 아빠의 마음을 헤아릴 노력을 하는 대신 그저 찢어질 듯한 배꼽을 잡고 깔깔대며 하루종일 아빠를 조롱해댔고, 그 결과 내 친구들도 애기 금환 사태를 알게 되며 그때부터 아빠를 애기 금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애초부터 없던 하늘같은 권위, 앞으로도 영원토록 가질 수 없게 된 애기 금환이었다.
내 브런치 글 목록을 밑으로 쭉 내리다 보면 [상견례 기선 제압하는 방법]이라는 제목이 있는데 그 글을 먼저 읽고 온다면, 애기 금환에 대한 캐릭터를 더 잘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뭐, 안 읽어도 크게 문제는 없음.
어제는 양가 혼주의 한복을 고르는 날이었다. 애기 금환은 상견례 때 융숭히 대접받았으니 이번에는 우리 측에서 식사 대접을 해야 한다며 두 달 전부터 한복집 근처 맛집을 돌아다니며 직접 식사까지 해보고 최종 장소를 골랐다. 아주 뿌듯한 목소리로 내게 "한 다섯 군데 먹어봤는데~ 맛도 있고 주차도 편하고!"
- 어, 알겠어. 식당 이름 뭐야.
"톡으로 보내줄게. 아빠가 여기 다 돌아다니면서 다섯 군데 정도 먹어 봤는데 말이야~"
- 예약했다는 거지? 알겠어~
"아빠가 다섯 군데 먹어보고 결정한 곳이라 아주 맛있을 거다!"
- ... 아빠, 다섯 군데 먹어봤다는 걸 왜 이렇게 많이 말해?
"정기한테 얘기해서 시부모님 댁 귀에도 은근히 이 사실이 들어가도록 조치해라."
... 애기금환은 인정욕구가 높은 애기였다. 그 누구보다 한껏 들뜬 아빠. 아빠는 까맣게 잊었나 보다. 무뚝뚝하고 차가운 경상도 시가댁의 바이브를. 나는 상견례 때의 악몽이 되풀이 될 것을 직감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상견례 자리, 아무리 아빠가 MC유재석처럼 재롱을 피워도 묵묵부답이었던 시어머니나 시아버지. 현란한 말솜씨와 미지근한 유머감각에 조금의 억지 웃음도 지어주시지 않으셨던 그들. 너무나 차갑고 조용한 식사 자리에서 혼자 진땀을 빼며 진행을 이어가던 아빠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아빠가 다섯 군데를 돌아다니며 식사 장소를 정했다는 소식을 전달받은 시어머니의 반응은...
"... 꼭 식사를 해야 하니...?"
"왜...? 왜 그렇게까지 하시는 거니..."
"너무 부담스럽다..." 였다.
부담스러워도 어쩌시겠는가. 상견례 이후 우리 두 가족은 다시 한번 한 식사 자리에 모였다. 식당의 예약시간은 오후 1시였지만 12시 10분에 도착한 애기 금환. 50분이라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그의 흥분 상태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던 것 같다. 시부모님이 도착하자 마자 아빠는 MC재석의 진행력을 뽐냈고, 점점 시끄러워지는 우리 쪽 분위기와는 다르게 상대편의 세 사람의 말수는 급격히 줄어들어갔다.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우리 아빠가... 우리 아빠가...? 아빠?
상견례 때와 마찬가지로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를 하던 아빠는 도저히 끌어올려지지 않는 분위기에 낙담했는지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다. "저 맥주 두 병 주세요!" 아니, 아빠? 아빠 차 가지고 왔잖아? 아빠는 술기운을 빌려서라도 강하게 굳어버린 분위기를 타개하고 싶은 것 같았다. 나는 울 것 같았다. 시어머니! 시아버지! 제발! 제발 아무 수다 주제라도 던져주세요! 웃어주시라고요! 대화를 이어나가 주시라고요! 제발!
억지 신남 텐션으로 무장한 우리 아빠는 기어코 맥주를 깠고 마치 회식자리인 것처럼 가득찬 맥주잔을 돌리기 시작했다. 시어머니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는 게 느껴졌다. 안 그래도 부담스러운 식사자리에서 술까지... 우리 어머님은 아직 그렇게까지 마음이 안 열리셨다고 아빠!
무안함과 뻘쭘함을 술로 잊어 보려는 아빠의 양 팔을 나와 새어머니가 잡고, 그의 음주를 막기 시작했다. 안 돼요. 운전해야 하시잖아요. 아! 한 잔 정도는 돼! 아빠 지금 음주운전하겠다고 말하는 거야? (*아빠는 운전대를 잡은 이후 단 한번도 음주운전/졸음운전을 한 분이 아니다. 오해 금지.) 몰라! 몰라! 우리 술 먹어요, 술! 급기야는 앙탈을 부리기 시작한 우리 아빠. 이이이잉~ > 실제로 이 음성을 입 밖으로 냄.
"이거 놔아~ 먹게 해줘잉~"
양 팔을 포박 당한 채로 애교스럽게 상체를 흔드는 아빠의 모습. 우리 아빠는 아직도 자신이 애기 금환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나도 모르게 아빠에게 어허! 떽!이라고 할 뻔했다. 나의 이성 한 줄기가 간신히 불효를 막았다.
아빠의 애교가 통한 것일까 아님 그 처절함이 마음을 움직일 것일까. 다행히 알코올의 도움 없이도 시가댁의 말문이 트였고 아빠의 시름은 눈 녹듯 사라지게 됐다. 나는 결심했다. 다음에도 이런 자리가 또 마련된다면, 미리 아이스브레이킹 질문 100선을 준비해가야겠다고.
식사가 끝났다. 이들 중 가장 말을 많이 한 것은 아빠였지만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의 기운이 더 빨려 보이는 것은 왜일까. 우리 아빠는 다시 신나졌고, 시부모님은 얼른 집 가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어머님, 지금 우리는 집에 가고 있어요. 한복집. 다음 코스는 대망의 한주 한복 고르기 코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