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명절을 보낸 새댁 시점
15살 때부터 내 꿈은 눈을 감았다가 뜨면 50살이 되어 있는 거였다.
50살이 되면 불안하지 않겠지. 50살이 되면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 나이가 되면 이미 정답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50살의 고재연은 안정된 인간일 것 같다. 사람들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고, 내가 하는 일에 자신이 있으며, 무슨 일에서든 자기효능감을 충분히 느끼는 사람. 말과 글과 행동으로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 내 기분과 목표에 공명하는 이들을 옆에 둔 사람. 성공한 사람 말이다.
내가 말하는 성공은 대통령이 되는 것도 아니고, 사장님이 되는 것도 아니다. '어? 아아아~ 이름 들어봤어. 오~ 거기~? 너가 그 사람들 중 한 명이라고?' 정도. 딱 이정도의 성공만 할 수 있다면 나는 정말 만족하겠는데... 15살의 나도, 20살의 나도, 30살의 나도 50살의 고재연은 성공해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다가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를 봤고 암담해졌다.
한 여성의 일대기를 함께 겪으며 사람들은 울고 웃고 감동을 받았지만, 나는 그 드라마에서 다른 걸 봤다. 애순이는 가난하게 태어나 가난하게 살다가 자식 덕에 말년에 잠깐 중산층이 된다. 자식이 없었으면 가난하게 죽었겠지. 아무리 주인공이어도, 누구를 만나 어떤 일을 겪어도, 발버둥을 쳐도 태어난 계층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거다. 위로도 아래로도 움직이지 못 한다. 사람은 자신의 자리가 정해져있구나. 나는 그 드라마에서 그걸 봤다. 차라리 고졸 출신 주인공이 대기업을 인수하는 <이태원 클라쓰>같은 판타지를 좀 넣어주지. 사람들이 <폭삭>을 현실적이라고 칭송하면 칭송할 수록 내 마음은 암담해져만 갔다. 꼭 내 미래도 그럴 것 같아서. 타고난 내 자리, 여기서 절대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아서 말이다.
아니라고 해줘. 50살의 나는 30대 중반인 지금의 내 모습과는 영 딴판이어야 한다. 나는 지금 이도 저도 아니지만, 내 이름을 걸고 해낸 게 하나도 없지만 50살 고재연은 다를 거야. 달라야 해. 눈 감았다 뜨면 멋있는 중년 여성이 되어 있는 나를 상상하며 억지로 미소를 띠어본다. 그러나 금세 아래로 쳐지는 내 입술 모서리. 내 마음이 또 다시 암담해지는 이유는 최근 시댁에서 첫 명절을 지내고 왔기 때문이다.
모두 좋으신 분들이었다. 나에게 편하게 앉아있으라고 하셨고, 정말 편하게 앉아있어도 아무도 눈치 주지 않았다. 그 어떤 잡일도 시키지 않으셨다. 나는 멀뚱히 앉아있다가 씻어주는 과일을 먹는 일만 했다. 그런데, 그런데 계속 내 마음이 이상했다. 제사를 할 때는 남자들만 문을 닫고 들어갔고 우리 여자들은 부엌에 서 있었다. 나는 앉아있었지만 음식과 그릇은 어머님과 숙모님이 나르셨다.
외가에 가서는 조금 양상이 달라졌다. 남자들 뿐만 아니라 여자들도 앉아있었다. 하지만 좋은 신호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모두가 앉아있으면 밥과 국과 반찬은 어떻게 날라진단 말인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어른이 계셨다. 외할머님의 며느리이시다. 남자들은 주로 앉아있었고, 외할머님의 딸(시어머니)과 그 딸의 딸(새언니)도 대부분의 시간 앉아있었는데, 그분만, 그분이 유독 이곳을 제 집처럼 돌아다니셨다.
친가에서도 어려웠지만 외가에서 유난히 더 '편하게 앉아있기'가 어려웠다. 아무도 나에게 일을 시키지 않았고,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분명히 그 누구도 나에게 그런 역할을 맡기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저절로 몸을 움직였다. 수저를 가져와 짝을 맞춰 두고, 음식을 나르고, 밥을 다 먹고 나서는 물티슈로 책상을 닦았다.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힘든 일도 아니었다. 아무도 나에게 시키지 않았다. 내가 자발적으로 그렇게 했을 뿐. 공교롭다. 여기 있는 모두가 구름에 누운 모양새로 이곳을 편해하는데, 외할머님의 며느리인 형님과 외할머님의 딸의 며느리인 나만 이 공간을 모기 물린 발바닥처럼 느끼는 것 같았다. 이상하다. 모두가 인자했고 자상했으며 유쾌했다. 마음 한 점 걸리는 그 어떤 사건도 없었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냥 그랬다.
식사를 끝마치고 둘러 앉아 수다를 떠는 자리에서 형님만 문지방 바깥에 앉아계셨다. 주방과 가장 가까운 자리. 우리들은 다 안방 안에 들어와있는데 유독 형님만 문 밖 주방쪽에. 결혼식을 올리고 이제 진짜로 내가 이 가족 안에 들어오면, 그렇게 내년이 되면, 저 문지방 밖 자리가 내 자리가 되는 걸까. 아니겠지. 에이 아닐 것이다. 형님도 자발적으로, 그냥 그게 편해서,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곳에 앉아계신 것이겠지. 내가 자발적으로 수저의 짝을 맞추고 음식을 나르고 책상을 닦은 것처럼.
집으로 오는 길에 머릿속이 시끄러웠다. 연애와 결혼은 다르다더니. 결혼은 원래 이런 건가. 아니지. 잠깐만 아무도 나에게 나쁘게 군 사람은 없었어. 오히려 모두 친절하고 다정했다고. 내가 이상한 건가. 나만 예민한 걸까. 내가 뭔가를 잘못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근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나는 아빠집에 가고 싶었다. 아빠집에 갔으면 나도 구름에 누운 모양새로 그곳을 편하게 생각했겠지. 도대체 뭘까. 착한 사람들 속에서 왜 나 혼자 이상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 걸까. 요상하다. 요상해.
나는 울적해졌다. 50살의 나는 30대 중반인 지금의 내 모습과는 영 딴판이어야 하는데. 내가 선명하게 그리고 있는 50살의 내 모습이 분명히 있는데...
명절 이틀만에 1000km를 운전했다. 피곤해서 그런가. 눈 감았다 뜨면 보였던 50살의 고재연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머리에 힘을 깍주고 상상해봐도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을 받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자기 효능감을 충분히 누리고 있을 50살 고재연 모습은 흐릿하다. 대신 문지방 밖, 주방과 가장 가까운 차가운 자리,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고재연이 보인다. 애순이는 역시 애순이인 것처럼. 희대의 사랑꾼 남편과 대성공한 딸자식이 있어도 애순이는 결국 애순이였던 것처럼. 고재연도 결국 고재연이 되고 마는 걸까.
30살 중반의 아무것도 쥐고 있지 않은 지금의 내 모습이 15년 뒤에도 그대로 이어지는 걸까. 역시나는 정말 역시나인가. 이번 명절, 오랜 나의 꿈이 흐려지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