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주 한복 고르는 날 가장 신난 사람, 우리 아빠2

by 고니크

저번 편에서 우리 아빠에 대한 소개를 잠깐 했다. 애기금환, 애교, MC재석, 수다쟁이, 팔불출.

이번 편에선 나에 대해 살짝 소개를 해야겠다.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나는 애기금환의 딸이다] 그렇다는 것은 나에게도 애기재연, 애교, MC재석, 수다쟁이, 팔불출의 면모가 있다는 것이다.


아빠, 새어머니, 나, 정기, 시아버지, 시어머니, 이렇게 여섯 사람이 드디어 한복집에 도착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한복집. 그때부터 나의 심장은 뛰기 시작했다. 너.무.신.나. 이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게 뭔지 아나? 불구경? NO NO 싸움 구경? NO NO, 바로 공주놀이다.


정작 공주가 되어야 할 사람들은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어했지만 나는 그때부터 내가 고씨집안 사람임을 손가락 끝, 발가락 끝부터 느끼고 있었다. 내 몸의 가장자리에서부터 흥분과 환희가 올라온다. 새어머니와 시어머니 준비하세요. 제가 끝장나는 공주놀이 시켜드릴게요. 시아버지한테 말했다. "아버님 박수칠 준비 되셨어요? 환호성은 제가 지를게요. 기립박수는 아버님이 맡으세요." 내 말에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아버님을 보며 아차했다. 방금 그 말이 내가 시아버지를 만나고 처음으로 건넨 말이었다.


내 웨딩드레스를 보러갔었을 때가 떠오른다. 헬퍼이모님이 내게 홀터넷의 머메이드 드레스를 입혀주셨다.


"대박! 쩔어! 미쳤어! 나 완전 공주야! 세상아 나를 봐라! 이몸 행차하신다!"


커튼 안에서 자아도취한 여자의 미친 환호성을 듣고 있던 커튼 밖 사람들은 혼란스러웠다. 분명히 고재연의 키는 148cm이고, 팔다리 짧고 몸도 통통한데... 머메이드? 머메이드 핏 과연 괜찮을까? 역시 옷은 입어봐야 아는 걸까? 머리로 아는 이론적 사실과 실시간으로 듣고 있는 공주 당사자의 쾌재, 그 둘 사이에서 그들은 혼란스러웠고 나는 너무나 뿌듯한 표정을 지으면 커튼을 열고 나왔다. 짜잔!


"다시 들어가줄래?"

"이모님, 다음 꺼 입혀주세요."


긴 정적 후에 내가 들은 말이었다. 왜... 예쁜데... 나는 그 치욕을 잊을 수 없다. 그때 결심했다. 내가 커튼 밖 사람의 역할을 하게 된다면 최고의 환호성을 질러줄 거라고. 오늘이 바로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순간이다.


혼주 한복 고르는 시스템을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다.

1. 한복계의 헬퍼이모님이 양가 어머니의 인상과 분위기를 보고 추천한복을 여럿 골라주신다.

2. 각 어머니들은 가운데 무대를 기준으로 마주보는 위치의 방에 각각 들어간다.

3. 한복을 입으면 동시에 짜잔하며 나와 무대에 선다.

4. 그럼 구경꾼들인 아버지들과 자식들이 품평회를 한다.

5. 1~4를 4~5번 반복한다.


아무거나 빨리 골라서 얼른 집에 가고 싶어하시는 시어머니와 계속 나는 쿨톤이라며 쿨톤 핑크를 찾는 새어머니 덕에 잠깐의 버퍼링이 있었지만 상황은 전반적으로 스무스하게 진행됐다. 드디어 두 어머니들이 방으로 들어가셨다. 아주 행복한 공주놀이를 위해서 나는 목을 가다듬는다. 무뚝뚝하고 말수 없으신(강제로 끌려온 것 같아 보이기까지 하는) 아버님에게 닦달도 했다. "어머니 나오시면 예쁘다고 해주세요. 박수도 많이 쳐주시고요!"


3

2

1

등장!


고운 자태의 두 여성이 나왔다. 우와... 와!!!!!!!! 어머니들 너무 예ㅃ


"삐이이이익!"


뭐야 방금 이 소리? 누구야. 누가 휘파람 소리를 내었나. 지금 내가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환호성 시간인데 누구야. 나를 방해하는 사람이?


아빠다.


아차차 내가 애기 금환을 잊고 있었다. 모두가 아빠를 쳐다봤다. 애기 금환의 두 눈과 입술, 손짓, 몸짓, 발짓까지 아무도 그를 말리지 못할 정도로 감격해있음을 보여준다. 휘파람을 크게 불어 좌중을 조용히 시킨 애기 금환은 휴대폰을 꺼내들어 뮤직뱅크 카메라 감독 저리가라하는 무빙을 보이기 시작했다.


졌다.

저거 내가 할라 그랬는데.


연신 쏟아지는 카메라 셔터음에 맞춰 포즈를 바꿔야 할 건 사실 사진에 찍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정작 그들은 목석처럼 그대로 서 있고 애기금환만 발빠르게 각종 포즈를 취해가며 사진을 찍어댔다. 자유의 여신상을 구경 온 관광객처럼 새어머니를 세워두고 자기 셀카를 찍는 등의 기행을 이어가던 우리 아빠. 나는 뒤를 쳐다봤다. 아버님 뭐하세요. 따라오셔야죠. 아버님은 먼 허공을 보고 계셨다. '저렇게는 못한다' 아버님의 맘 속 말이 들리는 듯했다.


어머니들이 한복을 갈아입고 나오실 때마다 나와 애기금환의 리액션은 각종 변주와 함께 다채로워졌고, 정기와 시아버지는 그 어느 때보다 표정의 일관성을 유지했다. 시끌벅적 야난법석의 집안에서 나고 자란 나와 항시 침착함을 유지하는 정기가 어떻게 서로에게 매력을 느끼고 사랑에 빠질 수 있었던 걸까? 두 집안이 너무도 다름을 실감하게 되는 하루였다.


결혼은 집안 대 집안의 결합이라며, 절대 만만한 일이 아니라고 겁을 주는 결혼 선배들의 말이 문득 떠오른다. 너무 이쪽과 너무 저쪽에 서 있는 두 집안. 그래서 재밌지만 또 그래서 불안하다. 결혼에 도착하기 위해 앞으로 더 많은 산을 넘어가야 할 텐데, 우리는 무사히 결합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앞으로도 많은 이야기들이 쓰여질 것 같다.

혼주 한복 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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