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선생님의 전화를 받은 그날 이후, 목욕은 우리 부녀의 가장 중요한 의식이자 처절한 '기억 세탁'이 되었다. 따뜻한 물에 비누 거품을 내어 아이의 작은 몸 구석구석을 닦아낼 때마다, 나는 마치 당신이 남긴 비극의 흔적들을 지워내려는 사람처럼 절박했다. 하지만 살갗을 깨끗이 씻기고 향기로운 로션을 발라주어도, 아이의 눈동자 깊은 곳에 가라앉은 그 서늘한 그림자는 좀처럼 씻겨나가지 않았다.
아이를 씻기며 알게 된 서글픈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 딸은 이제 울지 않는다. 목욕물이 눈에 들어가 따가울 법도 한데, 아이는 그저 입술을 꽉 깨문 채 나를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투정을 부리거나 장난을 쳐야 할 나이에 아이는 너무 빨리 '참는 법'을 배워버렸다. 엄마가 쏟아냈던 그 날 선 의심과 비명 소리 속에서, 아이가 선택한 유일한 생존 전략은 자신의 감정을 죽이고 풍경 속에 자신을 숨기는 것이었으리라.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단순히 숨는 것을 넘어, 당신의 '상태'를 읽어내기 시작했다.
"아빠, 지금 엄마 눈이 무거워졌어. 우리 산책하러 가자."
주말 오후, 거실에서 놀던 아이가 내 옷자락을 당기며 속삭였다. 나는 의아했다. 내 눈에 당신은 그저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이의 예감은 늘 적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신은 허공을 향해 욕설을 내뱉거나, 도어락 소리에 발작하며 거실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아이는 엄마라는 거대한 행성 주위를 유영하며, 그 행성의 대기가 언제 희박해지는지, 언제 폭풍우가 몰아칠지를 나보다 먼저 감지하는 '어린 천문학자'가 되어 있었다. 아이가 관측하는 것은 별의 신비가 아니라, 엄마의 일그러진 표정과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이었다.
"응, 그래. 우리 딸 자전거 타러 갈까?"
나는 서둘러 짐을 챙겼다. 집이라는 공간이 안식이 아닌 탈출해야 할 재난의 현장이 되어버렸음을 인정하는 것은 아픈 일이었지만, 나는 기꺼이 길 위의 파수꾼이 되기로 했다. 아이를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바람을 가르며 달릴 때, 내 등에 닿은 아이의 작은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아빠, 밖은 안 무거워. 바람이 시원해."
아이의 그 말은 나를 향한 위로이기도 했다. 집안의 무거운 공기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올 때만 아이는 비로소 아주 작은 웃음소리를 내비쳤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낯선 여행지를 전전하며 당신이 남긴 흉측한 말들을 지워내려 애썼다. 넓은 바다와 푸른 숲을 보여주며, 세상의 소리가 감시의 속삭임이 아니라 자연의 노래라는 것을 필사적으로 확인시켜 주었다.
그날 밤, 지쳐 잠든 아이의 발바닥을 만지며 나는 생각했다. 내가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도망치는 것은, 어쩌면 아이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구하기 위한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아이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시간은, 동시에 우리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는 법을 배우는 처절한 연습의 시간이었다. 우리는 부서진 은하수의 조각들을 길 위에서 하나씩 주우며, 아주 느리게 하지만 분명하게 다시 걷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