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사람을 죽도록 미워하는데, 왜 내 머릿속은 하루 종일 그 사람 생각뿐일까?"
상처를 입은 후 우리는 가해자의 일상을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SNS를 뒤지고, 주변 친구들에게 근황을 묻고, 그가 올린 사진 한 장의 의미를 분석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증오'라고 부르지만, 심리학적으로 이 상태는 '강렬한 접속'에 가깝습니다. 미워하면 할수록 역설적으로 그 사람의 삶과 나의 삶이 더 단단하게 뒤엉키게 되는 '감시자의 역설'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흔히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진리입니다. 증오는 사랑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양의 관심과 에너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그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내 뇌의 상당 부분을 그 사람을 위한 '전용 공간'으로 할당하는 일입니다. 그가 무엇을 먹는지, 누구를 만나는지, 어떤 표정을 짓는지 감시하느라 내 소중한 정신적 대역폭(Bandwidth)을 낭비하게 됩니다. 가해자는 내 머릿속에 '무단 거주'하며 월세 한 푼 내지 않고 나의 에너지를 마음껏 써버리는 셈입니다.
상처가 아물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가해자의 소식을 찾아보는 행위는 이제 막 돋아나려는 새살을 손톱으로 다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가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그날의 기억은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소환됩니다. 뇌는 이것을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위협으로 인식합니다. 가해자의 SNS를 클릭하는 순간, 당신의 몸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뿜어져 나오고 심장 박동은 빨라집니다. 당신 스스로가 그 고통의 현장으로 자신을 계속해서 다시 끌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주변의 '전달자'들은 이 접속을 유지하는 중계기 역할을 합니다. "그때 걔가 너에 대해 이런 말을 했대"라며 전해주는 비겁한 정보들은 당신과 가해자를 보이지 않는 끈으로 계속 연결합니다.
정보를 전달하는 친구들은 당신이 '알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 정보의 대부분은 당신의 회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신을 과거의 분노에 묶어두고, 가해자의 삶에 강제로 동기화(Sync)시킬 뿐입니다. 접속을 끊지 못하는 감시자는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가해자와 멀어지기 위해 그를 미워하지만, 미움은 오히려 그를 내 곁에 더 바짝 붙여놓습니다. 진정한 독립은 그를 향한 모든 에너지를 거두어들이는 것입니다.
그가 불행해지기를 기도하는 마음조차 멈추십시오. 그 기도가 간절할수록 당신은 그의 불행을 확인하기 위해 계속 그의 주변을 맴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잘 살든 못 살든, 망하든 성공하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선언하는 무관심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접속 종료입니다.
당신의 뇌에서 가해자가 차지하고 있는 지분을 강제로 회수하십시오. 그 빈자리에 당신의 새로운 취미, 당신의 좋아하는 사람들, 당신의 아름다운 미래를 채워 넣으십시오. 당신이 그를 감시하기를 멈추는 순간, 가해자는 비로소 당신의 인생에서 소멸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마음 미션
오늘 가해자의 SNS를 확인하고 싶거나 소식을 묻고 싶을 때마다, 즉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심호흡을 세 번 하세요.
그리고 이렇게 외치세요. "나는 내 에너지를 너에게 1원도 지불하지 않겠다."
가해자에게 쏟으려 했던 그 에너지를 나를 위한 작은 보상(맛있는 간식, 짧은 산책 등)으로 전환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