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이녁, 그녁

ep.5 스며드는 사람

by 곰C

이녁, 그녁

사람은 작은 친절에도 버틸 힘을 얻는다.

그리고 그 순간을 오래 기억한다.


드르르르르륵-

드륵-드륵- 끼릭-

미싱은 잘도 돌고 신나게 돌아간다.


열심히 페달을 밟으며 미싱을 돌리는 희옥은 집중하며

목이 꺾이도록 책상에 머리를 붙여가며 봉제를 했다.

1 공정 드르륵 밟아대고, 2 공정을 드륵드륵 밟으며 마무리한다.

추운 겨울의 시린 바람이 공장 문틈사이로 매섭게 들어왔다.

신명 나게 페달을 밞는 발이 점점 꽁꽁 얼아가는 느낌이었다.


점점 얼어가는 발이 무뎌질 때쯤 점심이 되었다.


새해 본가에 다녀온 동료들은 시골집에 있던 음식들을

가져와 옹기종기 모여 점심을 즐겼다.

각양각색의 음식들이 펼쳐지니 눈이 너무 즐거운 희옥은

자신이 가져온 음식도 꺼내며 깔깔대고 수다를 떨었다.

"오메 느그들은 그런 거 먹냐~?"

"이이 왜? 이게 얼마나 맛있는디 그랴~?"

"참말이네! 맛있구마?!"

지역별로 그들은 사투리를 써대며 융화되어 갔다.


점심이 끝나갈 때쯤 자리로 돌아가려는 희옥의 옆으로

태산이 지나갔다. 희옥은 가볍게 목인사를 했다.

"희옥씨 잠시만요."

지나가려는 희옥을 태산이 잡았다.

"저...그...저녁에 뭐 하세요?"

쭈뼛거리는 사내 태산은 전라도사투리가 튀어나오는걸

간신히 다듬어내며 희옥에게 말을 전했다.

"왜요?"

"아...그거시..그게..저녁에 호프 한잔할라요?"

"예..? 아니요...괜찮아요."

"아 바비큐 안 좋아하셔요?"

"바비큐요?"

"예 그, 요 앞에 바비큐 있는데 맛있거든요."

궁금한 희옥이 멈칫하자, 태산은 이때다 싶어 말을 이어갔다.

"그럼 퇴근하고 저 봉이네 슈퍼 앞에서 봅시다!"

"예?!"

그 말을 뒤로하고 태산은 뛰어갔다.


희옥은 본인이 잘한 건지 의심이 들었다.

일을 하면서도 자꾸 시계를 보며 의식했다.


7시, 철야작업이 모처럼 하지 않은 날이었다.

집에 갈까 말까 고민하던 희옥은 저녁이나 먹자, 생각하고

봉이네 슈퍼로 발걸음을 옮겼다.


큼지막한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저녁이었다.

주황색 전봇대 조명이 함박눈을 물들였고,

그 조명아래 주머니에 손을 꽂고 고개를 숙인 채

희옥을 기다리는 태산이 보였다.

태산의 주변으로는 어둑어둑했고, 소복이 쌓인 눈사이에

우두커니 서있는 그의 모습만 보였다.


희옥은 모든 것이 느리게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점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희옥의 인기척이 느껴지자, 태산은 고개를 들었다.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누군가 저렇게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던 적이 있던가?'

생각이 들었다. 희옥의 발걸음은 더 또렷하고 빨라졌다.


"많이 기다렸죠?"

"에이 아니요~금방 왔어요~"

어깨에 쌓은 눈은 금방이 아니었던걸 말해주었다.

"가요 그럼."

"예 저쪽으로 가면 금방이니까 천천히 갑시다."


그들의 뒷모습은 천천히 그렇게 같은 방향으로 걸었다.

이상하게도, 희옥은 그 순간이 오래 기억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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