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 이녁, 그녁

ep.6 녹아내리는 마음

by 곰C


사람은 작은 온기에 마음이 녹아내린다.


"저는 저 해남에서 왔어요."


"예? 정말요? 멀리서 오셨네.. 저는 예산이요."


어색하면서 꽤나 깊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퇴근 후 삼삼오오 모여 왁자지껄한 사이에서

희옥과 태산은 둘만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둘은 이미 재미있어 보였다.

바베큐집에서 이어지는 시간은, 서로에게 훈연처럼 스며들어갔다.

서서히, 그리고 은은하게.


"그래서요? 어떻게 됐는데요?"


"뭘 어쩌긴 어째요! 제가 바로 고구마를 던졌죠!"


"하하하! 정말요? 형한테요?"


"그럼요! 아하하하!"

태산은 고구마를 던지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 모습에 희옥의 웃음을 터뜨렸다.

사회에 나와 이렇게 웃어본 건 처음이었다.

오랜만에 활기가 돌아오는 저녁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둘이 떠들다가,

바베큐집이 휑해질 때까지 남아있다 나왔다.


꽤나 쌓인 눈은 뽀독뽀독 소리가 났다.


뽀독뽀독-

뽀드득뽀드득-


둘은 조심조심 발을 맞춰 걸었다.


술을 마셔서 발그레한 건지,

서로 때문인지, 알 길이 없었다.


"저는 이쪽으로 가요."

희옥은 집 가는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 데려다... 드려도 될까요?"


"아... 네.... 좋아요.."


희옥의 말이 끝나자, 태산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나섰다.


펑펑 내리는 흰 눈 사이로 어둑한 밤하늘이 보였다.

가로등 불빛은 주황색 조명을 켜며,

마치 그들을 위한 무대를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희옥과 태산은 집 앞에 도착하고도 한참을 서 있었다.

마치 누가 대사를 깜박한 것처럼,

둘은 말이 없었다.


그들은 그 침묵이, 이상하게 불편하지 않았다.

어색한 게 아닌 뭔가 멈추고 싶은 순간이었다.


"저기... 희옥 씨?"

태산이 잠깐 숨을 삼키고 말을 꺼냈다.

그의 목소리는 눈처럼 가볍게 내려앉았다.


"내일.... 주말이잖아요. 혹시, 시간 되세요?"


희옥은 순간적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쳤고,

마치 눈꽃 속에 전기가 통하듯,

짧은 찌릿함이 머리부터 심장까지 스쳐갔다.


시선을 피한 그녀는 괜히 머리칼을 매만졌다.

바람은 차가웠지만, 볼은 점점 뜨거워졌다.


"음....."


손끝이 민망하게 꼬이고,

입고리는 자꾸 올라가려 들었다.

희옥은 애써 말투를 눌렀다.


"... 딱히 약속은 없었는데요..."


태산의 웃음이 피식 번졌다.

얼굴에 작은 봄이 찾아오는 듯했다.


"그럼..... 내일 뵐게요."


말을 마치고도 둘은 쉽사리 몸을 돌리지 못하고,

시곗바늘은 하염없이 돌아갔다.

둘 사이 공기만 살짝 멈춘 것 같았다.


"잘 들어가세요.."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희옥은 대문을 열고 들어가 간단한 눈 맞춤인사를 하고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볼에 있던 열이 슬그머니 내려와

입가를 맴돌았다. 붉어진 얼굴은 감정의 열기인지,

겨울바람 때문인지 말할 수 없었다.


그대로 한참을 서 있었다.

익숙한 집이었지만 뭔가 새로운 공기가 맴도는 것 같았다.


그녀의 마음 어딘가,

아주 조용히 불이 하나 들어온듯했다.

다음날이, 처음으로 조금 기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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