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8 계단 아래, 둘둘둘
그날도 공장은 시끄러웠다.
한겨울 난방도 없이 미싱 수십대가 쉴 새 없이 돌아가던 곳.
따다다다다, 따닥.
철컥.
다시 따다다다다다.
바깥엔 눈이 왔지만, 공장 안은 언제나처럼
손놀림과 기계음에 밀려, 그런 낭만조차 오래 머물 수 없었다.
희옥은 평소처럼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한 땀 한 땀 미싱을 누르며, 실밥을 자르고 다시 박고,
눈은 천을 보고 있지만, 머릿속엔 어쩐지 자꾸 한 사람이 떠올랐다.
완성반 태산.
요즘 따라, 자꾸 희옥이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박하사탕 하나, 알사탕 하나.
"추우시죠? 이건 미싱 하다 먹어도 안 끈적여요."
그런 말을 하며 은근슬쩍 놓고 가는 그의 손길에,
희옥은 자꾸만 가슴이 따뜻해졌다.
열심히 미싱페달을 밟으며 미싱을 돌리다가
희옥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니, 저 화장실 좀..."
옆 언니에게 말을 전하며 빠르게 나갔다.
멀리서 희옥을 바라보고 있던 태산은 그 모습을 보더니
벌떡 일어나 난로 쪽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늘 올려져 있던 낡은 주전자가 있었다.
그는 주전자를 조심스레 내려 얇은 유리컵 두 개를 꺼냈다.
희옥이 돌아오는 길, 계단 쪽에 서있던 태산이 손을 흔들었다.
"희옥 씨!"
"어머 거기 뭐 하셔요?"
계단에 있는 태산에게 다가갔다.
"여기요. 추우시죠?"
"아뇨... 뭐... 조금이요."
"제가 2:2:2 아주 맛있게 타왔습니다"
커피 두 잔.
유리잔 속 따뜻한 김.
둘은 나란히 계단에 앉았다.
다리 아래로는 작업장 소음이 여전히 울리고 있었지만,
이 계단만큼은 조용했다.
"여기서 마셔도 돼요?"
"여기요? 아무도 안 와요. 저만 오니까요."
"그럼.. 오늘은 저도 특별대우받는 거네요."
"아뇨, 매일 특별대우인데요."
희옥은 웃었다.
이상하게 가슴이 간지럽고,
컵에서 피어오르던 김도, 태산의 말투도 따뜻했다.
"퇴근하고... 뭐 하세요?"
"집 가죠, 뭐."
"혹시... 백반 좋아하세요? 제가 아는 데 있는데 국이 끝내줘요."
".. 지금 이 커피도 진짜 맛있는데요?"
"그럼 오늘은 커피 한 잔에, 저녁까지 먹는건가요?"
"하하 그래요. 갈게요. 그 집, 진짜 맛있어야 돼요~"
"아! 그럼요. 그리고 커피잔은 저한테 주시면 제가 설거지할게요."
"고마워요."
"고마우면 저 다음에도 또 커피 타게 해 주세요."
희옥은 순간 말이 막혀
유리컵을 태산 손에 쥐어주며 웃었다.
"... 말 참 잘하시네."
그러곤 고개를 푹 숙였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날따라 커피맛이 오래 남았다.
저녁 7시.
희옥은 작업복을 갈아입고 태산을 기다렸다.
멀리서 뛰어오는 태산과 만나 길을 걸었다.
노포 백반집.
김치찌개, 계란말이, 멸치볶음, 콩나물무침.
옆테이블의 시끌벅적한 웃음소리에 묻혀, 둘만의 말이 오갔다.
"아까 계단에서요."
"네?"
"그거요... 커피. 되게 좋았어요."
".. 다행이네요. 다음에도 또 타드릴게요 2:2:2 그대로"
희옥은 말없이 반찬하나를 태산 밥공기에 올려주었다.
놀란 태산은 토끼눈을 하며 희옥을 바라보았다.
"이 집, 진짜 괜찮네요."
희옥이 밥을 한입 뜨더니 말했다.
"그쵸?! 맛있는 거 먹으면 좋은 사람도 더 좋아지잖아요."
태산은 바보처럼 웃으며 대답을 했다.
희옥이 피식 웃었다.
"... 네 그러니까, 오늘부터 잘 부탁해요."
태산은 젓가락을 멈추고 잠깐 희옥을 바라보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매일도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