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비소리 제주로드 1화

아무런 생각 말고 일단 제주도로 갑시다!

by 곰돌아부지

원클럽맨을 꿈꿨지만 회사와 헤어질 결심을 했다.

정확히는 회사가 잘못된 선택을 하며 적자의 늪으로 빠져버렸고

손실을 메꾸기 위해 손에 잡히는 대로 수주를 해오고는 납기를 지키지 못해

메꾸기는커녕 구멍만 넓히는 악순환을 거듭하면서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며

이건 아니라는 생각과 힘들어 죽느니 굶어 죽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 서게 되었는데

그때 문득 전국일주로 떠난 부산에서 보았던 제주도행 카페리가 생각났다.


거진 2년간 로망이라고 마음 한 켠에 두고 살았는데

별 거 아니라 생각한 그걸 실현해야 분이 풀릴 듯했다.


"그래! 떠나자!!"


솔직히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가서 렌터카를 이용하면 아주 편하다.

근데 로망이라는 게 쉽게 저지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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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회사를 떠나는 김에 완도여객선터미널까지 운전해서 내려가고

완도여객선터미널에서 추자도를 경유하는 제주도행 카페리를 타고

제주도 자차 여행을 가기로 했다.


처음엔 부모님까지 4명이서 제주도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나와 동생이 차를 타고 완도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에 가는 동안

부모님은 비행기를 타고 와서 제주공항에서 합류하는 계획이었지만

이때 하필 코로나가 터졌다.


타이밍이 거지 같다 생각이 들었지만

"아쉽지만 다음에 또 다시"라고 하면

그다음이 언제가 될지 전혀 알 수 없었기에

진짜 작정하고 모 아니면 도 정신으로 동생과 둘이

2020년 3월 제주도를 가기로 결심했다.


사표를 내고 퇴사일에 일주일 시간을 줄 테니 돌아와도 받아주겠다는 사장님의 면전에

아마 그땐 바다 건너 멀리 있을 것이기에 돌아올 생각이 없을 것이라는 마침표로

손톱깎이처럼 딱 잘라 말하고는 제주도를 갈 채비를 시작했다.


여느 때처럼 떠나기 전에 정비를 위해 들린 정비소에선

전국을 8자로도 돌고 ㅁ자로도 돌고 와서 웬만한 것에 감흥이 없어진 상태임에도

제부도가 아닌 제주도가 목적지라는 이야기에 화들짝 놀랬다.


전국일주도 두 번 다녀오고 그 사이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짐 싸는 게 도가 텄다.

제주도 6박 8일 일정을 위해 모은 짐을 정리하기 위해

이웃집에서 협찬(?) 받은 쿠팡 로켓 프레시 박스 3개에 콤팩트하게 담아내고

드디어 대장정을 시작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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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출발 전에 낭만 한 스푼을 첨가하기 위해

오페라 실황 돈 파스콸레를 보고 출발하기로 했다.


2018년 전국일주 당시에 영화 죄 많은 소녀를 보고 부산을 갔던 기억도 있었고

출발 전에 확실하게 쉬고 싶었던 전략도 나름 세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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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가 되어서 완도로 출발했다.

내려가는 길에 주행거리가 24만 km가 돌파되면서 동생이랑 짝짝짝 박수도 치고

1시간~1시간 반마다 휴식을 취하며 내려갔는데

오전 8시 배에 차를 선적해야 했기에 아무리 늦어도 6시 안에는 완도 여객선 터미널에는 당도해야 했다.


물론 완도까지 차를 끌어야 하는 건 온전히 내 몫이었다.

내가 늦장을 부리면 여지없이 시작도 못해보고 낭패이기에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완도로 향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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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10분 전 드디어 완도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했다.

잠은 배를 타고 가는 4시간 동안 청하는 걸로 하고 그저 도착만 생각하고

완도까지 무려 470km에 달하는 거리를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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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동이 트지 않은 시간이라 터미널에 사람이 몇 없었지만

늦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로 몰려왔던 압박감이 사르르 녹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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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본격적인 시작은 차량 선적부터!!!

차를 선적한 이후에 사람이 탑승해야 하는 과정에서 혹여나 헤맬까 싶어

출발 일주일 전부터 차량 동반 승선 방법을 달달달 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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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였는지 차량승선권을 받고 승선을 준비하는 과정은 매우 순탄했다.

꿈의 영역에서만 맴돌던 목표가 눈앞에 실현되자 묘하게 설렘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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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차가 생긴 이래로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한 순간이었다.

김포공항이 버스로 30분 거리에 있음에도 굳이 새벽을 가로질러 완도까지 차를 끌고 와서는

배에 태운다는 행위 자체를 보편적인 영역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일테니......

근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점차 고개를 드는 햇빛에 여행의 서막이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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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선적은 승용차-화물차-컨테이너 순으로 진행되었다.

게다가 이 때 탄 배가 추자도를 경유했기에 최종 목적지인 제주도를 가는 내 차는

제일 구석에 자리를 배정받아 선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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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 분들이 체인으로 바퀴를 고정하는 것을 보며 배를 빠져나온 뒤에

터미널에서 기다리고 있던 동생을 재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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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태웠으니 이제 사람이 탈 차례가 되었고 QR 코드가 승선권을 대신한 덕분에

아주 간결하게 배를 탈 준비가 되었다.

물론 바다를 잠시 구경하려 했는데 바닷바람의 매서움에 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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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침 8시

1초도 미루지 않고 배는 출발했다.

징그럽게 집요하게 고집했던 시간에서 잠시 벗어나 자유를 찾는 마음으로

제주도를 향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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