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비소리 제주로드 4화

차수하러 와서 내달리는 아이러니!!!

by 곰돌아부지

이번 제주도 여행은 숙소를 게스트하우스로 잡았다.

어차피 동생이랑 둘이 다니는 데다 여행의 원초적인 느낌을 지향하고자 결정한 것인데

렌터카가 일반적인 제주도에서 자기 차로 그것도 10년이 넘은 차로 온 사람이라면

당연히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근데 불편함을 감수하는 만큼 낭만은 치사량에 가까워진다.


잠을 깨기 위해 나온 게스트하우스 건물 앞에서 새로운 여정에 대한 마음을 다잡고

프렌치토스트와 우유로 아침을 해결한 뒤에 두 번째 날을 시작했다.



구름으로 잔치를 벌였던 첫날과 다르게 둘째 날은 구름이 갠 맑은 날씨 덕분에

피톤치드 플라시보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로드 트립이니까 가다가 차 세울 곳 있으면 세워놓고 노닥거려도 좋겠지만

첫 번째 경유지의 매력을 생각해 보면 다른 데 눈길을 돌릴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하필 화이트데이였던 이 날.....

동생과 오붓하게 우애를 쌓는 시작점은 오설록 티 뮤지엄이었다.

서울에 가면 큰맘 먹고 가던 오설록 생각에 고른 장소였고

티스톤 클래스도 자연스레 예약을 해두어서

오전을 여기서 보내는 것으로 일정을 계획했다.




여기서 동생의 설명이 곁들여지니 꽤나 고급진 일정이 되었다.

차에 대한 이야기를 쉽고 재밌게 구성한 전시도 인상적이었지만

차를 재배하는 밭이 보이는 풍경이 주는 의미는 새롭게 다가왔다.



티스톤 클래스 예약 시간이 남아서 건물 뒤편 오솔길을 따라 들어갔는데

이 구역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공간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TV 광고로만 접하는 이니스프리에 대한 공간을 만날 수 있었다.



물론 이니스프리와 거리가 먼 남정네 둘은 그런가 보다 하고 여기저기 열심히 보기만 했는데

오히려 이 건물을 빠져나와 보게 된 구조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도브 비누부터 쌀알에 알새우침까지 다양하게 의견이 나왔는데

농담이 배드민턴 랠리하듯이 오가는 동안 드디어 티스톤 클래스 시간이 되었다.



추사 김정희의 이야기와 벼루-먹-봇을 상징하는 구조물이 곁들여진 건물을 들어섰는데

본격적인 클래스가 시작하기 전에 시각적인 영역에서 압도당한 듯한 기분이었다.

11시라는 약간은 느지막한 느낌이 드는 시간이었는데

녹차 향에 정신이 번쩍 드는 듯했다.


녹차 품종 중 세작을 우리며 격조 있는 시간이 되었지만

동생과 내가 각자 우린 녹차는 어느새 '슬로우캡틴 세작'과 '분노의 세작'이 되어

각자의 성격이 온전히 담긴 한 잔이 되었고 차수하시라는 말로 종결되었다.



티스톤 건물 지하에 자리 잡은 오설록의 시그니처 발효차 ‘삼다연’의 숙성고 체험공간까지 구경을 마친 뒤에

오설록 티 뮤지엄 관람을 마치고 도로 건너편 차 밭으로 향했다.



3월 중순 즈음이었음에도 더위가 살포시 있는 날씨였지만

해가 고개를 들고 존재감을 뽐내는 덕분에 광합성하기에 최적이었다.


아!

점심시간이 되었는지 배가 고프네!

두 번째 목적지에 가는 길에 눈에 띈 한식 뷔페에 들어갔다.



근데 여기서 횡재했다.

제주도 흑돼지 수육에 갈치속젓이라니!!!

저렴한 가격에 이게 웬 떡이냐 싶었던 데다

진짜 염치 불구하고 며칠 굶고 온 것처럼 최선을 다해서

마음에 점이 아니라 면을 그리는 마음으로 점심을 해치웠다.



로드 트립이니까 두 번째 목적지에 가던 길에 잠시 차를 세우고 숨 좀 돌리고......


내 자동차를 가지고 제주도에 온 김에 사심을 담아

세계 자동차&피아노 박물관을 두 번째 목적지로 정했다.

솔직히 박물관이라고 하기엔 수장고에 가까운 느낌이었는데

뭐...... 자동차 좋아하는 엔지니어라면 와보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어!!!!



어제 만난 테디베어를 여기서 또 만나다니!!!!

음..... 우리 이제 드문드문 보면 안 되겠니?



진짜 별의별 자동차들이 다 있었지만 그래도 날렵한 친구들한테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제주도 날씨에 어울릴 만한 느낌이 분명한 걸......



자동차에 이어서 본 피아노는 가공하는데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피아노 자체가 아름답고 소리가 좋다는 등의 생각보다 제작 공정에 궁금증이 쏠렸던 걸 보면

내가 기계쟁이 & 설계쟁이라는 걸 다시 상기시키게 했다.


세계 자동차&피아노 박물관을 나와 도착한 곳은 산방산이었다.

마침 유채꽃이 만개한 제주도의 풍경을 볼 수 있어 오게 된 건데



안보가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던 표지판은

제주도의 막강한 바람 앞에서 꿋꿋함을 잃어버리고 드러누워버렸는데

말로만 듣던 제주도 바람의 위엄을 실감했다.



근데 유채꽃밭의 아름다움 이면에 추잡하고 더러운 면을 마주했다.

찍어주는 것도 아니고 유채꽃밭을 찍기만 하는데도

1,000원을 달라는 천박하고 거지 같은 상술을 보였는데

맑은 날씨덕에 하이 텐션을 이어가던 기분을 잡쳐버린 데다

혼쭐을 내줄 생각에 진짜 끝을 보려 작정했지만

상대를 잘못 고른 상인들이 몸을 사린 데다

산방굴사 부처상 앞에서 한 몸 희생하며 웃긴 동생 덕분에 기분을 풀 수 있었다.




불닭이 되어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상황을 무마하고

기분 전환도 할 겸 동생의 강력추천으로 제주조각공원에 오게 되었다.



해 질 녘에 입장래 스탬프 투어를 하며 거니는데

QR 코드로 연결된 링크 속 글을 읽으며

인생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어보게 되었다.


누가 보면 청승맞게 보일 수도 있는 궁상이었겠지만

회사를 때려치우고 뒤돌아 볼 틈도 없이 오게 된 제주도였기에

혼자 걷는 이 시간에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이 분명했다.



전망대에 도착하자 절묘하게 바뀐 야경은 제주도에서의 두 번째 날을

잊을 수 없는 밤으로 만들어줄 만큼 아름다웠다.

많은 일들이 오간 하루였는데 이 야경 하나로 모든 것들을 정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번에도 동생의 추천이 엑스 텐처럼 완전히 관통했다.



아..... 근데 갑자기 전 날 이 시간대의 상황이 떠올랐다.

잠깐만 저녁을 해결해야 하는데 또 잊고 있었다.



다행히 근처 식당 주인장 분들이 미스터트롯을 보느라

문을 아직 안 닫은 덕분에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

(살람 해요 미스터 트롯!!!)



바람은 무척이나 강해서 주인의 소갈머리는 산발이 되었고

전 날 항구에서 맞은 소독약 세례에 차는 꼬질이가 되었지만

둘째 날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이제 셋째 날은 프랑스 감성으로다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