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대신 광주로 선회하기 -> 국립광주박물관
크리스마스 연휴를 활용해 새벽부터 부지런히 내려온 나주.....
국립나주박물관 관람이 이번 여행의 첫 번째 목적이었건만 하필 휴관이었다.
아쉬운 대로 '곰탕이나 한 그릇 먹고 가자'며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먹어보자는 심산으로 오픈 시간에 맞춰
나주곰탕 하얀 집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통로 쪽 주방 가마솥에 담긴 투명한 물과 고기를 보며 이제 막 끓이려나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주문하자마자 나온 음식은 조금 전 주방에서 본 그 모습 그대로였다.
주문한 지 채 3분이 되었을까.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상이 차려졌다.
동생은 곁들임 찬으로 나온 돼지껍질을 보며
"이게 국물을 투명하게 만드는 비결일 것"이라는 추측을 건넸고 나는 홀린 듯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첫 입 그 한 숟가락은 내 입맛을 칭기즈칸처럼 단숨에 제패해 버렸다.
토렴을 거쳐 식혜처럼 가볍게 떠다니는 밥알과 호호 불지 않아도 좋을 적당한 온기
무엇보다 갓 나온 국물임에도 기름기 하나 보이지 않는 맑은 표면까지
이 모든 것이 3분 만에 차려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110년 세월의 내공이 그릇 곳곳에 배어 있었다.
여기에 초장, 기름간장, 막장을 곁들인 숙성 배추김치와 깍두기의 퍼포먼스는
집에 돌아가서도 재현하고 싶을 만큼 강렬했다.
어쩌면 박물관의 휴관은 이 맛을 온전히 마주하고, 다음을 기약하게 만들려는 ‘신의 한 수’가 아니었을까
곰탕과 수육국밥을 하나씩 시켜 국물 속 고기 질감의 미묘한 차이를 음미한 뒤
금성관 산책으로 마무리를 한다면 이보다 완벽한 풀코스는 없을 것이다.
미술관 소장품 전의 가장 큰 매력은 예상치 못한 순간
주옥같은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행선지로 들리게 된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 미술관의 전시가 그랬다.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 기념전에서 만났던 거장들의 숨결을 이곳에서도 옹골차게 마주할 수 있었다.
특히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의 특별 수장고에서 접했던 드로잉들과 궤를 같이하는
작품들을 발견할 때마다 속으로 "아! 이거 알아!"라고 외치며 반가워했다.
전보다 많아진 연결고리들을 찾아내는 과정은 이번 전시를 즐기는 가장 큰 묘미였다.
그만큼 부지런히 전시장을 누볐던 나의 지난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2층 전시장에는 눈을 사로잡는 알록달록하고 다채로운 작품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깊은 잔상을 남긴 건 흑백으로 그려진 고라니들이었다.
마치 증명사진을 찍듯 정면을 응시하는 고라니들의 모습이란
세련된 예술의 향연 속에서도 결국 고백하게 된다
역시 귀여운 것은 언제나 옳다!!!
수려한 건물 외관에 이끌려 발길을 옮긴 곳은 국립광주박물관이었다.
아쉽게도 2층은 전시 개편 중이라 1층만 관람할 수 있었지만 아쉬움은 금세 채워졌다.
아시아 도자기의 흐름을 짚어보는 상설 전시와 더불어 문화재를 바라보는
여섯 사진작가의 독창적인 시선이 담긴 특별 전시가 기대 이상으로 다채로웠기 때문이다.
문화재를 감상하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준 그 시선들에 깊이 몰입했다.
1월 말이면 2층도 새로 문을 연다고 하니 날이 따스해질 즈음 다시 이곳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물관을 나서며 마주한 주차장 자판기는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반전이었다.
다른 음료는 모두 매진인데, 오로지 '써니텐 파인애플 맛'만 전 칸을 채우고 있는 게 아닌가.
선택의 여지 따위는 주지 않겠다는 그 호기로운 패기에 실소를 터뜨리며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