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된 세상에서 만난 영원
- 국립박물관 투어 9편

나주 대신 광주로 선회하기 -> 국립광주박물관

by 곰돌아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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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연휴를 활용해 새벽부터 부지런히 내려온 나주.....

국립나주박물관 관람이 이번 여행의 첫 번째 목적이었건만 하필 휴관이었다.

아쉬운 대로 '곰탕이나 한 그릇 먹고 가자'며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먹어보자는 심산으로 오픈 시간에 맞춰

나주곰탕 하얀 집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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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로 쪽 주방 가마솥에 담긴 투명한 물과 고기를 보며 이제 막 끓이려나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주문하자마자 나온 음식은 조금 전 주방에서 본 그 모습 그대로였다.

주문한 지 채 3분이 되었을까.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상이 차려졌다.


동생은 곁들임 찬으로 나온 돼지껍질을 보며

"이게 국물을 투명하게 만드는 비결일 것"이라는 추측을 건넸고 나는 홀린 듯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첫 입 그 한 숟가락은 내 입맛을 칭기즈칸처럼 단숨에 제패해 버렸다.


토렴을 거쳐 식혜처럼 가볍게 떠다니는 밥알과 호호 불지 않아도 좋을 적당한 온기

무엇보다 갓 나온 국물임에도 기름기 하나 보이지 않는 맑은 표면까지

이 모든 것이 3분 만에 차려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110년 세월의 내공이 그릇 곳곳에 배어 있었다.


여기에 초장, 기름간장, 막장을 곁들인 숙성 배추김치와 깍두기의 퍼포먼스는

집에 돌아가서도 재현하고 싶을 만큼 강렬했다.

어쩌면 박물관의 휴관은 이 맛을 온전히 마주하고, 다음을 기약하게 만들려는 ‘신의 한 수’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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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탕과 수육국밥을 하나씩 시켜 국물 속 고기 질감의 미묘한 차이를 음미한 뒤

금성관 산책으로 마무리를 한다면 이보다 완벽한 풀코스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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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소장품 전의 가장 큰 매력은 예상치 못한 순간

주옥같은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 행선지로 들리게 된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 미술관의 전시가 그랬다.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 기념전에서 만났던 거장들의 숨결을 이곳에서도 옹골차게 마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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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의 특별 수장고에서 접했던 드로잉들과 궤를 같이하는

작품들을 발견할 때마다 속으로 "아! 이거 알아!"라고 외치며 반가워했다.

전보다 많아진 연결고리들을 찾아내는 과정은 이번 전시를 즐기는 가장 큰 묘미였다.

그만큼 부지런히 전시장을 누볐던 나의 지난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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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 전시장에는 눈을 사로잡는 알록달록하고 다채로운 작품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깊은 잔상을 남긴 건 흑백으로 그려진 고라니들이었다.

마치 증명사진을 찍듯 정면을 응시하는 고라니들의 모습이란

세련된 예술의 향연 속에서도 결국 고백하게 된다

역시 귀여운 것은 언제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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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려한 건물 외관에 이끌려 발길을 옮긴 곳은 국립광주박물관이었다.

아쉽게도 2층은 전시 개편 중이라 1층만 관람할 수 있었지만 아쉬움은 금세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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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도자기의 흐름을 짚어보는 상설 전시와 더불어 문화재를 바라보는

여섯 사진작가의 독창적인 시선이 담긴 특별 전시가 기대 이상으로 다채로웠기 때문이다.

문화재를 감상하는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준 그 시선들에 깊이 몰입했다.

1월 말이면 2층도 새로 문을 연다고 하니 날이 따스해질 즈음 다시 이곳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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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을 나서며 마주한 주차장 자판기는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반전이었다.

다른 음료는 모두 매진인데, 오로지 '써니텐 파인애플 맛'만 전 칸을 채우고 있는 게 아닌가.

선택의 여지 따위는 주지 않겠다는 그 호기로운 패기에 실소를 터뜨리며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