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인사이드 광주 1편
여행의 성격은 대개 그 도시를 마주하기 전, 책상 위에서 펼친 지도 한 장으로부터 결정된다.
2020년 1월, 설 연휴를 앞두고 동생과 떠나기로 한 광주 여행도 그랬다.
광주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노트북을 내밀며 동생이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동생이 가져온 리스트에는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사적지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 있었다.
혹여나 명절 연휴에 떠나는 가족 여행이 너무 무겁고 어두운 공기로만 채워질까 봐
동생 나름대로 '감정의 수위'를 조절한 결과였다.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 동생의 손에는 역사 유적지 대신 미술관, 갤러리, 그리고 예술가들의 흔적이 남은 골목길 이름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역사의 비극을 외면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다만 우리는 광주라는 도시가 가진 또 다른 얼굴
즉 그 아픔을 딛고 피어난 '아름다움'을 먼저 마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동생이 고민 끝에 골라온 장소들을 하나하나 연결해 보니
그 선들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커다란 캔버스를 그려내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 테마는 출발하기도 전에 정해졌다.
'아트 인사이드 광주'
슬픔의 기록 너머 예술이라는 필터로 들여다보는 광주는 어떤 색채를 띠고 있을까.
우리는 무거운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대신 예술을 향한 호기심을 배낭에 채운 채 광주로 향했다.
2020년의 그 겨울 공기는 유난히 맑았고
동생이 건넨 예술 지도는 우리가 몰랐던 광주의 속살로 안내하는 다정한 초대장 같았다.
광주에 도착해 가장 먼저 향할 곳을 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쉬웠다.
고민하던 찰나 주희 누나의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라온 강렬한 그림 몇 점이 내 시선을 붙들었기 때문이다.
"여기다." 확신 섞인 목소리로 동생에게 화면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우리의 첫 경유지는 광주의 예술적 에너지가 응집된 미술관으로 낙점되었다.
그곳에서 마주한 <와신짬뽕(臥薪+Jjamppong)> 전시는 그야말로 '발칙한 충격'이었다.
'와신상담'이라는 고루해 보일 수 있는 전통적 서사를
'짬뽕'이라는 지극히 현대적이고 일상적인 키워드로 버무려낸 발상이 무척이나 신선했다.
박제된 전통 회화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 숨 쉬는 현대 회화로서
어떻게 과거를 계승하고 변주할 것인가에 대한 작가들의 재기 발랄한 해답들이 캔버스 위에 펼쳐져 있었다.
전통의 엄숙함을 깨뜨리는 그 유쾌한 반항이 묘한 쾌감을 주었다.
전시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하정웅 컬렉션 <예술가의 시선>으로 이어졌다.
재일교포 컬렉터 하정웅 선생이 기증한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들은
앞선 전시와는 또 다른 결의 묵직함을 건넸다.
시대를 관통하며 치열하게 고민했던 예술가들의 눈동자가 작품 속에 박혀 있는 듯했다.
화려한 기교 너머의 진심을 마주하며 나는 관람객으로서
현대미술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스스로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난해한 이론으로 무장한 예술이 아니라 작가의 시선과
나의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그 스파크를 즐기면 되는 것이 아닐까.
2020년 1월의 광주는 그렇게 '전통'과 '현대', 그리고 '나'라는 관람객의 경계를 허물며
우리에게 첫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하정웅 컬렉션의 작품들 앞에 서자
묘하게도 머릿속은 100여 년 전 유럽의 전시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20세기 초,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며 등장했던 야수파와 입체파의 거친 붓터치를 기꺼이 지지했던
당대 컬렉터들의 이야기가 하정웅 선생의 삶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대중에게 '야수들의 포효'라 조롱받던 마티스의 색채와 피카소의 기하학적 파편들을 알아본 것은
평론가가 아닌 예술을 향한 뜨거운 관심을 가진 컬렉터들이었다.
하정웅 선생 역시 마찬가지였으리라.
재일교포로서 겪어야 했던 시대의 아픔과 소외된 이들의 눈물을 예술이라는 그릇에 담아내려 했던
그의 집념은 단순히 작품을 소유하는 행위를 넘어 하나의 역사를 보존하는 숭고한 투쟁에 가까웠다.
그의 컬렉션을 보며 깨달았다.
예술은 작가 혼자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작품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관심'이라는 온기를 불어넣는 관람객과
컬렉터가 있을 때 비로소 예술은 영원성을 획득한다.
큐비즘이 현대 미술의 문을 열었듯 하정웅의 시선은
광주라는 도시의 아픔을 예술적 승화로 이끌어내고 있었다.
"미술을 아는 것이 왜 중요할까?"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기술이 아니라
시대를 읽어내고 그 안에서 보석 같은 가치를 지켜내려는 '사랑의 태도'였다.
광주에서 만난 예술가들의 시선은 그렇게 나의 무뎠던 감각을 날카롭게 깨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