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인사이드 광주 2편
분관에서 컬렉터의 '시선'을 배웠으니
이제 그 시선이 가 닿는 거대한 뿌리를 확인해야 할 차례였다.
"분관을 갔는데 본관을 안 갈 수가 있겠어?"
나의 말에 동생도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하정웅미술관을 나와 광주 예술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광주시립미술관 본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광주시립미술관 본관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그동안 국립현대미술관의 복도를 거닐며 갈고 닦았던
나의 '예술적 이해력'이 기분 좋은 예민함으로 깨어났다.
이곳에서 마주한 세 개의 층은 마치 현대 미술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압축해 놓은
거대한 서사시 같았다.
1층에서 마주한 영상 미술은 시간의 흐름을 물리적 제약 너머로 확장시키고 있었다.
빛과 소리가 만들어내는 찰나의 변주를 보며 나는 자연스럽게 과천관에서 보았던
<한국 비디오 아트 7090> 전시를 떠올렸다.
초기 비디오 아트가 가졌던 실험적 저항정신이 이곳 광주에선
어떤 정제된 미학으로 진화했는지 비교해보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계단을 올라 도착한 2층은 손장섭 작가의 세계였다.
그의 붓끝에서 태어난 한국의 풍경은 단순한 자연의 재현이 아니었다.
굴곡진 근현대사의 파란만장함이 층층이 쌓인 유채물감 사이로 배어 나오고 있었다.
거칠지만 따뜻한 그의 시선은 과천관의 <광장> 전시가 던졌던
'공동체와 개인, 그리고 역사'라는 묵직한 질문에 대한 광주식 대답처럼 느껴졌다.
역사를 피하려 예술을 선택했건만, 결국 가장 정직한 예술은
역사를 그 품에 안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3층에 이르러서야 숨을 고를 수 있었다.
현대인들에게 제공하는 '생각의 여유'를 테마로 한 전시는
앞선 층들의 치열함을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복잡한 담론을 걷어내고 오로지 작품과 나만이 남는 시간.
서울에서 광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광주시립미술관으로 이어지는
이 '미술적 순례'는 결국 하나의 결론으로 향하고 있었다.
예술은 시공간을 초월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그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것은
관람객만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짜릿한 유희라는 것을.
2020년 1월의 광주는 그렇게 나에게 '보는 눈'을 넘어 '잇는 마음'을 선물하고 있었다.
시립미술관 '본관'과 '분관'을 연이어 훑고 나니
머릿속은 예술적 영감으로 가득 찼지만 위장은 공허함을 호소했다.
혼자 여행했다면 전시의 여운을 씹으며 대충 끼니를 때웠겠지만
이번엔 든든한 여행 메이트인 동생이 옆에 있었다.
"이제 진짜 배고파."
동생의 짧고 굵은 한마디에 우리는 서둘러 다음 목적지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인근의 맛집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레이더망에 걸려든 곳은 광주의 '경리단길' 혹은 '망리단길'이라 불리는 동명동의 한 밥집이었다.
메뉴판의 유린기라는 세 글자에 꽂힌 나의 강력한 추천으로 메뉴가 결정됐다.
여기에 반마리 치킨커리까지 더하니 금상첨화.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분명 여기는 전라도 광주인데, 인테리어에서 풍기는 진한 레트로 감성은 마치 서울 을지로의 어느 힙한 공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2020년 당시 전국을 휩쓸던 '뉴트로'의 물결이
광주의 오래된 골목 동명동에도 세련되게 스며들어 있었던 것이다.
음식이 나오자마자 우리는 대화도 잊은 채 포크를 움직였다.
특히 동생의 활약이 눈부셨다.
동생은 이번 여행에서 '발골 장인'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치킨 커리의 뼈를 순식간에 발라내는 동생의 섬세한(혹은 저돌적인) 손길 덕분에
나는 그저 편안하게 숟가락만 얹어 맛을 음미하면 됐다.
바삭한 튀김옷 위로 쏟아지는 새콤달콤한 소스의 유린기와 진한 커리의 향.
예술적 허기를 채워주는 것은 결국 이렇게 다정하고 맛있는 한 끼였다.
을지로를 닮은 광주의 식탁 위에서 우리는 비로소 여행의 긴장을 풀고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동생의 완벽한 발골 실력만큼이나 우리의 첫날 일정도 빈틈없이 맛있게 채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