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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두나 Apr 29. 2019

#09. '나'가 아닌 '우리'를 위한 선택.

결혼 8개월 차에 접어들었지만 아직까지도 그때 급작스럽게 바뀐 시부모님의 마음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굳이 추측해 보자면 종교적 부분에서 자신들이 밑진다고 생각하신 건 아닐까 싶다. (사실 종교에 이기고 지고가 어디 있는가, 결국 인간의 자존심 문제겠지만.) 


앞서 말했듯이 시부모님은 처음에는 나의 종교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셨다. 이후의 마찰에 있어서도 비버씨의 고독한 싸움과 갖은 노력 덕분에 내게 영향이 있을 법한 얘기는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다. 


하지만 U시에서의 종교식이 코앞에 다가오자 시부모님의 생각이 달라졌다. '우리 아들이 결혼을 한대요!!'의 흥분으로 흘려들었던 비버씨의 가톨릭 세례를 기억함과 동시에, U시에서도 종교식을 한다고?  그럼 S시에서도 해야 하는 거 아냐?라는 의식의 흐름이 깜빡이도 없이 훅 하고 튀어나온 것이다. 


사실 비버씨는 이미 부모님과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저 이야기를 내게 꺼내기 전부터 스스로가 거부하고 반항하고 있었다. 특히나 이번 건의 경우 자신도 용납할 수 없던 부분이었기에 비버씨 역시 강력히 반대를 주장했으나 그렇다고 부모님을 이겨먹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우리가 못돼 먹은 인간이라고는 하나, 천륜을 거스를 수 없고 부모님의 뜻을 꺾을 수도 없다.


그렇다 하여도 이 이야기를 생각도 없다 갑작스레 전해 들은 나는 비버씨에게 맹렬히 항의할 수밖에 없었다.(아니, 정확하게는 매우 화냈다. 결혼 준비를 하다 싸운 건수들 중에서 내가 가장 크게 화를 낸 건이기도 하다.) 


이미 다 짜둔 판에 구태여 '기독교'를 집어넣어야겠는가. 이러다 아주 축가는 성가로 하겠네. 내 결혼식인데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뭐가 있는가. 그럴 거면 밑에서 결혼식을 하지 그랬냐 등등. 


내 성난 감정을 묵묵히 받아내다 이윽고 긴 침묵 끝에 비버씨는 딱 한 마디를 했다. 


"이건 '너'의 결혼식이 아니라 '우리'의 결혼식이야."

"그러니까 내 입장도 생각해 주면 안 돼?"


그 순간 댕- 하고 머릿속에서 종이 울리더라.


나는 이제껏 '나'의 결혼식을 걱정했다. 내가 그린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를 축하해주는 그 장면, 모두가 행복한 마지막 사진까지. 그 장면들을 결혼을 준비하는 내내 수없이 그려보고 행복해했다. 내가 언제나 꿈꾸던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행복한' 시간. 그 시간 속의 주인공은 바로 '나'.


그 과정에서 이 결혼식은  '우리'의 결혼식이 아닌 '나'의 결혼식이었고, '우리'라던가 '비버씨'는 잊힌 지 오래였다.


비버씨의 말을 듣고 갑자기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나는 얼마나 이기적인 사람이던가. 정말 나 밖에 모르는 인간이구나. 곰두나, 이렇게까지 인간말종은 아니었지 않는가. 왜 비버씨의 입장은 생각하지 못했는가.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나는 비버씨에게 물었다. 


나        : "종교식이라고 함은 목사님이 우리를 축복해주시고 싶다는 거지?"

비버씨 : "그렇지."

나        : "목사님의 축복 방식은 목사님이 하느님한테 기도를 해주시는 거지?"

비버씨 : "그렇지."


비버씨는 U시에서의 성당 혼배미사에도 반대 없이 수긍했거늘, 나는 왜 그의 '종교'를 이토록 거부했나. 결국 우리의 결혼식이고 우리를 위한 결혼식인 것을. 시부모님의 저 뜬금없는 의견은 형태만 다르지 어쨌든 더 깊이 축하해주시고 싶다는 것 아닌가. 


'종교식'을 주장하는 이유에는 다른 욕심이 있을지 몰라도, 단 한 가지 내가 추측할 수 있던 이유는 자신들의 종교에서도 아들 부부에게 더 큰 주님의 복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선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시부모님 역시 30년 이상을 기독교를 믿고 살아오신 분들이기에, 그들 안에서 종교가 갖는 힘이란 내가 짐작하기도 어려운 것일 것이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나와 비버씨는 평화로운 결말을 내기로 했다.  '주례가 없는 결혼식'을 모방하되, 시작과 끝을 포함하여 몇 부분에서 종교식을 넣기로 했고 양가에 새로 만든 결혼식 대본을 설명해드렸다. 시부모님은 나름대로 만족하셨고, 나의 부모님 역시 큰 반대 없이 오히려 '기도는 여러 번 받으면 좋지'라고 하셨다.


그래,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글을 정리하다 비버씨에게 이때를 회상해보라며 당신은 부모님의 행동이 이해가 가냐고 물어보았다. 비버씨는  "종교적 신념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라는 대답을 했다. 그래, 그도 잘 모르는 거 같다. 


하긴, 이 거룩한 신념을 당사자가 아니면 누가 알리오. 오 주님. 나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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