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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두나 Apr 27. 2019

#08.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결혼식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주말마다 만난 비버씨와 함께 각종 문제들을 해치우며 간헐적 폭식(?)을 해왔던 우리는 봄에 진행한 스튜디오 촬영 때에 비해 살이 쪘다. 양가 부모님은 각자의 자식들에게 '살 좀 빼라' 고 말했지만 우리는 이번 기회에 포토샵의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거라며 큰소리쳤다. 


2월부터 쉼 없이 달려온 결혼 준비, 그간 발생한 대부분의 불협화음은 비버씨와 나의 노력으로 줄어들었고, 더 이상의 특별한 마찰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제야 겨우 마음이 놓이고, 시댁과 처가 양 쪽에서의 결혼식만 무사히 치르면 되겠구나 생각했다.


처음 결혼식을 계획했을 때는 '인생 한 번의 결혼식'을 생각했으나, 앞서 적었던 내용과 같이 여러 반대에 부딪혀 양가에서 각 한 번씩 진행하게 되었다.  나의 본가인 U시에서는 본식 일주일 전, 다니던 성당에서 종교예식으로 '혼배미사' 후 피로연을 하는 것으로 결정했고 비버씨의 본가인 S시의 경우 시내 예식장에서 본식을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나 역시 내가 성당에서 결혼할 거라곤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남들 다 하는 자유로운 결혼식이 더욱 부러워졌다. 더구나 결혼식을 처음 생각했을 때부터 우리는 주례 없는 결혼식을 계획했다. 그래서인지 S시의 본식 결혼식만큼은 내 뜻대로 하겠다는 의지가 매우 강경했다.


주례가 없는 결혼식에서는 사회자의 역할이 크다. 예식 전문 사회자를 고용할까 하다 더욱 의미 있는 결혼식을 위해 비버씨의 절친에게 사회를 부탁했다. 나와 비버씨가 직접 대본도 만들고 각 구성 별 BGM도 일일이 편집하여 좋아하는 곡, 어울리는 곡으로 선택했다. 어떤 노래를 넣어 어떤 장면을 연출할까 고민하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더없는 기쁨이었다. 원래 여자의 로망 중 끝판왕이 결혼식 아니겠는가.


또한 사회 없는 결혼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성혼선언문 및 축사는 양가 아버지들께 맡기기로 결정 후 부탁드렸다. 두 분은 흔쾌히 기쁜 마음으로 역할을 맡아주셨다. 우리는 이제 모든 게 끝났고 행복한 결혼식을 준비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크나큰 오산이었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고, 모든 일은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는다.


사건은 매우 뜬금없이 터졌다. 

'U시에서 종교식을 하니, S시에서도 종교식으로 진행하고 싶다.'


.......??

급작스런 시부모님의 제안을 전해 들은 나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서울 본식을 기독교식으로 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굉장히 브금을 깔고 싶은 대목이 아닐 수 없군. 이왕 넣는다면 인간극장 엔딩곡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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