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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두나 Apr 26. 2019

#07. 허나 비버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 당시 비버씨는 우울함의 극치였다. 그야말로 어두컴컴, 까무잡잡, 흐리멍텅의 콜라보레이션.


'우리 엄마는 안 그래'라고 자신하던 비버씨는 이내 '우리 엄마 왜 이래'가 되었고, 날 사랑해서 결혼을 결심한 비버씨는 이윽고 '곰두나 vs 엄마'라는 난제에 부딪혔다. 이것은 나도, 비버씨도, 아니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상황. 


시간이 지나고 갈등이 깊어질수록 비버씨는 자신의 부모님께 차오르는 불만과, 억울함, 이해받지 못한다는 서러움이 강해졌고, 이는 우리 사이를 한층 더 지독하게 만들었다. 당시에 싸움은 하루 걸러 하루마다 있었고 으레 싸움이 격해질 때면 '결혼을 그만두자', '너는 이럴 거면 왜 나랑 결혼하냐', '네가 좋아서 하는 결혼식에 너는 왜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느냐' 등의 싸움이 이어졌다.


비버씨에게도 사정은 있었다. 나에게서 들은 모든 '시'자가 들어가는 이야기는 인터넷의 낭설이며,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둘러댔지만 실제 자신의 부모님이 그와 비슷한 양상을 띄기 시작하자 본인 스스로가 이 현실을 참을 수 없어진 것이다. 


우스운 건 이와 같은 싸움의 주제 거리들이 시어머니 본인이 생각에서 나온 것보다 주변 인물들의 부추김으로 시작된 것이 더 많다는 것이다. 문제가 되었던 것들 중 예단만 해도 '결혼하는데 어떻게 아무것도 안 받냐? 아들 가진 엄마는 그러면 안된다.'라는 주변인의 말 한마디로 시작되었다고 들었다. 부들부들. 우리 순진한 어머님께 엄한 바람을 불어넣은 사람들... 두고두고 기억하리라.


결국 우리는 시어머니께 소위 명품백을 선물하는 것으로 예단 이야기를 없앴다. (또한 시댁에는 말하지 않은 채 우리 엄마에게도 같은 금액대의 가방을 선물했다.) 우리는 처음부터  한쪽만 퍼주지 않기로 약속했고, 서로가 거지가 되더라도 해 주는 건 양가 똑같이 하기로 약속했다. 예상치 않은 지출로 비버씨와 나의 통장은 비상금마저 텅~장하게 되었다.


그 외 종교문제는 비버씨가 알아서 해결했다. 사실 지금까지도 어떻게 된 일인지 잘 모른다. 왜냐면 당시의 나는 그 건에 대해 더 생각하기도, 논의하기도 싫어했기에 비버씨가 알아서 해결하기로 했고 그 뒤로 나도 묻지 않았다. 내가 그 말을 꺼낸다는 것은 잔뜩 화가 난 벌집을 두드리는 격과도 같았기에 나는 되도록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함구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이 모든 일은 비버씨가 나와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지나갈 수 있었던 풍파라고 생각한다. 고생한 비버씨에게 늦은 박수를 보낸다. 


물론 누군가 내게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결혼 준비를 하라고 한다면 그때는 미련 없이 관둘지도 모른다. 비버씨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자 내 대답에 동의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결혼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이리 쉽게 포기하겠다 말할 수도 있다. 해보지 않았더라면 멋모르고 또 결혼한다고 했겠지.



"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삶에는 ‘결혼’만이 최종 종착점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이라면 그 싸움에서 백기를 들고 속 편히 포기할지도 모른다. 혼수와 예단을 얘기하는 시댁과, 예물로 다이아몬드 3종 세트는 받아야 하는 게 아니냐던 우리 집에 이누야사에 나온 가영이처럼 "내 행복을 찾아서 떠나겠다, 안녕!" 하고 손을 흔들며 말이다. 깔깔깔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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