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엄마고파

딸내미와 마음거리 좁히려 떠난 벼락치기 35박 유럽여행

by 글쓰는공여사


마미 한해가 너무빨리 지나가. 내년엔 5학년이 내후년엔 6학년이 되.

6학년쯤 엄마와 지겹도록 시간보내는 날이 올까???? 그랬음 좋겠어.

난 엄마고파. 엄마 말잘들을께~나한테 와~~

마미 내가 더 좋은거야? 언니오빠가 더 좋은거야?



딸내미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쓸쓸해’ 라는 제목으로 저에게 보낸 메일입니다. 딸내미가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제가 일을 다시 시작했고, 4학년이 되었을 때 영어 학원을 오픈하였습니다.


학원에 다니는 언니오빠들 챙기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새벽에 학원 문 닫고 들어오면, 잠들어있는 딸내미 얼굴을 한 번 쓰윽 들여다보고 오늘도 잘 지냈으려니 그렇게 믿었습니다. 엄마 말 잘 들으면 엄마가 자기에게 올 거라 생각했던 안쓰러운 딸내미를 스스로 잘 크고 있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엄마, 일 안 나가면 안돼요?”


현관에서 신발 신는 나에게 눈물 글썽글썽 맺힌 눈으로, 아빠 손잡고 하던 그 말을 듣고도 일하러 나갔습니다. 가끔 쉬는 휴일에 엄마와 놀고 싶어 다가오는 아이를 엄마 힘들다고 옆으로 밀쳐냈습니다.

20160123_213913.jpg 초등학교 1학년때 딸내미가 그린 '가족'

초등학교 1학년 때 딸내미가 그린 그림에도 엄마는 아빠보다 더 크고,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딸내미는 엄마와 비슷한 알록달록한 치마를 입고, 아빠 옆에 꼭 붙어 엄마를 그리워합니다.


엄마 보고 싶다고, 엄마와 놀고 싶다고, 자기 쓸쓸하다고 여러 번 얘기했는데......제가 배 아파 낳은 그 아이의 엄마이고, 아이는 결혼 10년 만에 우리에게 온 귀한 선물인데, 딸내미를 가만히 바라보지도, 딸내미가 하는 얘기를 귀담아 들어주지도 못했습니다. 얼마나 쓸쓸한지, 얼마나 슬픈지,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물어보지도 않았습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해야 해. 우리 딸내미 너무 빨리 큰다.”

남편의 뼈아픈 조언을 들으면서도 지금 당장 눈앞에 놓인 일을 처리하느라 그 말을 흘려보냈습니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는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함께 똬리를 틀고 앉아 매일 자라났습니다.


일을 시작한지 십년이 지나고, 딸내미는 훌쩍 커서 중2, 만 열 세 살이 되었습니다. 이제 일 나가는 엄마를 말리지도, 휴일에 놀아달라고 칭얼거리지도 않습니다. 여느 아이들처럼 학교도 잘 다니고, 친구들과 어울려 수다도 떨고, 매운 떡볶이 집 순례도 하면서 사춘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딸내미, 엄마아빠랑 어릴 때 뭐 했는지 생각나?”

“음~~아빠랑은 자전거 함께 타고 놀았던 거 생각나고.”

“엄마는?”

“글쎄......”


엄마와 보낸 시간도 없으면서 딸내미 기억 속에 엄마가 있기를 염치없이 바랬나봅니다. 딸내미가 너무 빨리 커서, 엄마를 더 이상 찾지 않아서 그래서 무서웠습니다. 영원히 우리의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이대로 멀어지면 어쩌나 마음이 급했습니다.


벼락치기라도 해서 엄마와의 추억을 채워 넣어야겠다는 성급함이 밀려왔습니다. 매일매일 붙어서 함께 일어나고, 함께 걸어 다니고, 함께 밥 먹고, 함께 손 꼭 붙잡고 잠들면서 그렇게 해서라도 벌어진 마음의 거리를 좁히고 싶었습니다. 그럴 수 있다고, 지금이라도 만회할 수 있다고 저를 위로했습니다.


십 년 만에 두 달 휴가를 받았습니다.

“너무 늦은 건 아니겠지? 딸냄~엄마랑 여행가자.”


그렇게 35박 36일, 아이와 단 둘이 떠나는 유럽여행이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