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진짜 이유> 나에게 좋은 날이란?
"살다 보니 이렇게 좋은 날이 올 줄이야! "
"으흐흐흐~으흐흐흐~"
초등 여자아이 둘이 웃음을 마구 뿌리며 내 앞을 달린다.
초등 1학년이 분명하다. 온통 핑크다. 하늘거리는 레이스 원피스도 스타킹도 재킷도, 등에 맨 가방도 손에 든 보조가방도 운동화도, 모두 핑크다.
수렵채집 시절, 주로 채집을 담당했던 여자들이 잘 익은 과일 색깔인 분홍에 집착하게 되었고, 여전히 그 유전자가 어린 시절 발현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핑크에 집착하는 여자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얘기다.
그런 한 무더기 분홍 꼬맹이들이 아파트 사이를 질주하며 내뱉은 말이? 의외다.
살다 보니 이렇게 좋은 날이라니...
오늘도 미키 쓰레빠 끌고 무릎 나온 츄리닝 입고, 그래도 마스크는 꼭 쓰고, 얼굴까지 올라온 쓰레기 바구니를 비우러 가는 길.
궁금하다. 10살도 안된 아이들에게 '살다 보니 좋은 날'은 어떤 날일까? 발은 쓰레기장으로 향하면서 눈은 아이들을 쫓는다. 혹시나 그들의 비밀을, 그들의 행복을 조금이라도 함께 느낄 수 있을까 해서...
아이들이 환한 웃음을 뿌리며 뛰어간 곳은?
동네 놀이터였다.
놀이터에 도착하자마자 몸에 붙은 것을 모두 걷어낸다. 분홍 겉옷도 등에 짊어진 가방도, 손에 든 보조가방도 의자에 던져두고 그네를 잡아탄다. 하늘로 조금 더 높이 오르려고 발을 구른다.
"으흐흐흐~으흐흐흐~~"
그냥 웃음이 계속 흘러나온다. 이게 바로 그들이 말한 '살다 보니 이렇게 좋은 날'이다. 친구와 함께 그네 타는 거.
아마 학교가 예정보다 일찍 끝났나 보다.
그래서 그네 탈 시간을 갖게 된 거지.
나를 기다리는 엄마나 할머니에게 가야 할 시간은 아직 멀었고.
지금은 그네를 타고 마음껏 하늘로 날아올라도 좋은 시간.
'살다 보니'라니... 10년도 안된 삶이 그렇게 길게 느껴졌을까?
아니면 이번 추석 때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 할아버지가 내뱉은 말을 기억하고 써먹은 걸까?
여하튼 그들은 '살다 보니 이렇게 좋은 날'을 마음껏 즐긴다.
우리 어른들에겐 그런 날이 언제일까?
오랜 시간 준비했던 시험에 합격한 날. 원하는 회사에 취업한 날, 기다리던 승진 소식을 듣는 날? 처음으로 내 집을 장만한 날. 운명의 상대를 드디어 만났다는 느낌이 든 날. 이름도 모르는 고조할아버지가 남긴 삼천 평 땅이 나밖에 물려받을 사람이 없다는 소식을 듣게 된 날? 혹은 10년 만에 드디어 로또 1억이 당첨된 날?
우리는 그런 날을 맞으면 축하받고 행복해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좋은 날이 찾아오길 기대하며 묵묵히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간다. 가끔 나쁘고, 대부분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렇고 그런 수많은 날을 말이다.
불안하다. 그 이유는?
불안하다. 나에게 그런 좋은 날이 오기는 할까? 진짜 이유는?
불안하다. 나에게 그런 좋은 날이 오기는 할까? 그런 좋은 날 오기도 전에 인생 끝나는 건 아닐까?
그런 말을 가볍게 자주 써야겠다. 그네 타는 날이 살다 보니 좋은 날인 아이들처럼.
와우! 살다 보니 이렇게 좋은 날이 오네.
속이 탱탱하고 포실포실한 찐 밤을 먹게 되다니~
와우! 살다 보니 이렇게 좋은 날이 오네.
내가 브런치에 올린 글에 라이킷을 열 명이나 누르다니~
와우! 살다 보니 이렇게 좋은 날이 오네.
우리 집 댕댕이 까뭉이가 드디어 설사 3일 만에 황금빛 똥을 누다니~
기준을 대폭 낮추니, 매일매일이 좋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