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호주머니 양쪽에 가득 담아온 밤을 식탁 위에 펼쳐놓는다. 어림잡아도 통통한 밤알이 30개도 넘는다.
"이걸 다 주웠다고? 어디서?" "우리 까뭉이 산책시키는 그 숲길에서. 글쎄 밤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더라고. 그래서 냉큼 다 주워왔지. 완전 통통하지? 주우면서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내 생전에 떨어진 밤을 공짜로 줍는 날이 다 있구나, 로또 당첨된 기분이었다니까. "
아파트와 도로 사이에 100미터쯤 이어진 숲길이 있다. 우리 집 댕댕이랑 자주 산책 다니는 코스다. 그곳에서 떨어져 있던 밤을 공짜로 주웠다고 난리를 핀다.
바로 요것이다. 내가 주어온 밤.
"야~ 밤이 실하네. 이게 거기에 떨어져 있었다고?" 남편은 내 말이 믿기지 않은지 내가 주워온 밤톨을 뒤적이며 말한다.
"그렇다니까. 누가 한차례 수확하고 뒤늦게 떨어진 밤이 아직 남아있었나 봐. 얼른 쪄먹어야지~~~~"
공짜로 주워온 밤 쪄먹을 생각에 흥이 절로 난다.
난 유난히 밤을 좋아한다. 토실한 밤을 쪄서, 찻숟가락으로 포실포실한 밤 속을 파먹으면
이게 바로 행복이구나, 별로 식탐도 없는 내가 먹는 걸로 행복해한다.
"근데... 거기 밤나무가 있었던가?"
남편이 뜬금없이 묻는다.
"밤나무가 있었으니까 내가 떨어진 밤을 주어 왔겠지."
남편의 말은 귓등으로 흘리고, 얼른 밤을 씻어 찜기에 넣고 찌기 시작한다.
그런데 왜 따뜻한 밤을 숟가락으로 파먹으며 남편이 한 말이 뒤통수를 잡아당기는 걸까?
'근데... 거기 밤나무가 있었던가?'
다음날, 까뭉이랑 산책 가자던 남편이 산책 코스를 내가 밤을 주었다는 그 숲길로 잡는다.
"가보자. 어디서 밤 주었는지?"
뭐야? 나를 의심하는 거야 뭐야? 밤나무도 없는데 내가 밤 주웠다고 거짓뿌랭이라도 했다는 거야? 돌직구 문제 해결형 남편에게는 방법이 없다. 내가 보여줄게. 밤나무~
숲 속에 도착하자, 난 내가 밤을 주웠던 곳으로 남편을 안내했다.
"여기쯤. 여기저기 한 톨씩 흩어져있었어."
나무 밑과 주위 나무를 한참 찬찬히 살피던 남편이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내뱉었다.
"여긴 밤나무가 한 그루도 없어."
맞아! 여긴 밤나무 한 그루도 없는데...
"뭐? 밤나무가 없다고? 그럼, 밤은 어디서 나온 거야?"
"밤나무가 있다 치자. 밤이 있으려면 터진 밤송이 껍질이라도 있어야 하잖아. 그런데 어디 터진 밤송이 껍질이 하나라도 있어?"
정신을 차리고 이성도 챙기고 아이큐도 박박 긁어 모아 생각해보니 다 맞는 말이다.
밤이 나오려면 밤송이가 있어야 하고 밤송이가 떨어지려면 밤나무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여긴 밤나무도 한 그루 없고, 떨어진 밤송이 껍질도 하나 없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요거 요거 밤송이 아니야?"
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토리 껍질을 가리켰다.
"......"
남편은 어이가 없는 듯 할 말을 잊는다.
"요건 밤송이 아니지?"
이젠 솔방울을 가리키며 콩을 팥이라 우긴다.
"그럼, 내가 하늘에서 떨어진 밤을 주워서 주머니에 가득 담아 들고 왔다는 거야?" 남편은 아직 치매라 하기엔 젊은 아내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거짓말을 한다고 하기엔 결혼 30년의 믿음이 너무 깊다. 밤나무 없고 밤송이도 없는 숲 속에서 30개 밤알을 주워온 난, 터벅터벅 기운 없이 집으로 돌아와 어제 찐 남은 밤을 숟가락으로 파먹는다.
불안하다. 그 이유는?
불안하다. 그럼 지금 내가 먹고 있는 이 밤은 뭐란 말인가? 진짜 이유는?
불안하다. 그럼 지금 내가 먹고 있는 이 밤은 뭐란 말인가?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를 끌어안고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한다니.
이해 안 되는 일들이 살면서 자꾸 쌓인다.
내가 숟가락으로 밤을 파먹고 있으니, 남편에게 사연을 들은 대딩 딸이 말한다.
"엄마, 그거 혹시 숲 속 다람쥐들 먹으라고 누가 뿌려놓은 거 엄마가 다 수거해온 거 아니야?" "엄마 그런 사람 아니야."
딸냄의 상상은 날개를 달았다.
"엄마, 그거 혹시 묻지 마 범죄 저지르는 사람이 밤 한 톨 한 톨에 독극물 주입한 건 아니야? 나도 어제 세알 먹었는데..."
"야! 딸~~~~ 냄~~~~~"
나의 외침에 딸내미는 자기 방문을 쿵 닫고 사라진다. 갑자기 맛있던 밤 맛이 똑 떨어진다.
그러다 드는 생각이,
"혹시 추석 때 부모님 유산분쟁에 휩싸인 딸이, 재산을 모두 차지한 오빠가 추석이라 사들고 온 밤이 꼴도 보기 싫어, 여기 아파트 숲에 욕하면서 뿌려버린 건 아닐까? 그런 밤을 내가 좋아라고 주워와 삶아먹은 건 아닐까?"
내 상상력도 만만찮다. 내 상상 속에 유산분쟁 나고 목덜미 잡고 칼부림도 나고 경찰차도 보이고 사이렌 소리도 울리고 하늘에 밤도 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