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여전히 사랑스럽다
로마에 입성하고 인터넷 뉴스를 달군 소식은 ‘로마는 공사 중‘이었다.
여름 성수기에는 70%가 관광객이라는 로마, 하필 그런 성수기에 여기저기 공사를 할까 싶지만, 시민들 불편할까 봐 휴가 떠나는 여름에 공사를 한다 하니 이해할 수 밖에.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오드리 헵번이 천진난만하게 아이스크림을 먹던 스페인 광장도, 트레비 분수도, 콜로세움도 공사 중이다.
공사 중이면 좀 어떤가? 우리 집에 살고 있어도, 누군가는 이삿짐을 내리고 올리고, 들들들들 인테리어 공사한다 집 밖으로 사람을 내모는데...... ‘공사 중’인 로마도 우리는 괜찮았다. 어차피 길 잃어버리느라 다 찾아다니지도 못하고, 에너지 딸려 다 보지도 못하는데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시몬에게 빌린 에어비앤비 아파트가 시원하고 깔끔하다. 딸내미 로망인 아늑한 다락방까지 있고, 1층에는 아침마다 구수한 빵 냄새가 올라오는 빵집도 있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슬리퍼 끌고 내려가 갓 구운 촉촉하고 부드러운 빵을 사 가지고 올라와 아침을 먹는다.
숙소 앞에는 재래시장도 열린다. 아파트 2층에서 창문을 열고 사람들 구경을 한다. 부지런히 짐을 내리며 장사를 준비하는 사람도, 하얀 스카프에 자전거 타고 장 보러 나온 할머니도, 러닝셔츠 차림에 강아지와 산책하는 배불뚝이 아저씨도 우리에겐 구경거리다. 로마가 공사 중이면 어떠랴?
딸내미가 늦잠 자는 아침에 혼자 동네 산책을 나갔다. 과일 가게 청년이 낯익다 아는 체하며, 나에게 유쾌한 “챠오~” 인사를 미소와 함께 날린다. 하늘이 맑고 파랗다.
출근길을 재촉하는 이들의 바쁜 발걸음, 아침 식사 준비로 분주한 카페, 공원에서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일상의 아침을 맞이하는 그들을 느긋한 여행자의 시선으로 즐긴다. 로마가 공사 중이어도 좋다.
치안이 불안한 로마에서 야경투어도 다녀왔다. 여행사가 급하게 만든 조악한 프로그램인지, 우리의 합류 사실을 가이드는 전해 듣지 못했고, 일행을 놓친 우리는 콜로세움으로 달려가 겨우 투어에 합류했다.
가이드는 안면 있는 일행들과 시시덕거리고 장난치다, 갑자기 일하는 중인 게 생각난 듯 간간히 설명을 덧붙였다. 심지어 한껏 마음도 몸도 부쩍 크고 있는 사춘기 딸내미를 ‘아가’라 부르는 치명적인 실수도 저질렀다. 이제 ‘로마가 공사 중’인 게 안 괜찮아지려 한다.
투어 어땠는지 불만에 가득 차 딸내미에게 물으니, 예상 밖의 답변이 돌아온다.
“난, 괜찮았는데......”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투어 따라다니며, 그렇게 더위와 싸우며 코피를 한 바가지 흘리고도, 내가 투어 형편없다고 투덜대자 이렇게 말했다.
“난, 괜찮았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최근에 매일 마약처럼 흡입 중인 누텔라 초콜릿 잼 때문인 것 같다. 커다란 누텔라 잼 통을 부여안고 한 스푼씩 떠먹으며 세상만사 행복한 표정을 짓던데...... 아무래도 그 달콤하고 입에 척 감기는 맛에 정신을 잃은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투어들이 어떻게 괜찮다는 건가?
우리의 자아는 사건을 ‘경험하는 자아’와 그걸 ‘이야기하는 자아’가 따로 있다 한다. 이야기하는 자아가 힘이 더 센데, 그 자아는 사건의 정점과 마지막 순간만을 기억해서, 그 둘의 평균으로 경험 전체를 평가한다고 한다.
딸내미 여행의 정점은 누텔라 잼을 한 스푼 가득 퍼서 입에 넣었던 바로 그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 정점의 순간이 형편없는 투어에 대한 딸내미의 기억을 희석시키고 있는 게 분명해. 딸내미에 대한 추론을 여러 정황을 분석하여 끝낸 후, 이렇게 해서라도 딸내미를 이해하려는 나의 노력이 가상해 웃음이 난다.
로마는 공사 중이었고, 치안은 불안했고, 딸내미를 한국에 보내버리겠다는 협박도 했다. 형편없는 야경투어로 속상했고, 눈썹 밀어 모나리자 될 뻔했어도, 그래도 이별을 앞둔 로마는 여전히 너무도 사랑스럽다.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김영하
딸냄! 엄마는 행복하다. 딸내미와 함께 있고, 두고두고 꺼내보고 얘기할 추억을 함께 만들고 있어서.
로마는 ‘공사 중’ 우리는 ‘행복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