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피렌체] 누워서도
잘 자라는 지붕 위의 식물

비 오면 비 맞고, 햇볕 들면 햇볕 쬐고

by 글쓰는공여사

로마에서 험난한 핸드폰 미션을 가까스로 수행하고, 넋이 빠져 기차 안에서 1시간 30분 동안 숨만 고르다 피렌체에 도착했다.


우리는 캐리어와 크로스백, 과일 가방까지 이고 지고, 로마의 울퉁불퉁한 길바닥을 빛의 속도로 내달린 경이로운 기록 보유자들이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친절한 숙소 지도를 들고, 캐리어 바퀴가 부드럽게 굴러가는 도로를 걷는 일은, 남편 표현대로 ‘껌’이다. 아! 꿈꿔왔던 평화로운 숙소 이동이다.


한인민박 아주머니는 유학 중에 이탈리아 사람과 사랑에 빠졌다 한다. 결혼해서 아들 낳고, 지금은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중이란다. 3박 4일 머무는 동안 이야기할 기회는 거의 없었지만, 방은 넓고 무엇보다 화장실이 깨끗했다. 침대 세 개가 놓여있는 넓은 방에 딸내미와 단 둘이 지내면서 늦잠을 늘어지게 자고, 햇살 가득한 방에서 눈을 떴다.


아침마다 부엌 식탁에는 우리 먹을 아침식사가 준비되어있었다. 제 집 부엌처럼 머리 긁적이며 들어가 크루아상을 따뜻하게 데우고 그 위에 복숭아 잼도 발라먹고, ‘딸내미의 마약’ 누텔라 초콜릿 잼도 부드럽게 펴 발라먹었다. 식탁 위에 놓여있는 낯선 ‘오늘의 과일’도 킁킁 향도 맡아보고 한 입 베어 맛도 음미하며 느긋한 아침식사를 즐겼다.

_7272846.JPG 소박한 아침 식사

크로와상을 입에 물고 창문으로 옆집 마당을 내려다보다, 지붕 위로 추락한 작은 화분을 봤다. 화분은 망가지고 흙도 반은 쏟아져 나와 있는데, 누워서 빨간 작은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_7272848.JPG 누워서도 자라는 화분


“저 화분 왜 저렇게 있어요?”

아주머니에게 사연을 묻는다.


“창가에 두었는데 떨어졌어요. 건져 올리려다 손이 안 닿아 그냥 두었더니 거기서 그대로 자라네요.”

“물도 줘요?”

“아뇨. 그냥 비 오면 비 맞고, 햇볕 들면 햇볕 쬐고 하니까 더 잘 자라는 것 같아요.”


자기를 보호해줄 화분은 깨지고 흙도 쏟아졌지만, 버티고 견디면서 누워 꽃도 핀다. 세찬 바람도 따스한 햇살도 받고, 쓸려 갈듯 거센 비도 맞으면서 그래도 계속 살아간다.


"내가 왜 이 나무를 제일 좋아하는지 알아? 쓰러졌는데도 계속 자라서야.”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에서 무니-


공부하면서 아이 키우면서 민박집 운영하는 아주머니도, 엄마와 도발적인 유럽여행 중인 딸내미도, 부족한 엄마 노릇 긴 여행으로 때워보겠다 욕심을 내는 나도, 화분 부서지고 흙 쏟아지는 일들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이게 끝이다 생각하지 않고, 숨 한 번 크게 몰아쉬고, 누워서도 잘 자라는 피렌체 지붕 위의 식물처럼 하루하루 살아가 보자. 용기를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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