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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공여사 Oct 10. 2019

브런치는 나만의 연인이 아니었다

나 말고 26,999명의 애인이 있었다

6개월을 망설였다. 

브런치 작가를 신청할까 말까.

일 년 전 남편이 브런치 수상 작품 기사를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거 해봐도 좋을 것 같아.”

글쓰기에 관심을 갖는 아내에 대한 배려였다. 


브런치에 말을 걸까 말까? 말을 걸었다가 나 싫다고 내치면 그 마음을 어떻게 수습하나?

이미 내쳐진 수많은 예비 작가들의 후기를 읽으면 두려움이 더 커졌다.


그러다 남편에게 조언을 구하니, 아직 글도 마음도 세상에 나갈 준비가 안 된 것 같으니, 브런치는 따위는 잊어버리라고 마음의 짐을 덜어준다. 


그게 더 짐이 되었다. 오기가 났다. 그래, 남편 몰래 작가 신청하고 떨어지면, 그때 징징대며 얘기하자. 난 아직 자기 말대로 준비가 안 되었나 봐 라고.


이틀을 고쳐 쓰고 신청을 했다. 그런데 브런치가 내가 내민 손을 덥석 잡았다.

우리는 이제 연인이 된 거다.



작가 되었다고 실실 웃어댄 지 4일 만에 ‘조회수가 1000을 돌파했습니다.’에서 ‘조회수가 10000을 돌파했습니다.’ 라이킷했습니다와 댓글이 달리고 브런치 대문에 내 글이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했다. 


브런치 대문에 올라온 '엄마, 세상에 그런 숙소가 어딨어?'


어, 어, 어, 어...... 사귀자 했으니, 천천히 썸도 좀 타고 손도 잡고 그다음 진도를 나가게 될 줄 알았는데......

썸이고 뭐고 다 건너뛰고 브런치와 뜨거운 열애가 시작된 거다. 


남편과 딸내미의 첫 반응은 이랬다.


"정말? 아, 참 알바 동원까지 하지는 말았어야지."

"악성파일 깔린 거 아닌가? 브런치에 날 밝으면 전화해봐."

"해킹당한 건지도 몰라."


남편과 딸내미가 온갖 합리적인 이유를 다 갖다 붙이며 나와 브런치와의 뜨거운 열애를 방해했다.


행복했다, 설렜다. 딱 이틀 동안.



정말 내가 그렇게 글을 잘 쓴 건지도 몰라 생각까지 들었다.

브런치가 나를 ‘작가’라 불러주고 유혹의 손길을 뻗치더니 벌써 나를 사랑하게 되었구나.


그런데 나를 향한 브런치의 뜨거운 열애는 이틀 만에 막을 내렸다.

열애가 식어가는 과정


하루 조회 수가 185로 마감되었을 때, 그때 알았다.

브런치는 ‘글쓰는공여사’ 말고 26,999명의 애인이 또 있다는 것을.


브런치는 내가 유혹하고 연애하라고 판을 깔아준 것이고,

정작 나의 연애 상대는 소중한 시간을 내어 내 글을 읽어주고, ‘라이킷’을 해주고, 댓글을 달아준 독자라는 것을.


브런치 작가 된 지 오늘 12일 차.

이제는 띠리링 가뭄에 콩 나듯 ‘라이킷’했습니다 문자가 뜨면, ‘감사합니다.’ 시간을 내어 내 글을 읽어주고 라이킷을 눌러준 그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빨리 제정신으로 돌아와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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