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다니는 길에 개천이 흐른다. 송사리 같은 작은 물고기도, 꼬리에 흰털 박은 청둥오리도 산다. 목이 긴 흰색 왜가리도 긴 부리를 휘저으며 물고기 사냥을 한다. 운이 좋은 날에는 그 큰 날개를 펼치며 비상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그런데 개천에 가끔 똥물이 흐른다. 남편은 소 키우는 윗동네 탓을 하며 격분한다. 똥물이 하루 진하게 흐르고 나면, 다음날에는 허옇게 배를 뒤집어 까고 누워있는 작은 물고기들이 보인다. 마음이 짠하다.
내 마음이 아침부터 그런 똥물이다. 흙탕물 휘저어 놓은 듯 속이 보이질 않는다. 왜 그런지 시간이 한참 지난 다음에 알았다.
어제 ‘카카오 크리에이터스데이 2019’에 참석하러 서울을 다녀왔다. 행사 마지막 날, 글을 쓰는 카카오 플랫폼 ‘브런치’ 강연을 들으러 갔다. 5:1 경쟁률을 뚫었다는 얘기에 어깨가 한 번 으쓱 올라간다. 귀한 손님 대접받듯 준비해 놓은 초코 티라미수와 새우 핑거 푸드를 집어먹으니 어깨는 한층 더 올라간다.
사회자의 위트 있는 진행도 브런치 작가들의 강연도 마음에 든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행사장에서 받은 에디터들의 인터뷰 책자에 형광펜을 치고 또 쳤다. 이대로 집에 돌아가 책상 앞에 앉으면 멋진 글이 술술 써질 것만 같았다.
정성스레 준비한 행사장 다과
세 명의 브런치 작가 강연이었다. <무례한 사람들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정문정 작가, <안 느끼한 산문집> 강이슬 작가,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 서메리 작가.
그들은 젊고 당당하고, 빛났다. 청산유수 흘러가는 말솜씨도, 어눌하게 떨린 듯 풀어내는 얘기에도 매력이 있었다. 독자를 덕질하는 방법, 글감을 찾는 노하우를 얘기해 줄 때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고 부지런히 메모를 했다. 그만큼 자극을 많이 받고 돌아왔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내 마음은 똥물이다. 위기 단계를 ‘경계’에서 ‘심각’으로 상향 조절한다.
“불안하다.”
그건 알겠다. 그러니 내 마음이 똥물이잖아. 이유가 뭘까?
“불안하다. 그들이 부러워서.”
'부럽네!' 하고 넘어가면 되지, 진짜 이유는 뭘까? 불안의 진짜 이유는 세 문장까지 가야 정체를 드러낸다.
“불안하다. 그들이 부러워서. 난 그렇게 못 될까 봐.”
‘불안’이라는 감정을 겪어보고 싶으면 나를 남과 ‘비교’하면 된다. 바로 불안해진다. 1분도 안 걸리고 효과도 만점이다. ‘비교’는 모든 조건이 같을 때 가능하다. 같은 조건으로 100m 달리기 시작점에 함께 서있다면 그때는 ‘비교’ 해도 된다.
가지고 있는 글에 대한 타고난 재능과 마음의 감수성, 글을 써온 시간과 노력,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내가 어쩌지 못하는 ‘운’까지 모두 같다면 그때부터 이룬 성과는 ‘비교’ 해도 된다.
하지만 남과 비교할 때 우리는 그들이 이룬 결과만 본다. <무례한 사람들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 110쇄를 찍고 45만 부의 책을 팔아치웠다는 결과만 본다. 그럼 인세로 얼마를 번 거야? 궁금해진 나는 계산기를 두들겨 보고, 숫자 뒤에 붙은 '0'을 뒤에서부터 세어 올라가다 입을 벌리고 만다.
정문정 작가가 그 책을 기획할 수 있었던 과거의 경험치와 마음에 한 달 동안 ‘턱’하고 걸려있었던 한 장의 사진이 나에겐 없다. 그 마음을 글로 풀어낼 능력과 그 글을 뽑은 에디터의 안목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운’도 나에겐 없다. 이 모든 것이 상호 연결되면서 힘을 발휘한 건데, 나에게는 ‘110과 45만’만 보인다.
불안하면 내가 볼 수 있는 시야가 ‘터널’ 입구만큼 좁아지고, 나에게 없는 것, 내가 갖고 싶은 것만 보인다.
‘비교’는 그들을 보고 ‘에이! 부럽다.’하고 끝나는 감정이 아니다. 그다음이 더 문제다.부러운 그들을 보고 초라한 나를 본다.
정문정 작가가 마이크 앞에서 조곤조곤 풀어내는 말솜씨가 부러운데, 그렇게 오랜 시간 아이들 앞에서 수업을 했어도, 마이크만 잡으면 목소리가 떨리는 내가 보인다. 서메리 작가의 패션 감각 뛰어난 옷차림과 늘씬한 다리가 부러운데, 노들섬 바람 춥다고 꽁꽁 싸매고 온 내가 보인다. 숨은 다 죽고 반짝이마저 군데군데 떨어지고 보푸라기까지 일어난 내 스웨터가 보인다.
서메리 작가가 강연을 하고 있다
어제는 분명 들뜨고 흥분되었는데, 오늘 아침에 내 마음은 흙탕물에 똥이 떠다닌다.
“난 삼십 대에 뭐하고 돌아다녔지?”
남편에게 건넨 듯, 혼잣말한 듯 중얼거렸다. 후회와 자책과 부러움이 뒤섞인 이 말은 현재의 우리 상황을 바로 건든다. 그 말이 부부 싸움으로 번지고, 30년 결혼 생활에 불을 확 싸지를 수도 있는 불씨라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그 불씨 발로 밟아 끄느라 진땀이 났다. 비교는 그만큼 무섭다.
브런치 작가 되었다고 어깨 뽕 들어간 듯 다니다, 그 개미지옥에 들어가 보니 천지삐까리(강이슬 작가가 썼을 법한 단어다) 널린 게 출간 작가다. 브런치 작가 신청할까 말까 그 고민만 6개월 하다 입성한 나에겐 신세계다.
‘제7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새로운 작가 10인을 뽑는다는 브런치팀의 글이 떴다. 데드라인이 하루하루 다가오니 왜 ‘데드’인지 실감을 한다. 브런치 작가로 등단한 지 21일 차 새내기가 데드라인 안에 죽지 않고 책을 한 권 써내고 싶은 욕심에 불안하다. 그것도 80,000:1 경쟁률을 뚫고 10인 안에 뽑혀 책을 내고 싶은 욕심에 더 불안하다.
브런치 출간 작가 작품들
내 마음이 똥물이어도 내 할 일은 계속해야 한다. 딸내미 저녁으로 먹을 소시지빵 픽업하러 40분을 걸어갔다 온다. 오이, 부추, 깻잎, 상추를 버무려 상큼한 겉절이를 점심 식탁에 올리고 고기도 버터에 굽는다. 이제나 저제나 언제 산책시켜주려나 목이 빠지게 나를 쳐다보는 우리 집 믹스견 까뭉이도 데리고 나갔다 온다.
일상을 사니 마음의 똥물도 흘러간다. 배 뒤집어지고 누워있는 내 감정의 세포들도 간간이 보이지만, 그래도 점차 물이 맑아진다. 맑아진 물에 문장 하나가 뜬다.
‘그냥 나는 나대로 이렇게 간다.’
나는 50대, 21일 차 초보 브런치 작가다. 나도 책을 내고 싶다. 샤워를 하면서도 뭘 쓸까 기획을 하고, 명상을 하면서도 글을 한 편 뚝딱 지어낸다. 단어를 고르면서 재밌고 문장을 만들면서 즐겁다. 내가 올린 글에 ‘라이킷’을 달아주는 착한 독자들을 가지고 있어 오늘 나는 행복하다. 다른 이들의 젊음과 재능과 운이 부럽지만, 내가 가진 소소한 것을 챙겨보며 내 불안을 정리한다.
“신경 써서 만들었어요. 이 스티커 꼭 필요한 데 붙여주세요.”
행사 진행 직원이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말을 건네며 브런치 스티커를 나눠줬다. 난 이 스티커의 글귀가 마음에 들어 컴퓨터 화면 아래에 붙여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