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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공여사 Oct 30. 2019

[불안의 진짜 이유] 자동차와
헤어지고 울어봤어?

난 더 이상 스포츠카가 아니에요.

‘카마로’다. 이름도 나중에 알았다. 쉐보레 카마로 스포츠카. 그 차를 끌고 남편이 나를 픽업하러 왔다. 남편이 미국 유학길에 오른 지 두 달 만에 우리는 캘리포니아 LA 공항에서 다시 만났다. 결혼한 지 일 년을 갓 넘긴 신혼이었다. 


난 그놈을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다. 비좁은 합정동 빌라에서 시작한 신혼살림에 마음이 쭈그러들었는데, 미국, 캘리포니아, LA에 스포츠카라니…. 요염하게 잘 빠진 바디가 매력적이었다. 까만 윤기가 흐르고, 묵직한 차 문을 열고 자리에 앉으면, 몸이 가라앉으며 땅과 가까워지는 그 느낌. 부릉부릉 시동 걸리는 소리는 또 얼마나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운지.


커다란 이민 가방을 뒷자리에 밀어 넣고, 사랑하는 남편과 야자수 나뭇잎이 나부끼는 도로를 달려 해변에 도착했다. 까만 스포츠카를 해변에 세우고 함께 손을 잡고 태평양 바다의 일몰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완벽할 수가…. 이건 꿈일 거야. 꿈이고말고.

             

아직도 카마로 캘리포니아 번호판을 가지고 있다

그 완벽한 꿈이 깨지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물이 샜다. 집 천장 얘기가 아니다. 카마로 지붕에 물이 샜다. 카마로는 ‘컨버터블(Convertible)’이다. 지붕을 여닫을 수 있는 오픈카인데, 유감스럽게도 지붕이 오픈되길 원하면 우리가 지붕을 뜯어야 한다. 뭐, 그 정도야 오픈카 타고 하얀 스카프 휘날리려면 감수할 만한 수고로움이다.


그런데 그다음 날 비가 왔다. 어제 드라이브 다녀와서 지붕을 제대로 끼워 맞췄는데도 비가 샌다. 차 안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티슈로 틀어막으며 ‘이건 쫌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붕에 물 새는 건 귀여운 애교였다. 이번에는 4차선 퇴근길 혼잡한 대로에서 딱 멈춰 섰다. 주행 중 맥없이 시동이 픽 꺼지더니, 아무리 불러도 회생을 못한다. 어딘가 아픈 게 틀림없다. 자동차라고는 핸들, 엑셀, 브레이크 밖에 모르는 내 눈에도 그래 보인다. 


우리 차가 길을 막고 있으니 답답해진 운전자들은 부탁하지 않아도 힘을 합쳐 차를 갓길로 밀어준다. 잘 빠진 몸매의 스포츠카는 사람들에게 떠밀려 겨우 바퀴를 굴리면서 길을 터준다. 체면 제대로 구긴다. 우리의 긴급 구조요청에 남편 후배가 급하게 달려왔다. 카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우리에게 차를 넘긴 장본인이다. 


그날 밤, 나는 남편 옆구리를 찔러 카마로가 어떻게 우리 손에 들어왔는지 들었다. 카마로는 도난당한 적이 있는 차였다. 돈 될 만한 부속은 모두 뺏기고 바퀴마저 없이 버려졌다 한다. 차를 되찾은 주인은 카센터에 헐값으로 차를 팔았고, 후배는 그 차를 수리해 남편에게 넘긴 것이다. 


후드득 몸을 떨면 아기 손톱만 한 진드기가 떨어지는 유기견을 입양하고 처음으로 동물병원을 다녀온 기분이었다. 이게 끝이 아니면 어쩌지 불안한 마음이 카마로에게도 들었다. 


물론 그게 끝이 아니었다. 카마로는 열도 잘 났다. 독일의 아우토반을 달려도 시원찮을 판에, 부릉부릉 시동 걸리자마자 도착하는 동네 마트나 다니려니 속에 열불이 나나 보다. 엔진 온도가 올라가 계기판의 빨간 바늘이 H를 넘으면 카센터에 가야 한다. 한밤중에 열나는 아이 온도계 빨간 눈금 쳐다보며 초조하듯, 운전하는 남편 옆에 앉아 가자미 눈을 하고 계기판을 째려본다. 

     

 불안하다.’

 왜 불안하지?

 불안하다차가 또 고장 날까 봐.’

  그것도 안다. 이제 진짜 이유를 말할 차례다. 세 번째 문장을 말하는 게 가장 두렵다. 그래도 말해봐. 

 불안하다차가 또 고장 날까 봐. 고칠 돈도 새 차 살 돈도 없으니까.”

     

  나의 불안의 진짜 이유는 망할 놈의 이 없어서다


“돈은 탁월함의 부산물이다.” -레이 달리오

돈을 부산물로 만들어낼 만큼의 탁월함을 갖진 못했지만, 잘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있었다. 그래도 힘들고 아프면 드러눕기도 하고 병원에 가서 없는 돈도 긁어 썼다.


카마로는 새로 뽑은 완벽한 기능의 신차가 아니다. 그래도 달린다. 날개 끝을 수천 번 떨면서 원하는 항로를 조정해가는 비행기의 보조날개처럼, 달리다 아프면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는 거다. 더 잘 달리고 싶어서. 

    

그런데 가난한 유학생인 나는 그런 변화에 대한 불안이 싫었다. 그냥 고장만 나지 말고, 잘 가기만을 바랐다. 

난 카마로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이미 차를 살 때 지불했던 3,500달러보다 더 많은 수리비가 들어가고 있었다.


낡은 사진첩 중에 살아있는 카마로

사실 우리는 그 멋진 카마로에게 더 몹쓸 짓도 했다. 캘리포니아 서부에서 중북부 미네소타로 이사를 하면서, 카마로 엉덩이에 네 바퀴 달린 사각 박스 U홀을 매단 것이다. 마치 소에 달구지를 매달 듯. 


카마로는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 와이오밍, 사우스다코타, 미네소타 이렇게 여섯 개의 주를 넘어, 허름한 모텔에서 일주일 동안 잠을 자며 달리고 또 달려 미네소타로 이사를 왔다. 


이사 비용이 어마어마하고 차를 팔고 새 차를 살 능력이 안 되었던 우리에겐 최선의 방법이다. 하지만 카마로에겐 만천하에 엉덩이에 흉측한 네모 박스를 달고 미국 여섯 개 주를 달리며 이렇게 소리친 것과 다름없었다. 

  난 더 이상 스포츠카가 아니에요.’


 미네소타에는 일 년에 6개월 동안 눈이 내렸다. 시 예산의 1/4을 눈 치우는 데 썼다. 밤새 내린 눈 속에 파묻힌 카마로를 겨우 찾아내, 추위에 곱은 손으로 유리창의 얼음을 박박 긁어냈다. 얼음판에 미끄러지는 목숨 건 운전을 하며 학교를 다녔다. 


카마로는 날씨 좋은 캘리포니아의 아이지, 울면 눈물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미네소타의 아이는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는 히터가 들어오는 주차장에 카마로를 두기 위해, 9불짜리 김치 한 통을 사면서도 아까워 벌벌 떨었다. 


불안했다. 조마조마했다. 우리가 한국에 다시 돌아갈 때까지는 버텨줘야 하는데, 또 고장 날까 봐 무서웠다. 


 3년 반이 지나고, 우리는 한국행을 결정했다. 다행히 잘 버텨준 카마로와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한 여름에 떠난 그 여행에서도 내 눈은 가자미 눈이 되고, 카마로는 열을 받았다. 

  “남편, 큰일 났다. 카마로 열 받았어. 어떻게 하지?”


우리는 차를 길가에 세우고 후드를 열어 안을 들여다봤다. 엔진을 식히면 좀 낫지 않을까 싶어 후드를 살짝 열고 내리막길을 달렸다. 

  “어어어 어어어~”


 갑자기 바람을 받은 후드가 턱 하니 올라와 앞 유리창을 덮었다.  운전 중인 우리의 시야를 까만 카마로 후드가 막았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지른 공포의 비명이 카마로 안에 가득 찼다. 


다행히 다른 차를 피해 어찌어찌 길가에 차를 세우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카마로는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작은 도시의 카센터에 또 입원을 했다. 


미치겠다. 카마로가 정말 미웠다. 그걸 바퀴 달린 차라고 수리해서 판 후배도 미웠고, 스포츠카라고 덥석 문 남편도 미웠다. 없는 살림에 뻑 하면 서고, 뻑 하면 열 받고, 뻑 하면 입원하는 그 고철덩어리가 미웠다. 


낯선 도시에 입원했던 카마로를 찾아 캔자스시티에 도착했다. 우리에게 차를 팔아치운 후배가 그곳에 살고 있었다. 카마로를 처분하려고 함께 갔다. 


남편은 손에 850불을 들고 나왔다. 후배 말로는 후한 값을 쳐줬다는 거다. 후배의 차를 타고 주차장을 빠져나가는데 그 넓은 공터에 ‘우리 카마로’가 혼자 서있었다. 늦은 저녁이었다.


 “아마 부속 다 빼고 폐차할 것 같아요.‘

 안 해도 될 얘기를 후배는 했다. 


아! 이제 또 고장 날까 봐, 또 돈 들어갈까 봐 불안 안 해도 되고 시원하…. 그런데 마음이 이상하다. 눈물이 나려 한다. 매번 아파서 속 썩이던 강아지, 동물병원에 안락사 부탁하고 돌아 나온 심정이다. 애물단지 내 자식 이제는 더 이상 내가 못 키우겠다고 보육원에 버려두고 뒤돌아 나온 심정이다. 


그렇게 밉고 또 미웠던 카마로. 고장 나면 어쩌나, 가난한 내 주머니 다 털어 가면 어쩌나, 3년 6개월 동안 불안하기만 했다. 불안한 만큼 내가 마음을 줬던지, 생명도 없는 그 물건과 헤어지고 눈물을 한참 찍어냈다. 


카마로는 나에게 ‘물건’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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