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 어떡해?
패러글라이딩은 ‘남녀노소 가볍게 즐기는’ 레포츠라는데, 난 무서워서 못했다. 비행기도 뜨고 내리는 것 무서워 직항 타고 왔는데, 우산 천 조각 같은 캐노피 하나 믿고, 처음 본 낯선 사람에게 내 목숨 저당 잡히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라고? 절대 NEVER 아니올시다.
딸내미는 물어보나 마나 당연히 한다. 생긴 것은 비리비리 멸치고, 할 줄 아는 운동은 많아도 즐기는 운동은 하나 없는데, 하늘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니, 무서운 거 없는 십 대가 분명하다.
패러글라이딩을 하려면, 스위스 화폐로 210 CHF, 20만 원이 넘는 꽤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래도 스위스 인터라켄을 찾은 이십 대 배낭족들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한이 있더라도 패러글라이딩은 꼭 하고 간다.
예약 손님을 태우러 미니버스가 숙소 앞에 도착했다. 딸내미를 혼자 보내는 것이 내키지 않아 혹시 따라갈 수 있나 슬금슬금 눈치를 본다.
“걱정 말고, 숙소 앞 잔디밭에서 기다려요.”
매정한 운전자의 목소리에 주눅이 들어 더 이상 떼도 못쓴다.
버스 문이 철컥 닫히고, 딸내미가 시야에서 갑자기 사라진다. 항상 잡고 다니던 손을 놓치고, 한낮 밝은 햇살 아래 불안이 엄습한다. 어린 딸내미 낯선 인간들에게 납치당하는 것은 아닌지 어처구니없는 상상이 휙 지나간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여행을 하니 마음이 쪼그라드는 것은 당연하다고 나를 다독이며, 하늘에서 내려오는 딸내미를 맞으러 잔디밭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긴다.
따스한 햇살이 내려쬐는 벤치에 앉아 푸르른 하늘을 눈이 빠지게 쳐다본다. 드디어 바람을 두둥실 타고 색색의 캐노피가 하나씩 하늘에서 내려온다.
딸내미가 어느 쪽으로 내려오는지 알 수가 없으니, 드넓은 잔디밭을 날쌘돌이 로드러너처럼 종횡무진 냅다 달리며 혹시 딸내미인가 체크를 한다. 그 넓은 잔디밭을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헥헥 대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패러글라이더 한 명이 접은 캐노피를 들고 나에게 다가온다.
딸내미가 타고 내려올 패러글라이딩 회사의 이름을 묻더니, 정확한 낙하지점을 알려준다. 회사마다 착지 지점을 미리 정해놓았나 보다. 이젠 한 자리에 붙박이처럼 서서 하늘을 뚫어지라 쳐다본다.
드디어 딸내미가 노란 캐노피의 패러글라이딩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온다. 딸내미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고 흥분으로 눈이 반짝거린다.
“엄마! 하나도 안 무서워. 재밌었어. 근데 너무 짧아. 엄마도 탈 걸 그랬다.”
“내가 탔으면 내려달라고 하늘에서 고래고래 소리 질렀을 거야.”
딸내미는 겨드랑이에 날개 돋아 처음으로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 본 새처럼, 하늘에서 내려다본 풍경을 숙소 가는 내내 종알종알 지저귄다. 삶에서 자유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날갯짓이 필요한지 지금 딸내미는 알 수 없겠지만, 아마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 본다.’는 말은 실감했겠지.
도전과 모험을 좋아하는 육점이네가(소고기, 돼지고기 별명을 가진 30대 초반의 남녀 커플) 익스트림 스포츠 중에 하나인 캐녀닝을 하고 왔다.
캐녀닝은 트레킹, 암벽 타기, 동굴탐사, 급류 타기 등 다양한 레포츠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종합 선물 세트 레포츠라 한다. 암벽, 동굴, 급류 이런 단어만 들어도 이건 ‘선물’이 아닌데….
육점이네는 방금 고문에서 풀려난 사람들처럼 흐느적거리며 숙소 로비에 나타났다. 우리를 반기며 죽다 살아난 얘기를 풀어놓는다.
“평소에 번지점프를 즐기니 뭐, 계곡 줄 타고 왔다 갔다 하는 정도야 너무 싱거울 것 같아 떡 하니 고급 코스를 신청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목숨을 구하려고 그랬던지 고급 코스 신청 인원이 부족한 거예요. 그래서 중급 코스를 함께 했죠.”
우리는 숨을 죽이고, 퀭한 눈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소고기' 별명의 처자를 바라본다.
“그런데 이건 즐기는 게 아니고 고문당하는 거였어요. 후들후들 절벽을 타고 내려왔는데, 그 높은 곳에서 안심하고 급류에 뛰어들라 하고, 바위에 온몸을 부딪치며 뛰어내리다 물 잔뜩 먹고 구조되고, 부들부들 떨면서 겨우 끝냈어요.”
살아서 우리를 다시 만난 게 얼마나 다행인지, 고급 코스를 했더라면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거라고 너스레를 떨며 뜨거운 핫 초코에 마음을 푼다.
딸내미는 패러글라이딩을 해서 피곤한지 몇 번 꿈적꿈적 몸을 뒤척이더니, 양어깨에 긴 머리를 풀어두고 얇은 입술을 꼭 다물고 쌕쌕 코를 골며 잠을 잔다. 혼자 놀고 혼자 먹고 혼자 잠을 자며 외로웠을 그 마음을, 엄마 손 꼭 잡고 여행하며 부지런히 채워나간다.
패러글라이딩을 즐겁게 경험한 딸내미도, 캐녀닝을 오싹하게 체험한 육점이네도, 그것을 지켜보고 얘기를 들은 나도 새로운 경험이 마음에 쌓이고 어제와 다른 우리가 된다. 낯선 곳에서 낯선 경험을 하며, 삶의 경험치를 늘리고 우리의 마음은 오늘 조금 더 자유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