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엄마 노릇 같은 건 없는지도 모른다
딸내미는 네다섯 살쯤 아토피를 심하게 앓았다. 가려워 피가 나게 긁고, 딱지 앉은 피부는 코끼리처럼 두껍고 까칠했다. 눈 주위는 판다처럼 붉어져 ‘쟤 얼굴은 왜 저래?’ 하는 낯선 아이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몸 고생, 마음고생을 했다.
다행히 서울을 벗어나고 아토피가 깨끗이 나았지만, 초등학교 1학년 때에도 여전히 마트에서 파는 과자나 사탕, 불량식품은 딸내미에겐 금지식품이었다.
딸내미는 핑크빛 사각거리는 발레복에 꽂혀, 핑크 발레 가방을 들고 방과 후 발레수업에 열심히 드나들었다. 엄마, 아빠뿐 만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뒤져도 몸으로 운동이나 예술을 한 내력은 없는데, 딸내미는 부지런히 발레를 배우러 다니는 거였다.
그 비밀은 발레복을 빨아 주려고 핑크 발레 가방을 열어보고 밝혀졌다. 그 안에는 엄마 몰래 사 모은 알록달록 불량식품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여덟 살 아이가 친구들도 다 사 먹는 과자를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가방에 숨겨놓고 발레수업 다닐 때마다 까먹었을까? 그런 안쓰러움보다 또다시 그 지긋지긋한 아토피가 재발하여 딸내미 자존감에 상처를 입히고, 내 시간을 토막 내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몸서리쳤다.
“딸냄~ 이거 뭐야?”
분명 발레 가방에 잘 숨겨놓았는데, 엄마 손에는 자기가 하나하나 사 모은 소중한 과자가 들려있다. 들켰다. 큰일이다. 어쩔 줄 모르겠는데 엄마 목소리는 차갑고 무섭기만 하다.
“이게 뭐냐고? 누가 이런 거 사 먹으랬어? 아토피 또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
엄마의 한껏 높아진 목소리에 잔뜩 주눅 들어 한마디도 못한다. 친구들도 다 사 먹는데, 나도 무슨 맛인지 먹어보고 싶어서 산 건데…. 엄마의 목소리가 무섭고 속상한 마음에 닭똥 같은 눈물만 주르르 흐른다.
딸내미는 많이 무서웠을 게다. 가끔 보는 엄마에게 사랑을 듬뿍 받아도 모자랄 판에 이런 불호령을 받으니, 엄마와 더 멀어질까 봐 무서웠을 게다.
“네가 쓰레기통에 가서 직접 버리고 와.”
부들부들 겁에 질려 떠는 딸내미의 조그만 고사리 손에 한 보따리 불량식품을 쥐어주며 냉정하게 말했다.
왜 그런 모진 벌을 세상에 태어난 지 팔 년도 안 된 어린 딸에게 내렸을까?
딸내미는 아파트 입구에 설치된 쓰레기 분리수거장으로 과자 더미를 들고 혼자 내려갔다. 여리여리한 딸내미의 마른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지만, 나는 아파트 베란다에 서서 딸내미가 제대로 과자를 버리는지 확인까지 했다.
그때는 내 행동에 일 퍼센트의 후회도 없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아이를 위한 거라고, 몸에 해로운 건 먹으면 안 된다 가르쳐야 한다고 믿었다. 딸내미가 어떤 마음으로 그 과자를 샀고,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딸내미 마음이 사랑받고 이해받지 못해 외딴섬에 혼자 사는 것처럼 외롭고 무서울 거라고 생각하지도 못했다. 자식의 나쁜 행동은 엄마인 내가 고쳐줘야 한다고, 그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믿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부모 함량 미달인 내가 지금도 밉다.
규율이란 제 아무리 현명한 것이라 해도 애정과 접촉을 대신할 수 없는 법이다. -버트런드 러셀
‘핑크 발레 가방 사건’을 다행스럽게 딸내미는 잘 기억하지 못한다. 지금은 딸내미가 먹고 싶다면 소고기 육회도 먹이고 생선회도 먹이고, 매콤 불닭 면도, 불량식품도 집에 굴러다닌다.
쑥쑥 자라는 사춘기 딸내미 데리고 여행하자니, 딸내미는 치매 노인처럼 먹고 돌아서면 배고프다 하고, 또 먹고 돌아서면 금방 먹는 걸 찾는다. 여행의 반은 뭘 먹을까 고민하면서 보낸다. 샌드위치로 부실하게 한 끼를 먹으면, 다음 식사는 무조건 ‘꼬기’다. 여행이 길어지면서 생긴 우리 나름의 규칙이다.
숙소에는 식사를 직접 요리해 먹을 수 있는 공동 부엌과 식당이 있고, 물가가 비싸서 여행자들은 마트에서 사 온 반조리 식품을 직접 조리해 먹는다. 우리는 그동안 캐리어에 자리만 차지한다고 구박받던 요리 재료를 자랑스레 펼쳐놓고, 푸짐한 부대찌개를 준비한다.
일인용 밥솥에 하얀 쌀밥을 윤기 잘잘 흐르게 짓고, 프라이팬에 찌개 양념과 적당히 시어진 봉지 김치와 스위스 햄을 듬뿍 썰어 넣고 라면까지 풀어 넣는다. 제대로 된 부대찌개 냄새가 난다.
공동 부엌에서 프라이팬을 나란히 놓고 한국 배낭족 학생들도 저녁을 준비한다. 우리 프라이팬에는 부글부글 매콤한 부대찌개 냄새가 부엌을 점령하고 있는데, 바로 옆에 놓인 프라이팬에는 마트에서 사 온 닭다리 두 개가 민망하게 떼굴떼굴 굴러다닌다.
“아~~~ 씨, 그러니까 우리도 김치랑 양념이랑 가져오자고 내가 그랬잖아. 이게 뭐야?”
마트에서 사 온 반조리 제품 닭다리를 조리하던 한국 남학생은 괜히 옆의 친구를 짜증스럽게 타박하며 싸움닭 되기 일보 직전이다. 우리의 부글부글 맛있게 끓는 부대찌개를 흘끔거리며, 자기 프라이팬에 누워있는 닭을 성의 없이 뒤집개로 툭툭 건든다.
이러다 먹는 것 가지고 싸움 나겠다 싶어 부대찌개 한 사발을 듬뿍 떠서 전해준다. 먹고 싶은 마음을 들킨 쑥스러움보다 비로소 느끼한 미각의 여독을 풀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에 얼굴이 환해진다. 그는 꾸벅 고맙다는 인사를 진심으로 우리에게 건넨다.
맛있게 먹은 부대찌개는 부대찌개이고, 스위스에 왔으니 퐁뒤라는 것을 먹어봤어야 했는데 못 먹었다. 빵이나 감자 등을 긴 꼬챙이에 끼운 뒤, 녹은 치즈나 소스에 찍어먹는 전통 스위스 요리. 사람들이 퐁뒤를 먹고 올린 후기가 문제였다. 내가 찾아 읽은 후기에는 한결 같이 비싸다, 느끼해서 못 먹었다 하는 글이 잔뜩 올라와 있었다.
“딸냄~ 우리 퐁뒤 먹지 말까? 먹고 온 사람들이 비싸기만 하고 느끼해서 못 먹었다던데...”
“그래? 그럼 먹지 말지 뭐.”
엄마의 말에 반기를 들만큼 아직 사랑을 듬뿍 받지 못한 딸내미는 자기 속마음은 감추고 동의한다.
그런데 여행을 다녀와서 딸내미가 자주 이렇게 말한다.
“아~ 그때 스위스에서 퐁뒤를 먹었어야 했는데…. 아쉽다. 다시 가야겠다. 퐁뒤 먹으러.”
나도 시간이 지날수록 후회가 슬금슬금 올라온다. 자기들은 한껏 새로운 음식을 맛보고 맛있네 없네 올려놓은 후기를 덥석 믿고, 스위스까지 가서 치즈 퐁뒤를 안 먹어보고 오다니…. 느끼할 까 봐, 아까운 돈만 축낼 까봐, 먹어보지도 않다니, 후회막급이다.
미각이 유달리 발달해서 새로운 음식 탐험을 즐기는 딸내미와, 여행 동안 한식 못 먹을까봐 미니 밥솥을 캐리어에 싸들고 간 엄마.
딸내미 먹는 것에 대해서는 이제부터 나는 입 다물어야겠다. 발레가방에 가득 모은 새콤달콤 맛난 과자도 못 먹게 하고, 스위스까지 가서 퐁뒤도 못 먹게 했으니…. 자식 생각한다고 하는 일이 뒤돌아보면 자식 인생에 별 도움 안 되니, 엄마 노릇하기 쉽지 않다.
애초에 엄마 노릇 같은 건 없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