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 과외하러 다니던 시절, 초등학교 4학년 장난꾸러기 남자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친 적이 있었다. 축구를 좋아해서, 모든 이야기가 ‘기승전 축구’였다. 서로 탐색전을 펼치던 첫날, 혹시 해외에 체류하며 영어를 배운 경험이 있나 싶어 물었다.
“혹시, 다른 나라에 살아본 적 있어?”
“네.”
“오, 그래? 어디에 살아 봤어?”
“중국 베이징이요.”
“그래? 얼마나 살다왔는데?”
“3일이요.”
“......”
그때는 어이없어했지만, 3일을 살던 3년을 살던, 자기 인생에서 3일이라는 시간을 중국에서 보낸 것은 사실이다.
딸내미와 나도 36일을 유럽에서 ‘살았다.’ 3일보다 열 배도 더 긴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먹고 마시고 자고 걸어 다니고, 사람들과 얘기하고, 그렇게 살다 왔으니 뭐 좀 변한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여행의 성적표를 체크해 본다.
그런데 긴 여행에서 돌아온 딸내미는 마른 솜 물 빨아들이듯 순식간에 일상생활로 복귀했다. 주말 내내 여행 전리품을 만지작거리더니, 월요일 아침에는 친구들 선물 보따리를 한 아름 챙기고, 단정하게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메고 학교에 갔다. 별로 바뀐 게 없어 보인다.
아침에는 침대에서 끌어내리는 데 20분, 아침식사는 3분, 드라이기로 긴 머리 말리기에 황금 같은 5분을 여행 전과 똑같이 썼다. 샤워하고 밥 먹고 교복 입고, 현관문 박차고 뛰어나가 통학버스에 올라타는 데 20분이면 충분하다. 뭔가 여행 후에 바뀐 게 있을 법도 한데 아무리 살펴봐도 그런 건 없다.
“엄마, 학교 선생님이 학교신문에 여행기 써서 올리래.”
“그래?”
“응. 그렇게 길게 여행을 다녀왔으니 할 얘기가 엄청 많을 거래. 근데, 뭘 쓰지?”
“.........”
시간과 돈 들여 그 많은 사건 사고를 겪으며 유럽여행을 다녀왔는데, 뭘 써야 할지 소재 고갈에 빠지다니….
‘현재 진행형’ 딸내미는 엄마와 다녀온 유럽여행은 저 멀리 기억 속 창고 어딘가에 쳐 박아두고, 오늘도 학교 가서 수업 듣고, 방과 후 플루트 연습하고, 친구들과 먹을 떡볶이도 신중하게 고른다.
애들아~ 오늘은 무슨 떡볶이 먹을까? 신전? 아니면 오랜만에 엽떡?
딸내미와 달리 나는 그렇게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쓰고 여행을 했으면 A4 용지 10장의 여행 보고서를 써서 제출하거나, 뭔가 달라진 내 모습을 나에게 보여줘야 했다. 그래서 그림을 다시 그리고, 바이올린이라는 새로운 악기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인터넷 검색과 아는 인맥을 총동원해 동네 화실을 골랐다. 여행하면서 그렸던 어설픈 그림일기를 들고 3층 화실을 찾아 올라갔다.
화실에는 고만고만한 서너 명의 어린아이들이, 걸리버 여행기 소품 같은 작은 의자 끝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그림을 그리고 색종이를 정성껏 오리고 있었다.
40대 초반의 긴 생머리 여자 원장은 내 여행 얘기도 귀 기울여 들어주고, 내가 들고 간 그림일기도 천천히 들여다봤다. 내가 봐도 그림 속의 나는 팔, 다리, 몸통의 비율이 어색하고, 움직임이 뻣뻣한 깡통 로봇 같았다.
일주일에 한 번 3~4시간 그림을 그리러 갔다. 나는 귀엽게 재잘거리고, 무섭게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의 과분한 관심을 듬뿍 받으며, 스케치북에 4B 연필로 무수히 선도 긋고, 사과도 그렸다.
“근데, 아줌마는 뭐 그린 거예요?”
내가 그린 사과를 빤히 보면서 한 아이가 물었다.
“아줌마는 왜 그림 배우러 왔어요?”
“아줌마는 아들, 딸 있어요?”
아이들은 조그맣게 오물거리는 입을 통해 내 신상도 털고, 내 그림 실력도 털고, 왜 이 아줌마는 그림을 배우러 왔을까 라는 원초적인 삶의 질문도 어색함이나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아무 때나 내뱉었다.
시간이 한두 달 지나니, 화실에 갈 때마다 황당한 질문을 해대던 아이들은 자연스레 관심을 거두어갔고, 화실 원장과 새로운 수다의 장을 열었다. 비슷한 또래의 자녀를 키우고 일하는 워킹 맘이라 할 얘기는 갈 때마다 쌓여있었다. 화실에 가면 주로 수다를 떨고, 시간이 남으면 잠깐 그림을 그렸다.
화실 다닐 때 쓰던 미술 도구
일주일에 한 번 수다를 떨다 남은 시간에 그린 그림 실력은 당연히 기대만큼 일취월장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내 발로 화실을 찾아가고, 스케치북을 다시 펼쳐 들고 대상을 유심히 관찰하는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내 세상은 조금 넓어졌다 생각하기로 했다.
바이올린에 꽂힌 것은 순전히 베네치아 뒷골목에서 만난 금발 청년 때문이다. 어스름한 저녁에 길거리 연주를 멋들어지게 했던 미남 금발 청년.
악기라고는 초등학교 때 서너 달 동네 이모에게 손가락을 회초리로 맞아가며 바이엘을 배우다, 이건 아니지 싶어 그만둔 피아노 실력이 전부다. 클래식 마니아인 남편 덕분에 클래식 음악을 자주 접하기는 했지만, 음악적 재능이라고는 약에 쓰려고 찾아봐도 없는 내가 뜬금없이 바이올린을 배우겠다고 나선 것은 아무래도 무모한 여행 뒤끝의 후유증임에 틀림없다.
아파트 교습소에서 만난 50대 바이올린 여자 선생님의 살갗은 유난히 하얗고, 볼은 사과처럼 통통했다. 머리를 뒤로 깔끔하게 쪽진 열정 가득한 분이셨다.
일주일에 한 번 40분씩 개인 지도를 받았다. 그런데 4옥타브 이상의 음역의 소리를 내는 이 매력적이고 완벽한 악기가 나에겐 너무 생소했다. 6개월이 넘어가도 턱과 어깨 사이에 어색하게 이 낯선 물건을 끼우고, 눈을 내리깔고 활을 문질러 대는 게 매번 적응이 안됐다.
끼익 끼익 소리가 나는 것도 신기하고, 운지법을 익혀 손가락 위치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 것도 놀라웠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바이올린은 나에게 한 발자국도 더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바이올린
무엇보다 줄을 맞출 때마다 줄이 끊어질까 긴장하고 무서웠다. 바이올린 줄 끊어질까 봐 무서운데 바이올린 실력이 나아질 리는 만무다. 북이나 장구, 꽹과리는 터질 염려도 없으니 나에게 더 맞는 악기가 아닐까 고민도 잠깐 했다.
바이올린 연주에 대한 열정은 일치감치 물 건너가고, 바이올린 선생님과도 줄만 맞춰놓고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바이올린도 수다 떨다 시간 남으면 몇 번 연습해보고 끝이었다. 나이 먹으니, 어디 가나 이놈의 ‘수다’가 문제다. 내가 온 목적은 잊어버리고 수다 떠느라 시간이 부족하다.
결국 예견했던 대로 ‘악기의 여왕’ 바이올린과도 인연이 멀어지고, 베네치아 바이올린 청년도 바로 잊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