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진짜 이유] 흉몽일까 불안하다고?
“어젯밤에 나 꿈꿨는데 들어볼래?”
내 말 잘 들어주기로 세상에서 으뜸인 남편도 내가 꿈 얘기하겠다고 달려들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모르는 친군데, 그 친구의 약혼자가 하반신 마비야.”
시작부터 난해하다.
“그런데 그 사람 흰 가운에 피가 묻어있고, 난 노란 여름 샌들 한 짝 찾는다고 돌아다니고….”
호모 사피엔스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묘사하는 능력 때문에 살아남았다지만, 꿈 얘기는 모~~두 지루하다. 앞뒤 맥락도 없고 생뚱맞고 황당하다.
꿈 얘기가 2~3 분을 넘어가니, 남편 눈의 초점이 흐려지고, 언제 말꼬리를 끊나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흉몽 같으면 그 기운 사라지라 주저리주저리 씨부렁거리고, 길몽 같으면 아깝지만 단 돈 만 원에 판다며 나는 남편 삥을 뜯는다.
꿈을 꾸면, 눈 뜨자마자 핸드폰으로 해몽을 찾아본다.
불안하다. 불안의 이유는?
불안하다. 내 꿈이 흉몽일까 봐. 불안의 진짜 이유는?
불안하다. 내 꿈이 흉몽일까 봐. 정말 그런 나쁜 일이 나에게 일어날까 봐.
꿈 해몽은 찾아봐도 삶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1. 해석의 범위가 너무 넓다. 꿈 한 번 꾼 것으로 오만 짓이 다 일어난다. 길몽이면 연애, 결혼, 시험, 사업, 재물 운 다 핀다. 흉몽이면 건강, 구설수, 금전 손해, 인간관계 다 망한다. 원인과 결과를 무리하게 꿰어 맞추느라 범위가 너무 넓다. 그래서 때려 맞추면 꿈은 다 맞는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그러니 작두 탈 실력이나 자기 죽을 날 미리 아는 도승이라면 모를까 자기 꿈이 잘 맞느니, 예지력이 있느니 이딴 얘기는 하지도 말자.
2. 미리 알아도 조심이 안 된다. 흉몽이면 미리 조심하라는데, 시험에 불합격하고 애인 변심하고, 사고당하고 병 걸리고, 운명 달리하는 일까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은 하나도 없는데, 뭘 어떻게 조심하라는 거야? 기분만 나쁘다.
3. 꿈 해몽을 본 순간, 이미 그 하루는 내 것이 아니다. 길몽이다 하면 없던 약속도 만들고, 안 사던 복권도 사고, 종횡무진 일을 벌이고 다닌다. 무지 용감해져 내가 맡겠다, 안 해도 되는 일 자청해서 나서고 다음 날 바로 후회한다. 흉몽이면 소심하게 몸 사리며 약속 모두 취소하고, 8시에 일찍 잠자리에 든다.
재미 삼아 보라고? 남의 일 아니고 내 일이고, 나에게 닥칠 일인데 재미 삼아 안 봐진다. 해몽을 본 순간, 점쟁이의 입에서 떨어진 말을 듣는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생각은 바이러스와 같아. 끈질기고, 전염성이 강해. 아주 작은 생각의 씨앗이라도 자라나 한 사람을 규정하거나 망가뜨릴 수 있지." -영화 <인셉션>
미국 있을 때 돼지꿈을 꿨다.
“남편, 나 오늘 아무리 바빠도 롸러리(lottery) 사야 해. 어젯밤 꿈에 터질 듯 통통한 핑크 돼지 세 마리가 우리 부엌에 들어왔어. 이번 주 복권 당첨 금액 얼마야?”
아침에 그렇게 난리를 피우고 결국 복권을 못 샀다. 그날따라 비가 오고, 학교 과제는 많았고 하루 종일 종종거리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집에 들어와 생각이 났다.
“남편, 이 시간에 문 연 곳 없겠지?”
“없지….”
어쩌면 내 인생 한 방에 역전시킬 수 있는 기회였을지도 모르는데, 가볍게 날려보냈다.
꿈은 나의 미래를 알려주는 기능보다, 지금 내가 소화시키지 못한 내 무의식의 마음 조각일지 모른다. 내가 어떤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을 왔다 갔다 하며, 한 해 한 해 힘들게 철들고 마음 깊어졌는지, 나를 전혀 모르는 어설픈 꿈 해석에 나를 끼어 맞추려 애쓰지 말자.
그 대신 내가 요즘 마음 쓰는 일이 뭔지,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일은 뭔지, 되짚어보는 ‘나를 위한 맞춤 해몽의 시간'으로 활용하자. '꿈보다 해몽'이다. 해몽을 찾아 보기보다 내 꿈의 해석을 스스로 만들면, 꿈의 본질을 바꿀 힘과 자유를 갖게 된다.
불안이라는 감정은 신호이다. 나에게 다가올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낼 자원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 않다는. 인생은 길몽과 흉몽을 번갈아 왔다 갔다 한다. 누구에게나 길몽 같은 일도, 결코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흉몽 같은 일도 다 일어난다. 누구 탓이다 뭣 때문이다 갖다 붙이려고 하지 말고, 지혜롭게 풀어나갈 무기나 다양하게 갖추자.
우리 집 댕댕이 까뭉이도 꿈을 꾼다. 발을 허공에 뻗어 덜덜 떨고, 눈도 희번덕거리고, 뭐라 소리도 낸다. 아무래도 길몽은 아닌가 보다. 오늘 내가 이쁘다며 귀를 너무 세게 잡아당겼나? 이 닦일 때 너무 박박 문질러 싫었나? 산책할 때 붙임성 없이 으르렁댄다고 너무 타박했나? 키우는 댕댕이 무의식까지 해석하고 있으려니 하루가 버겁다.
까뭉이가 꿈에서 깨어, 나에게 길몽인지 흉몽인지 물어보면 이렇게 말해줘야지.
"이노무 시끼가, 정신 차려! 네 꿈은 다 개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