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진짜 이유] 복 타령이나 하다니. 너 늙었구나.
"딸냄! 네 생각에는 넌 부모복이 있는 것 같니?"
"으응? 뭔…."
딸내미는 먹던 딸기를 간신히 목구멍에 끅 집어넣고 날 쳐다본다.
'엄마 아빠 점수는 몇 점?'이냐고 20살이 코앞인 딸내미에게 노골적으로 물어보는 우리 엄마는 외계인?
그다음 대화가 꼬리를 안 무는 걸 보니, 흠... 내가 또 쓸데없는 얘기를 했나 보다. 내 방 문을 꼬옥 닫고 일단 피하고 본다.
불안하다. 그 이유는?
불안하다. 복 타령이나 하고 있다니. 진짜 이유는?
불안하다. 복 타령이나 하고 있다니. 벌써 그렇게 늙고 자신 없어진 거야? 사는 게?
복: 삶에서 누리는 좋고 만족할 만한 행운. 또는 거기서 얻는 행복.
복 타령, 운 타령은 언제 할까?
1. 내 뜻대로 인생 안 풀릴 때
내 노력으로, 내 뜻대로 인생이 풀릴 거라는 생각부터가 오산이다. 나도 내 맘대로 못하는데, 하물며 타인이나 상황은 말할 필요도 없다. 가려는 목적지를 내비에 찍고, 가려고 노력할 뿐이다. 잘 달리다가도 내비에도 없는 길에 들어서기도 하고, 막다른 길에 멈춰 서야 할 때도 있다. 지름길로 단시간에 목적지에 도달하는 게 우리가 사는 이유는 아니다.
2. 탓할 대상이 필요할 때
'잘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이다. 인생 꼬이기 시작할 때, 뭔 인생이 이렇게 거지 같냐? 욕 나올 때, 내 인생 앞뒤 이야기는 꿰맞춰야겠고, 원인과 결과는 짝 지워야 하는데, 내 탓 하기는 죽어도 싫고. 그때 하는 얘기가 부모복, 남편복, 자식복 타령이다.
3. 노력할 시간도 의지도 남아있지 않다고 느낄 때
노력만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노력 + 운의 조합이다. 로또 복권 당첨은 100% 운이라고? NONONO! 복권 사야겠다 마음도 먹고, 매주 꾸준히 내 돈 들여가며 사야 한다. 복권을 사야 가능성이라도 있다. 욕조에서 넘어져 죽을 확률보다 10배 더 희박하고, 벼락 맞아 죽을 확률보다 두 배 더 힘들긴 해도. 같은 복권 번호를 50년은 사야, 90세쯤 60억 당첨되는 행운이라도 누린다. 캐나다 할아버지 얘기다. 굳은 결단력 + 당첨에 대한 흔들림 없는 확신 + 50년을 버티는 끈기는 운이 아니다.
복 타령은 나이 든 사람이 한다. 이미 인생 많이 달린 것 같고, 잘못된 부분 복구하기에는 시간도 힘도 딸릴 때 그런 생각이 든다. '부모복 없는 사람은 남편복, 자식복도 없다.' 싸잡아 남편 앞에서 자식 앞에서 해서는 안 될 말을 한다.
부모복, 남편복, 자식복이란 뭘까?
재산 있어 자식에게 베풀고 힘들 때 도와주는 부모, 사랑과 이해로 자식이 실패해도 일어설 수 있도록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부모, 경제적 여유 있고 어려운 일 함께 헤쳐나갈 다정다감하고 서로 위해 줄 든든한 남편, 돈 먹는 하마 되어 부모 괴롭히지 않고 알아서 자기 앞가림 잘하는 자식.
결국,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인간성 좋은 부모, 남편, 자식 있으면 복 있고, 없으면 복 없다는 말이다.
내가 어쩌지도 못하는 복 타령은 그만두고, 내 삶의 태도를 짚어보자.
1. 이미 복 있음을 안다.
부모복 세팅을 바꿀 수 있는 인생 게임은 없다. 흙수저든 금수저든 이번 판에서는 그 세팅으로 가야 한다. 부모복 없으면 정글에 칼 한 자루 들고 사는 기분이겠지만, 부모가 날 고아원에 포대기 싸서 버렸거나, 찢어지게 가난해서 앵벌이 시키지 않았으면 부모복 있는 거다.
남편이 사깃꾼, 강도, 살인청부업자 아니고, 똥오줌 받아내는 병수발 안 하고 있으면 남편복도 있는 거다. 온몸에 용문신 새기고 넘버원 되겠다고 설치대는 자식 아니라면, 자식복도 있는 거다.
2. 내가 그 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부모, 남편, 자식 모두 내가 있어 이루어진 관계다. 내가 있어 나를 낳은 분들을 부모라 부르고, 나와 결혼해서 지지고 볶고 사는 사람을 남편이라 부르고, 내가 있어 낳고 기르는 그 아이를 자식이라 부른다. 내가 잘 살면 된다. 그들이 나에게 주는 복 타령하기 전에, 내가 그 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된다. 내 뿌리 튼튼하면 옆의 나무 탓 안 한다. 바람 탓, 햇빛 탓 안 한다.
3. 내가 가진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
자신의 삶에 온전히 관심을 가지고 나에게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 나를 잘 살게 해주는 것에 시간과 노력을 쓰자. 누구 탓이라 핑계되며 시궁창에 빠져 허우적대기보다, 안달하지 말고 불안해하지 않으며 남은 소중한 시간, 내가 잘 살려고 노력하자.
"우리는 밤이 깊도록 화덕 옆에 묵묵히 앉아 있었다. 행복이라는 것은 포도주 한 잔, 밤 한 알, 허름한 화덕, 바닷소리처럼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한순간이 행복하다고 느껴지게 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는 단순하고 소박한 마음뿐이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우리 집 댕댕이 까뭉이가 밥을 맛있게 먹어치우고, 산책 나가자고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넌 우리 만나서 행복한 것 맞지?"
딸내미에게도 못 들은 답변을 말 못 하는 까뭉이에게 기대해본다.
"끄으윽~~"
까뭉이는 내 헛소리에 대답 대신 트림을 시원하게 끅 날린다.
까뭉이는 단지 쉬가 마려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