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진짜 이유] 층간소음의 끝판왕
불안하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오늘 밤 드디어 살인사건이 날 것 같다.
“네가 니년을 칼로….”
“찔러. 찔러. 찌르르라아고오오오~이 잡노오오옴아~~~”
“으아아아아악”
악에 받친 남자와 여자 목소리가 살림살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아래층에서 올라온다.
새벽 3시였다.
벌써 한 달째, 남편과 나, 초등학교 1학년 딸내미는 자다가 벌떡 일어나 거실 소파에 등 꼿꼿이 세우고 주르르 앉아있다. 셋 다 밤마다 잠을 못 자 퀭한 눈에 다크 서클은 입까지 내려왔다.
어쩌다 잠잠해지면 그게 더 불안하다. 기필코 우려했던 사건이 터지고 말았을까 봐. 우리는 쭈그리고 앉아 최대한 귀를 바닥에 밀착시키고 아랫집 동태를 살핀다. 칼부림하는 아랫집보다 밤마다 그러고 있는 우리 집이 더 무섭다.
25년 된 낡은 아파트 1층에서 새벽마다 그 난리가 난다. 이제 제법 패턴까지 갖추고 반복된다. 낮에는 인기척도 없다가, 새벽 2시쯤 아랫집 남자가 문을 따고 들어오면 전쟁 시작이다. 전반전 1시간은 여자 혼자 뛴다. 혼자 욕하고 소리 지르고 운다. 후반전에 남자가 맞대응을 시작하면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진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매트릭스'의 슬로모션 신을 아랫집 전투에서 볼 가능성은 없겠지만, 그래도 들어보면 할 건 다한다. 살림 던지고 깨부수기, 다채로운 욕설 선보이기, 3옥타브 비명 지르기, 최근엔 칼 들고 설치기까지 추가되었다. 연장전에 다른 여자 한 명이 더 투입되면, 아파트 창에는 불이 더 많이 켜진다.
매일 밤 들려오는 소리로 추측한 103호 전쟁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고, 아내가 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악에 받쳐 공격하고, 딸이 싸움을 말린다.’
언제 범죄영화로 장르가 바뀔지도 모를 공포영화를, 화면도 없이 소리만 듣고 있자니 그게 더 무섭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까 봐.
우리도 할 만큼은 했다. 9살 딸내미 귀에다 밤마다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18금 영화를 들려줄 순 없으니까.
1. 관리소장을 만나 간곡히 사정 얘기를 한다. “뭐, 남의 집 사생활이라. 저희도 뭐라고….” 양쪽 다 아파트 주민이니 편들고 끼어들 수도 없고, 등 터지고 싶지 않은 새우다.
2. 인터폰을 들어 소리를 지른다. 남편이 참다못해 그렇게 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살아서 지옥을 맛보고 있는 그들에게 윗집 아저씨 말은 파리 웽웽대는 소리다.
3. 경찰에 신고한다. 우리도 112에 신고했다. “저희 아랫집 뭔 일 날 것 같아요. 칼 들고 부부 싸움하는데 빨리 와주세요.” 잠시 후, 아파트 앞에 경찰차가 경광등 불빛을 번쩍이며 들어왔다. 우리 집에 먼저 들러 신고 여부를 확인하고 아랫집에 내려갔다 올라오더니.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주의는 줬지만, 아직 무슨 사건이 난 것도 아니고….”
뭐라고? 사람이 죽어나가야 뭔 조치를 취한다는 거야? 사체를 치워준다거나 부검을 해준다거나 그런 것?
4. 똑같이 보복대응을 한다. 이건 못했다. 그만큼 폭력적인 욕설과 살림 부수기, 칼부림을 할 자신은 없어서.
5. 인간적으로 직접 소통을 시도해본다. 매일 밤 칼 들고 설치는 아랫집 아주머니와 통성명하고, 하소연도 듣고, 마음도 어루만…. 아니다, 난 그럴 자신 정말 없다.
6. 이사 간다.
“남편, 우리 이사 가자.”
“우리도 괴롭지만, 본인들은 얼마나 더 괴롭겠냐? 조금만 더 참아보자. 뭔 결론이 나겠지.”
난, 궁극적으로 윗집도 아랫집도 옆집도 없는 천평 마당 딸린 단독 주택을 꿈꾼다.
“남편, 우리 일 열심히 해서 돈 많이 벌자.”
불안하다.
불안하다. 살인사건 날까 봐. 불안의 진짜 이유는?
불안하다. 살인사건 날까 봐. 혹시나 사건에 휘말려 나도 피해자 될까 봐.
불안의 이유는 항상 ‘이기적이다.’ 나 손해 볼까 봐, 나 다칠까 봐, 나 죽을까 봐.
어느 날, 관리소장의 밝은 목소리가 인터폰에 실려 왔다.
“기뻐하세요.”
기뻐하라니, 일단 기뻐한 다음 물어본다.
“무슨 일인데요?”
“아랫집 이사 간대요. 다행이죠?”
그다음 주에 103호는 이사를 두 번 나갔다. 이혼했다는 얘기다. 그들은 모르겠고 우리에겐 참 잘된 일이다. 두 달 만에 잠을 푹 잤으니까.
103호는 한동안 비어있더니, 베란다 난간을 알록달록 무지개 색으로 칠하고 유치원이 들어왔다. 아침마다 아이들이 엄마 떨어지지 않겠다고 울고불고 한바탕 난리를 치고, 시도 때도 없이 에엥 에엥 에엥, 울었다.
그래서 싫었냐고? 아니, 너무 감사했다. 두 달 동안 부서지고, 상처 주고, 죽어가는 소리만 들었는데, 애들 울음소리는 싹이 자라는 소리, 커가는 소리니까 괜찮았다. 배고프면, 암, 울어야지 우유 주지. 기저귀 젖었으면, 암, 울어야지 갈아주지. 쓸쓸하면 암, 울어야지, 안아주지. 많이 울어. 이쁜 아그들아.
몇 년 뒤 새로 이사 온 아파트에도 주말마다 윗집 아주머니는 마늘을 오랫동안 빻고, 새벽에 가구도 옮긴다. 윗집 아저씨가 내 머리 위에 오줌도 눈다. 그 적나라한 소리를 듣고 있다가 '요즘 아저씨 전립선 문제 있나?' 건강 걱정도 해주고, 밤새 드르렁 코 고는 소리도 들으며 나는 잘 잔다.
살림 부수기, 욕설과 비명, 칼부림, 새벽 3시 경찰차 출동이라는 층간소음을 인생에서 두 달쯤 겪어보면, 지금 아파트의 층간소음은 사람 사는 소리라 생각하게 된다. 사람이 사니 오줌도 누고, 마늘도 빻고, 코도 곤다.
그래도 윗집, 아랫집, 옆집 없는 천 평 마당 딸린 단독주택을 아직도 꿈꾼다. 주위에 너무 인간이 없어 무서우려나? 인간은 너무 가까이 있어도, 너무 멀리 있어도 무서운 존재다. 나도 인간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