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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공여사 Dec 11. 2019

수시 6광탈 기념 탕수육을 먹으며

[불안의 진짜 이유] 무슨 위로의 말을 건네나?

“나, 탕수육 먹고 싶어.”

“그래. 중국집 가자.”

코끝이 차가운 날씨에 남편과 나의 만보계는 13,000보를 넘어가고 있었다. 


첫 번째 중국집은 ‘재료 준비시간’이라고 우리에게 탕수육을 내어주지 않았고, 두 번째 중국집은 정기휴일이었고, 지금 세 번째 중국집을 찾아가는 길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매운 짬뽕과 따뜻하고 바싹한 탕수육을 앞에 놓고, 허겁지겁 목구멍에 면발과 고기튀김을 밀어 넣는다. 

오늘재수생 딸내미는 수시 논술을 빛의 속도로 광탈했다.


오전 10시에 발표라는데, 12시가 되어도 딸내미 방에는 인기척이 없다. 집안의 침묵이 너무 무겁다. 평소 입에 삑삑이 오리를 물고 다니던 우리 집 댕댕이 까뭉이도 공기 중에 섞인 불안을 감지했는지,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딸내미 밥을 식탁에 차려놓고 방문을 살짝 열어보며 남편이 말했다.

“딸냄, 밥 차려놨으면 점심 챙겨 먹고, 엄마 아빠 산책 갔다 올게.”


남편이 산책길에 들어서자마자 나에게 말한다.

“딸내미, 결과 확인하고 많이 울었나 봐. 눈이 벌써 퉁퉁 불었다.”

그 말을 들으니 속이 상한다. 

“에이 씨~ 논술 선생 사이비 아니야? 잘 쓴다고 애 부추길 때는 언제고, 어떻게 하나를 안 붙고 다 떨어졌냐?”

“논술 경쟁률이 어마어마하잖아. 100:1이 넘어갔으니, 차라리 하늘의 별을 따오라 할 것 그랬어.”


불안하다.

불안하다딸내미의 절망이 너무 클까 봐. 불안의 진짜 이유는?

불안하다딸내미의 절망이 너무 클까 봐. 이걸 빨리 극복하지 못하고 껴안고 살까 봐.


“수시 6 광탈 기념 탕수육이니, 우리라도 잘 먹고 기운 내자.”

목구멍에 뭘 쳐 넣기 힘들 때, 남편과 나는 항상 그렇게 말했다. '우리라도 잘 먹고 기운 내자.'

“내일은 6 광탈 기념 동해바다 보러 갔다 오자. 까뭉이도 데리고. 혼자 충격에서 빠져나오려면 힘들 거야. 우리가 도와줘야 해.”


우리는 탕수육 ‘소’ 자도 다 못 먹고, 남은 탕수육을 비닐봉지에 싸서 줄래줄래 들고 집으로 향한다. 사방이 어스름해지고 바람에 코끝이 차갑다. 어두워지니 불안이 커진다. 집에 하루 종일 혼자 웅크리고 가슴 쥐어뜯으며 울고 있는 딸내미를 마주할 자신이 없다.


“남편, 나 여기 물 흐르는 소리 좀 듣고 가면 안 돼?”

잠깐이라도 집에 들어가는 시간을 늦추려고 발길을 멈춘다. 

산책길에도 겨울이 깊다

딸내미가 혼자 독재하면서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안다. 수능이 다가오면서는 밥만 먹고 똥만 쌌다. 잠도 줄여가며 망부석처럼 한 자리에 앉아 풀고, 보고, 또 봤다. 척추측만에 허리도 엉덩이도 다 뒤틀어진 상태로. 


일요일마다 서울로 논술 수업을 들으러, 왕복 3시간을 기차와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수업이 늦게 끝나면 숨이 턱까지 차게 뛰어 막차 시외버스를 타고 새벽에 집에 들어왔다. 논술 수업이 재밌다했다. 글 쓰는 게 는다고 했다. 논술 선생님이 잘 쓴다 칭찬하는 게 도리어 불안하다 했다. 


수능 끝나고 성적도 안 맞춰보고, 그날 밤부터 1,000자 2,000자 논술을 2시간씩 쓰고 또 썼다. 불안하면 새벽에도 맨발에 쓰레빠 끌고 집 앞 놀이터를 가래가 나올 만큼 뛰었다. 까뭉이는 영문도 모르고 오밤중에 엄마와 언니 따라 놀이터를 겅중겅중 뛰며 행복해했다. 


시험이 오전에 있으면, 우리는 새벽 5시에 집을 나와 서울 가는 첫 기차를 탔다. 엄마 아빠 둘 다 응원해 달라 부탁해서, 우리는 대학교 대기실과 강당과 근처 카페와 공원을 4시간쯤 헤매다 지친 딸내미를 보러 시험장을 다시 찾았다. 


그렇게 독하게 했는데, 그보다 더 열심히 할 수는 없는데 예비 번호 하나 못 받고 수시 6 광탈이라니…. 딸내미가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는데, 해도 안 되는구나, 하는 좌절감을 스무 살 생일을 맞기도 전에 뼛속 깊이 새길까 불안했다

수능 끝나자마자  현관으로 쫓겨난 책들

딸내미를 어찌 보나, 전략을 두 가지 짰다.

1. 개무시한다. 6 광탈이니, 정시 지원이니 하는 말은 입에 뻥긋하지도 않고, 까뭉이 산책시켰니? 똥은 눴고? 일상의 언어만 구사한다.

2. 대놓고 탁 까고 돌직구를 날린다. “너, 빛의 속도로 6 광탈했다며? 너 안 뽑은 대학만 손해지, 엄마가 네가 지원한 6개 대학 다 불 질러줄까?”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이미 1번도 2번도 자신이 없다. 방문을 노크하고 살짝 들여다본 딸내미의 표정을 보니, 1도 2도 다 쓸데없는 전략임이 드러난다. 전략이고 나발이고 다 던지고 나도 함께 울고 싶다. 딸내미는 벌써 정시를 알아보는지, 책상 앞에 앉아 뭘 열심히 들여다본다. 그게 더 안쓰럽다. 앞에서 울고불고 소리치면 더 나을 텐데…. 


무슨 위로의 말을 건네나? 섣불리 내뱉은 한마디가 상처가 될까 불안하다.
“괜찮아. 딸냄.” 뭐가 괜찮아? 내가 안 괜찮은데….

“힘내. 딸냄.” 힘없는데, 어떻게 힘을 내? 

“다 잘 될 거야.” 엄마가 그걸 어떻게 알아? 죽을 만큼 해도 안됐는데….

“이번 일이 너를 더 강하게 해 줄 거야.” 강하게 하려고 6 광탈시켰다고? 지금 장난해?

“네가 가진 것에 감사해야 해.” 내가 가진 게 뭔데? 인서울 실패? 6 광탈 경험?


한마디도 위로의 말을 못 찾고, 딸내미가 좋아하는 바나나 주스를 갈아 방에 밀어 넣어준다. 넷플릭스 안 본다는 다짐은 다 날아가고 리모컨을 돌린다. 눈은 화면에 있는데, 마음은 어디에도 없다.


그때 딸내미가 문을 열고 나오더니 조용히 말한다. 

“엄마, 나 S대 붙었어.”


뭔 소린지 이해가 안 된다. 뭘 붙었다 하는데…. 오늘 6 광탈 탕수육 먹으며 마음도 달랬고, 내일 6 광탈 기념 여행도 갈 건데…. 재가 뭐라는 거야?

“뭐. 뭐, 뭐라고? 어디, 어딨어?”

난 귀는 못 믿겠고, 그래도 믿을만한 눈을 동원한다. 

“최종 합격을 축하합니다.”

보고 또 봤다. 딸내미는 불합격, 불합격, 불합격, 불합격, 불합격 5 광탈 경험을 하고 나니, 뒤늦게 발표하는 S대는 기대도 안 하고 정시를 찾아보고 있었단다.


난 딸내미를 붙잡고 울었다. 

“네가… 그렇게… 열심히… 하고… 안 되면, 좌절하면… 어떻게 하나. 거기서… 못 빠져나오고 평생 그 실패를… 되씹으면….”

엉엉엉~엉엉. 


딸내미처럼 5 광탈하고 6번째 뒤늦게 발표한 S대에 합격한 어떤 학생이 인터넷에 올려놓은 한 줄의 글이, 수험생 아이들의 마음을 다 대변하고도 남았다. 하느님정말 감사합니다열심히 살게요.”


“내가 너에게 토르 망치 그려줬잖아. 불안이고 시험이고 다 깨부수어 버리라고. 망치 그려줘서 됐나 보다. 요즘 엄마 잘 풀린다고. 브런치 작가 되고, 브런치 대문에도 뜨고. 엄마 행운도 작동한 거야. 맞지?”

수능 전날 딸내미 생일에, 난 정성껏 토르 망치를 그렸다.

뭣 때문에 떨어졌는지 모르듯이, 뭣 때문에 붙었는지도 모르는데, 그냥 막 갖다 붙인다. 합격소식을 듣고 나니, 이제야 우리 집 까뭉이도 눈에 들어오고, 배도 다시 고파진다. 


우리는 중국집에서 싸온 탕수육을 안주 삼아 와인잔을 부딪쳤다. 남편과 둘이 먹던 6 광탈 기념 탕수육을, 이제 딸내미와 셋이 5 광탈 1 합격 기념으로 먹는다. ‘하느님저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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