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진짜 이유] 무슨 위로의 말을 건네나?
“나, 탕수육 먹고 싶어.”
“그래. 중국집 가자.”
코끝이 차가운 날씨에 남편과 나의 만보계는 13,000보를 넘어가고 있었다.
첫 번째 중국집은 ‘재료 준비시간’이라고 우리에게 탕수육을 내어주지 않았고, 두 번째 중국집은 정기휴일이었고, 지금 세 번째 중국집을 찾아가는 길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매운 짬뽕과 따뜻하고 바싹한 탕수육을 앞에 놓고, 허겁지겁 목구멍에 면발과 고기튀김을 밀어 넣는다.
오늘, 재수생 딸내미는 수시 6 논술을 빛의 속도로 6 광탈했다.
오전 10시에 발표라는데, 12시가 되어도 딸내미 방에는 인기척이 없다. 집안의 침묵이 너무 무겁다. 평소 입에 삑삑이 오리를 물고 다니던 우리 집 댕댕이 까뭉이도 공기 중에 섞인 불안을 감지했는지,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딸내미 밥을 식탁에 차려놓고 방문을 살짝 열어보며 남편이 말했다.
“딸냄, 밥 차려놨으면 점심 챙겨 먹고, 엄마 아빠 산책 갔다 올게.”
남편이 산책길에 들어서자마자 나에게 말한다.
“딸내미, 결과 확인하고 많이 울었나 봐. 눈이 벌써 퉁퉁 불었다.”
그 말을 들으니 속이 상한다.
“에이 씨~ 논술 선생 사이비 아니야? 잘 쓴다고 애 부추길 때는 언제고, 어떻게 하나를 안 붙고 다 떨어졌냐?”
“논술 경쟁률이 어마어마하잖아. 100:1이 넘어갔으니, 차라리 하늘의 별을 따오라 할 것 그랬어.”
불안하다.
불안하다. 딸내미의 절망이 너무 클까 봐. 불안의 진짜 이유는?
불안하다. 딸내미의 절망이 너무 클까 봐. 이걸 빨리 극복하지 못하고 껴안고 살까 봐.
“수시 6 광탈 기념 탕수육이니, 우리라도 잘 먹고 기운 내자.”
목구멍에 뭘 쳐 넣기 힘들 때, 남편과 나는 항상 그렇게 말했다. '우리라도 잘 먹고 기운 내자.'
“내일은 6 광탈 기념 동해바다 보러 갔다 오자. 까뭉이도 데리고. 혼자 충격에서 빠져나오려면 힘들 거야. 우리가 도와줘야 해.”
우리는 탕수육 ‘소’ 자도 다 못 먹고, 남은 탕수육을 비닐봉지에 싸서 줄래줄래 들고 집으로 향한다. 사방이 어스름해지고 바람에 코끝이 차갑다. 어두워지니 불안이 커진다. 집에 하루 종일 혼자 웅크리고 가슴 쥐어뜯으며 울고 있는 딸내미를 마주할 자신이 없다.
“남편, 나 여기 물 흐르는 소리 좀 듣고 가면 안 돼?”
잠깐이라도 집에 들어가는 시간을 늦추려고 발길을 멈춘다.
딸내미가 혼자 독재하면서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안다. 수능이 다가오면서는 밥만 먹고 똥만 쌌다. 잠도 줄여가며 망부석처럼 한 자리에 앉아 풀고, 보고, 또 봤다. 척추측만에 허리도 엉덩이도 다 뒤틀어진 상태로.
일요일마다 서울로 논술 수업을 들으러, 왕복 3시간을 기차와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수업이 늦게 끝나면 숨이 턱까지 차게 뛰어 막차 시외버스를 타고 새벽에 집에 들어왔다. 논술 수업이 재밌다했다. 글 쓰는 게 는다고 했다. 논술 선생님이 잘 쓴다 칭찬하는 게 도리어 불안하다 했다.
수능 끝나고 성적도 안 맞춰보고, 그날 밤부터 1,000자 2,000자 논술을 2시간씩 쓰고 또 썼다. 불안하면 새벽에도 맨발에 쓰레빠 끌고 집 앞 놀이터를 가래가 나올 만큼 뛰었다. 까뭉이는 영문도 모르고 오밤중에 엄마와 언니 따라 놀이터를 겅중겅중 뛰며 행복해했다.
시험이 오전에 있으면, 우리는 새벽 5시에 집을 나와 서울 가는 첫 기차를 탔다. 엄마 아빠 둘 다 응원해 달라 부탁해서, 우리는 대학교 대기실과 강당과 근처 카페와 공원을 4시간쯤 헤매다 지친 딸내미를 보러 시험장을 다시 찾았다.
그렇게 독하게 했는데, 그보다 더 열심히 할 수는 없는데 예비 번호 하나 못 받고 수시 6 광탈이라니…. 딸내미가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는데, 해도 안 되는구나, 하는 좌절감을 스무 살 생일을 맞기도 전에 뼛속 깊이 새길까 불안했다.
딸내미를 어찌 보나, 전략을 두 가지 짰다.
1. 개무시한다. 6 광탈이니, 정시 지원이니 하는 말은 입에 뻥긋하지도 않고, 까뭉이 산책시켰니? 똥은 눴고? 일상의 언어만 구사한다.
2. 대놓고 탁 까고 돌직구를 날린다. “너, 빛의 속도로 6 광탈했다며? 너 안 뽑은 대학만 손해지, 엄마가 네가 지원한 6개 대학 다 불 질러줄까?”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이미 1번도 2번도 자신이 없다. 방문을 노크하고 살짝 들여다본 딸내미의 표정을 보니, 1도 2도 다 쓸데없는 전략임이 드러난다. 전략이고 나발이고 다 던지고 나도 함께 울고 싶다. 딸내미는 벌써 정시를 알아보는지, 책상 앞에 앉아 뭘 열심히 들여다본다. 그게 더 안쓰럽다. 앞에서 울고불고 소리치면 더 나을 텐데….
무슨 위로의 말을 건네나? 섣불리 내뱉은 한마디가 상처가 될까 불안하다.
“괜찮아. 딸냄.” 뭐가 괜찮아? 내가 안 괜찮은데….
“힘내. 딸냄.” 힘없는데, 어떻게 힘을 내?
“다 잘 될 거야.” 엄마가 그걸 어떻게 알아? 죽을 만큼 해도 안됐는데….
“이번 일이 너를 더 강하게 해 줄 거야.” 강하게 하려고 6 광탈시켰다고? 지금 장난해?
“네가 가진 것에 감사해야 해.” 내가 가진 게 뭔데? 인서울 실패? 6 광탈 경험?
한마디도 위로의 말을 못 찾고, 딸내미가 좋아하는 바나나 주스를 갈아 방에 밀어 넣어준다. 넷플릭스 안 본다는 다짐은 다 날아가고 리모컨을 돌린다. 눈은 화면에 있는데, 마음은 어디에도 없다.
그때 딸내미가 문을 열고 나오더니 조용히 말한다.
“엄마, 나 S대 붙었어.”
뭔 소린지 이해가 안 된다. 뭘 붙었다 하는데…. 오늘 6 광탈 탕수육 먹으며 마음도 달랬고, 내일 6 광탈 기념 여행도 갈 건데…. 재가 뭐라는 거야?
“뭐. 뭐, 뭐라고? 어디, 어딨어?”
난 귀는 못 믿겠고, 그래도 믿을만한 눈을 동원한다.
“최종 합격을 축하합니다.”
보고 또 봤다. 딸내미는 불합격, 불합격, 불합격, 불합격, 불합격 5 광탈 경험을 하고 나니, 뒤늦게 발표하는 S대는 기대도 안 하고 정시를 찾아보고 있었단다.
난 딸내미를 붙잡고 울었다.
“네가… 그렇게… 열심히… 하고… 안 되면, 좌절하면… 어떻게 하나. 거기서… 못 빠져나오고 평생 그 실패를… 되씹으면….”
엉엉엉~엉엉.
딸내미처럼 5 광탈하고 6번째 뒤늦게 발표한 S대에 합격한 어떤 학생이 인터넷에 올려놓은 한 줄의 글이, 수험생 아이들의 마음을 다 대변하고도 남았다. “하느님, 정말 감사합니다. 열심히 살게요.”
“내가 너에게 토르 망치 그려줬잖아. 불안이고 시험이고 다 깨부수어 버리라고. 망치 그려줘서 됐나 보다. 요즘 엄마 잘 풀린다고. 브런치 작가 되고, 브런치 대문에도 뜨고. 엄마 행운도 작동한 거야. 맞지?”
뭣 때문에 떨어졌는지 모르듯이, 뭣 때문에 붙었는지도 모르는데, 그냥 막 갖다 붙인다. 합격소식을 듣고 나니, 이제야 우리 집 까뭉이도 눈에 들어오고, 배도 다시 고파진다.
우리는 중국집에서 싸온 탕수육을 안주 삼아 와인잔을 부딪쳤다. 남편과 둘이 먹던 6 광탈 기념 탕수육을, 이제 딸내미와 셋이 5 광탈 1 합격 기념으로 먹는다. ‘하느님, 저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꾸벅.